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양심적’ 병역거부? 용어부터 고쳐야

입력 : 2018.07.24 16:14

오래 전 하나님의 말씀은 ‘언어’로 기록돼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우리 기독교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 ‘일점일획(一點一劃)’의 오류도 없다는 ‘성경무오(聖書無誤)’ 사상을 오래 신봉해 왔고, 지금도 보수·개혁주의 신학계에서는 이를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계와 치열하게 논쟁하고 있다.

그만큼 언어란 중요한 것이다. 같은 내용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와 뉘앙스로 다가올 수 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이를 잘 나타내 준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말들이, 누군가의 철저한 기획의 결과물일 수 있다.

이를 대표하는 말이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Die Sprache ist das Haus des Seins)”는 것이다. 언어는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장소이므로, 우리는 그 언어 안에서 거주한다는 뜻이다. 말은 의미, 내용을 담은 ‘그릇’이기도 하다. ‘말은 행동의 거울이다’는 말처럼, 우리 행동을 촉발하는 근원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용어 전쟁’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언어 선점’의 싸움은 치열하다. 이는 기독교 관련 사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이다. 실상은 ‘종교적 병역거부’ 또는 ‘신념에 의한 집총 거부’인데, 이들은 끈질기게 이 용어를 사용하더니 결국 헌법재판소 판결로 그들이 원하던 ‘대체복무제’를 얻어냈다.

집총을 거부하는 이들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여호와의 증인’ 측은 사고 등으로 생명이 위중해 수술이 필요할 때도 수혈을 거부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행위를 ‘양심적 수혈 거부’라고 하진 않는다. 오히려 각종 회피 수단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대부분의 남성들이야말로 ‘양심적 병역 이수자’들로 불려야 한다.

이는 종교적 이유 외에 자신의 비폭력 신념에 따라 교도소에 3년 이상 갇히고 평생 ‘전과자’로 살아야 함에도 병역을 거부하는 ‘비폭력 병역거부자’들과 혼동을 일으킨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 측은 국가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국가가 명령하는 집총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양심적 행위’가 아니라 ‘반사회적·반국가적 행위’ 또는 ‘국민으로서 각종 권리와 혜택만 누리고 의무는 방기한 비양심적 종교인들’로 불려야 마땅하다.

더구나 그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로 불려왔던 것은 교도소행이라는 ‘형벌’도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대체복무제가 실시되는 순간 이들은 ‘양심적’인 병역거부자가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당장 그들의 ‘대체복무제’에 대한 반응만 봐도 그렇다. 그들은 “국방부 산하기관에서는 대체복무를 할 수 없다”며 “군 산하에 있어서는 안 되고 순수 민간 대체복무만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말 그들이 양심적이라면, 이런 요구를 할 수 있는 것인가?

또 하나, ‘성소수자’라는 용어가 있다. 이들이 ‘소수자’인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들이 ‘다수’였다면, 이 지구상에 인류가 아직까지 살아 남아 존재하고 있겠는가? 그런데도 이들은 지속적으로 ‘동성애자’, ‘양성애자’, ‘성전환자’ 대신 ‘LGBTQ’, ‘성소수자’라는 용어로 사람들의 판단력과 인식을 흐트려놓고 ‘선입견’을 주입하고 있다.

그래놓고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더 이상 ‘소수’가 아님을 강조한다. 퀴어축제를 보도한 언론들을 보면,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 참석자들보다 많은 숫자가 참가했음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차라리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버리고 ‘성다수자’라고 한다면 ‘양심적’일 것이다.

이 모든 현상에는 ‘인권’이라는 용어가 바탕에 깔려 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인권’이라는 말 앞에서 그 무슨 말도 꺼내서는 안 되는 분위기다. 인권은 물론 소중하고 천부적인 것이나 ‘만능’은 아닌데도, 그 동안 ‘인권’이 중시되지 못했던 시절의 보상까지 과도하게 받으려 하고 있다.

이들 소위 ‘LGBTQ’는 일찍부터 이러한 ‘용어의 중요성’을 인식해 왔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 ‘사랑·연인·연애·애인·애정’ 등 남녀 간의 것으로 통칭되던 용어들에서 ‘이성(異性)’, ‘남녀(男女)’를 삭제하고 ‘어떤’, ‘두 사람’, ‘서로’ 같은 소위 ‘성 중립적’ 용어들로 교체하는 일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기독교는 이러한 현실에서 ‘진짜 인권운동’에 나서야 할 것이다. 대표적으로 동성애자들보다 더 적은 숫자인 ‘진짜 성소수자’ 탈동성애자들이 있다.

이들은 퀴어축제가 열렸던 지난 14일, ‘퀴어보다 더 좋은’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탈동성애자들의 축제 이름도 ‘홀리 페스티벌’이다. 슬로건에서부터 ‘용어 전쟁’에 대한 치열한 고심의 흔적이 느껴진다.

여호와의 증인 병역거부 대체복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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