우주 지구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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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과 올바른 창조론(3)

(3) 카발라의 찜쭘 이론과 현대 창조론의 발전

토라는 하나님이 그의 의지적인 명령의 말씀으로 그의 밖에서 창조를 진행하셨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카발라는 신성한 아인 소프로부터 빛이 발출하여 우주가 형성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두 가지 창조론을 비교해보면 토라의 하나님이나 카발라의 아인 소프는 모두 창조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렇지만 창조자의 속성에 대한 관점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조자의 무한성은 모든 속성에서 최고이며, 질적으로 또는 양적으로 단일성과 완전성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무한자와 유한자가 동시에 존재한다거나 무한자가 둘 이상이라면, 무한성은 파괴되는 것이다. 또한 그 이외에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도 무한성은 훼손된다. 토라와 카발라 창조론의 차이는 창조자의 무한성을 훼손하지 않으면, 창조를 할 수 없다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느냐의 문제이다. 토라는 하나님의 창조가 그의 무한성을 훼손하는 문제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다는 흔적조차 없다. 그러나 고대 카발라에는 창조가 아인 소프의 무한성을 훼손한다는 사실에 대해 여러 가지로 고심한 흔적이 남아 있다. 고대 카발라에서 아인 소프로부터의 빛의 유출이 비의지적인 현상이며, 그 빛에 의하여 우주가 스스로 형성된 것으로 설명하는 것 등이 그런 흔적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토라와 카발라는 같은 고대 히브리인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창조자의 무한성에서 보면 토라와 카발라는 다 같이 오류가 있다. 그것은 무한자가 창조와 창조물의 존재를 위한 장소를 마련해야 하는 문제를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한자는 그의 존재를 위해서 모든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을 것이므로 다른 존재를 위해 남겨진 공간이 없다. 따라서 무한자가 존재의 장소를 제공하지 않으면 유한자인 피조물은 존재할 수가 없다. 사실 논리적으로는 창조자에게 무한성을 부여하는 것은 맞지 않다. 창조를 하는 순간 무한자는 무한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토라는 하나님이 그의 자유의지로 그의 밖인 흑암의 곳에 창조를 하신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무한자의 세계 밖에 흑암이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한자의 밖으로 발출된 빛에서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고대 카발라도 흑암을 말한다. 고대 카발라는 빛을 담은 그릇들이 깨지는 사고를 당해 빛들이 흑암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빛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형성될 수 없다. 더구나 무한자에게서 발출한 빛이 사라지고 만다면, 무한자는 계속 감소하게 되며 결국 무한자가 아니게 된다. 그러므로 토라에서 유일신이신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그의 무한성을 포기하고 인간과 서로 상대적인 관계를 맺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을 창조한 순간 창조자와 인간은 서로 상대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카발라도 흑암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토라도 카발라도 흑암을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명시적 서술은 토라에도 카발라에도 나와 있지 않다.

토라에서는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으므로 죄인이 되었다. 고대 카발라에서는 흩어진 빛들에서 생성된 아담(인간)이 물질계의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아담은 유출되었던 신성한 빛을) 본래 있었던 원천으로 복귀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토라의 창조자는 그의 의지로 창조를 하신 것에 반해, 카발라의 아인 소프는 그로부터 빛이 발출되는 것조차 몰랐다는 것인가? 그리고 아인 소프는 아담에게 사고로 사라진 빛을 되찾기 위한 사명을 맡긴 것뿐인가? 고대 카발라의 창조론에서 내재되어 있던 문제가 발견된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로마가톨릭교회에 신학적 문제를 제기하고, 종교개혁을 진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동시대에 과학혁명도 진행되고 있었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의 유언에 따라 그의 사후에 출판된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에서 지동설이 제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었던 것은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와 반대로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주장했으므로 사회적으로 큰 논쟁이 일어났으나, 과학혁명은 이로부터 불똥이 튄 것이다. 이 시기에 가장 뛰어난 카발리스트 이삭 루리아(Isaac ben Solomon Luria, 1534-1572)는 고대 카발라의 해석을 뒤엎고, 아인 소프가 그의 빛으로 창조한 것들의 존재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찜쭘(צמצום, zzimzzum:축소)했다고 주장했다. 루리아의 주장은 '찜쭘 이론'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찜쭘은 고대 카발라에서 이미 사용되던 말이었다. 루리아는 이 말에 확대 발전된 의미를 붙인 것이다. 루리아의 '찜쭘 이론'에 의하면 창조자가 자신의 의지로 자기를 축소하여 자기 안에 창조의 장소를 만들었다. 루리아에 의하면 창조는 3단계로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찜쭘 이론'이라고 하면 첫째 단계만을 의미하지 않고 3단계 전체를 통칭한다.

① 찜쭘(비움)-먼저 무한자가 자신의 일부를 비우시고 피조물이 존재할 공간을 마련 해주셨다.
② 셰비라(깨어짐)-발출된 빛을 담은 그릇들이 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서 창조세계가 불완전해졌다.
③ 티꾼(회복)-인간이 참여하여 사고를 수습하고 완전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시작되었다.

루리아의 찜쭘 이론'으로 인하여 고대 카발라의 패러다임은 획기적으로 개혁되었다. 루리아는 카발라 개혁을 유럽에서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났던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을 모르고 하지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의 부모가 유럽에서 살다가 추방된 유대인 랍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1570년에 카발라 개혁을 위해 루리아는 카발라의 본거지 사페드에 가서 유대교 개혁운동을 주도했다. 종교개혁이 로마가톨릭의 왜곡된 성경 해석을 바꾼 것처럼 루리아도 그렇게 유대교 개혁에 나선 것이다. 그의 창조의 장소에 관련한 개혁적 해석은 불꽃처럼 유대인들에게 퍼져나갔다. '찜쭘 이론'에 의하면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시기 위해 자신의 전지전능, 편재, 완전성, 무한성 등의 속성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피조물에게 존재할 공간을 만들어주셨다. 하나님은 피조물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지만, 그에게서 멀리 두지는 않으셨다. 결국 루리아의 창조론은 하나님이 자신의 무한성을 스스로 포기하심으로써 태초에 토라의 천지 창조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을 상대로 창조자와 창조의 불완전성을 설파했던 루리아가 마침내는 전혀 유대인답지 않은 주장까지 했다. 그것은 놀랍게도 티꾼에 성공하지 못한 인간의 영혼들은 이 세상에서 윤회(輪回)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유대인들이 아무 반대 없이 루리아의 '찜쭘 이론'을 비롯한 그의 윤회설까지 그대로 수용하였다는 것이다. 루리아는 찜쭘 이론을 통해 전통적 유대교 랍비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창조론을 서술함으로써 토라의 하나님에 대한 해석상의 난제(기독교에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카발라 개혁의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기독교의 난제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의 무한성과 그가 창조한 이 세상의 불완전성에 대한 해석이었다. 그것들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을 거치는 동안 분명하게 드러났다. 수많은 군인들과 무고한 시민들이 전장에서 또는 후방에서 국가의 폭력으로 죽어갈 때, 신의 역할 부재와 신을 믿는 종교의 무력함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했으며, 신이 존재한다면 그의 속성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이 세상에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전쟁 당사자들이 믿고 있는 종교의 신이 아니라, 국가의 인적 자원과 물질적 능력, 그리고 과학적 기술력에 의한 보다 우수한 무기의 동원에 달려 있었다. 특히 무기를 만들어내는 과학의 발전 수준이 전쟁의 경쟁력이 되었다. 기독교의 창조신인 하나님이, 그가 창조한 인간들이 세상에서 전쟁에 의해 온갖 참상을 당하고 있을 때, 또한 권력자의 횡포와 악행에 의해 힘없고 낮은 자들이 남모르게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침묵하는 것은 그동안 믿었던 정의롭고 자비로우신 신의 속성에 전혀 부합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신론적 진화론의 도전에 오히려 수세로 몰리고 있는 기독교 창조론의 한계를 느끼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으로 넘어갔다. 고전적 토라에 근거한 창조론의 문제점이 여지 없이 드러난 것이다. 신의 속성에 대한 재해석의 요청은 필연적으로 창조론에도 개혁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먼저 깨달은 사람은 기독교 신학자들이나 창조론자들이 아니었다.

허정윤
▲허정윤 박사가 자신이 쓴 책 「과학과 신의 전쟁」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이 시대에 신의 존재와 창조를 재해석한 사람은 유신론 철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였다. 그는 신학자가 아니었으므로 그의 해석을 유기체 철학이라고 불렀다. 화이트헤드는 신과 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로 보면서 실재를 개별적 존재가 아닌 전체적인 과정으로 파악했다. 화이트헤드의 주저 『과정과 실재』는 그의 철학을 과정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만들었다. 그의 철학에서 창조자인 신과 신에 의해 창조된 세계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신은 창조에 앞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함께 있다. 그러므로 창조는 계속되는 것이다. 신과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들은 유기체적으로 통일되어 합생(合生)하고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대적 관계에 있다. 그리고 신의 본성은 현실성과 가능성의 전체를 연결할 수 있는 양극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되었다. 한편 로마가톨릭 예수회 신부 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뎅(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은 진화론을 빌려 세상의 창조와 발전을 설명했다. 그의 철학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Ioannes Paulus PP. II, 재위: 1978-2005)가 진화론을 하나의 과학적 가설 이상으로 인정한다는 입장을 발표한 뒤에야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었다. 그에게 우주는 진화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이 창조 과정의 참 모습이며, 우주와 인간의 진화적 발전을 통해 더 높은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그에게 계속적인 창조의 과정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철학은 실질적인 내용이 화이트헤드의 것과 비슷했으므로 두 사람은 과정철학의 공동 창시자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화이트헤드 철학에 무게가 쏠린 과정신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화이트헤드는 시간과 공간과 운동의 개념을 뉴턴(Sir lsaac Newton, 1642-1727)의 절대적 불변성 개념에서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의 상대성 이론을 기초로 상대적 가변성 개념으로 전환했다. 화이트헤드는 전통철학이 인간의 경험하는 우주의 시간과 실재의 동적인 측면을 연관하는 창조성을 파악하지 못했던 점을 비판했다. 그의 철학에 신학의 옷을 입힌 과정신학은 어느 날 갑자기 기독교에 폭탄과 같이 떨어졌다. 그것은 기독교 신학에서는 계보를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루리아의 찜쭘 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정신학이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을 보면 두 가지가 곧 바로 서로 연결되는 것을 느낀다. 루리아와 마찬가지로 화이트헤드도 전통적인 창조의 개념을 전혀 새롭게, 그러나 같은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트헤드가 전통철학을 비판하는 이유를 제대로 이해하는 현대 신학자들은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신학자들이 신학을 철학과 과학으로 연결하여 과정신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과정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전통 신학을 지배하는 잘못된 신적 이해들  -절대적 부동의 동자, 독재적 남성 군주, 악에 무책임한 모순적 도덕주의자 등-을 오류로 간주한다.

과정신학에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 1930- ) 등이 참여하면서 그동안 기독교의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풀 수 있는 암호에 도전하고 있다. 과정신학자들은 창조자와 창조된 세계가 유기적 의존 관계의 현실 속에서, 미래의 완전을 향하여 가는 과정에, 협력적 창조자로 공동 참여하고 있다고 본다. 만유는 순수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은 내재적으로 서로 침투해 있다. 현실적 존재와 심지어 추상적인 미래의 것들까지도 그렇게 관계를 맺고 있다. 과정신학은 그 자체가 창조론이다. 그들은 과정신학적 관점으로 기독교신학을 전반적으로 수정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은 구체적인 동시에 추상적이며, 영원한 동시에 시간적이며, 초월적인 동시에 내재적인 상태로 존재의 양극성을 아우르는 창조자이며 인간도 그런 과정에서 공동 창조자로 참여한다. 그래서 생태신학과 페미니스트신학 등의 포스트모더니즘 신학들이 모두 과정신학에 일정 부분 빚을 지고 있다. 어쨌든 현대신학은 하나님의 창조를 현실과 동떨어진 고대 문헌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두 개의 눈을 가진 현대인의 관점으로 신학과 철학과 과학의 자료를 망라하여 사실적인 해석을 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과정신학자들과 케노시스 신학자들이 빅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케노시스(Kenosis) 창조이론'을 공동으로 연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케노시스 신학은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 ) 등이 카발라의 찜쭘 이론과 기독교 신학을 연결하여 발전시켰다. 그들은 케노시스 안에서 일어난 창조를 사랑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암울한 현실을 떠나 미래의 창조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