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머리 로마서 주석
로마서 주석

존 머리 | 아바서원 번역팀 | 아바서원 | 792쪽 | 40,000원

우리나라 평균 1인 1년 독서량의 평균치를 올리는데 상당한 기여를 한다고 자부하는 이로서-읽는 책의 질과 소화력은 일단 제쳐놓고라도-오랫동안 나름 책을 읽고 주관적인 리뷰를 많이 올려 왔었다. 그러다 보니 격려를 들은 적도 있지만, 어떤 책을 번역하신 분으로부터 내 리뷰에 대한 한탄을 담은 이메일을 받은 적도 있었다.

내 소견으로나 객관적으로나 어느 정도 옳은 이야기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사자로서는 불편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또 최근 내 자신을 돌아보면, 많은 리뷰들이 내가 논할 수준이나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저자나 역자 및 출판사에 죄송하기도 하고 내 스스로 자꾸 주눅들 때가 있다.

그것은 내 주장의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논할 영적 수준이나 지적 능력, 그리고 깊이가 내게 있느냐 하는 것이다. 즉 말할 자격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책 한 권 쓴 적도 없고 또 그럴 능력도 안 되며 신앙의 연륜과 깊이를 가진 분들 앞에서 그 분들의 고민과 기도가 담긴 책들을 논하는 것이 타당한지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럼에도 다시 키보드 앞에 앉는 것은 내 자신이 어떤 이해관계나 개인적인 고집이 아니라 좋은 책을 소개하고픈 욕심이고, 책을 읽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판단의 기준을 제공하고자 함이다. 그래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읽었던 일부의 책들 중 몇몇을 다른 이가 읽고 도움을 얻는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책들, 감히 무언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심히 부끄러워지는 책과 저자들이 있다.

이번에 읽은 존 머리의 로마서 주석이 그러하다. 참 오랫동안 읽었다. 책 자체가 700쪽이 넘어가는 대작이기도 했고 로마서 주석이라는 점도 그러했지만, 몇 달에 걸쳐 참 힘들게 읽었다. 이것은 이 책이 재미없다거나 읽기 어려운 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석이지만 그래도 딱딱하지 않았고 까다롭고 골치 아픈 신학논리나 이론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쉽게 나아가지 못했다. 그것은 저자가 묵직하고, 인기가 없는 전통적이며 조미료 없는 복음주의적으로 로마서를 접근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 듯 싶다.

존 머리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수련회 때였다. 좀 장황하긴 하지만 이전 수련회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언급하고 싶다.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내게 수련회들은 대부분 나의 신앙이나 삶에 있어서 상당한 도약점이나 변곡점을 가져오곤 했다.

그 수련회들은 내게 여러 가지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때 교회 내에서 벗어나지 않던 여름성경학교가 아닌 야외 수련회로 갔었던 적이 있었는데, 캠프파이어를 하는 자리에서 내 기억으로 첫 거짓말을 했다. 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 별명이 '책벌레'라고 거짓말했는데, 그때부터 본격적인 진짜 책벌레의 길을 가게 됨으로써 조금은 이상하지만 기억하는 첫 번째 수련회가 되었다.

그러다 중등부 때 간 수련회를 통해 담당 전도사님이 '성서로 본 조선역사'를 주제로 강의하심으로써 함석헌을 만났다. 청년부 때도 잊을 수 없는데, 모교회 대학부 강사 목사님을 통해 청교도들의 경건과 거룩을 마음 속에 새김으로 나름 잘 살았다고 믿었던 내 자신에게서 '진노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죄인'의 모습을 보고 통회하며 커다란 변화를 경험했던 적이 있었다.

각각의 수련회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를 구성하고 다듬고 깎아 만들어 갔다. 그 모든 수련회가 각각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갔는데, 그 중에서도 대학부 때 간 여름수련회는 내게 있어 말씀 묵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끼고 체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로이드 존스 설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으신 정근두 목사님이 강사였는데, 10절 남짓 되는 구절로 예화도 없이 강해 설교로만 네 차례 정도 2시간 반씩 설교하시는 것을 보며, 말씀묵상을 저렇게 깊게 할 수 있구나 하는 충격을 받았다.

그 수련회 이후 QT를 최소 한 시간 이상은 매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것을 이어간다. 성서유니온의 매일성경으로 30년 가까이 해 왔고 또 그것을 컴퓨터로 기록해온 것이 2000년 정도부터이니, 내용의 실함을 떠나 이미 나의 묵상으로 된 성경 66권으로서 그 흔적이 남아있게 되었다.

그것이 신학적으로나 깊은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모자라지만, 내게 있어 성경공부나 설교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내 자랑이나 자아도취에 빠지고자 함이 아니다.

모자이크 종교 믿음 타일 아트 교회 암스테르담 네덜란드 베드로 바울 교회 앵무새
단지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것은 그때 그 수련회 때 그런 충격을 주셨던 목사님이 낮 시간에 특강 형태로 청교도적 전통을 견지하셨던 몇몇 신학자나 설교자를 말씀하셨는데, 그 중 한 명이 그 분의 박사학위 주제였던 로이드존스였고 또 한 명이 존 머리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앞서 경건과 거룩을 배우게 한 수련회가 영성의 깊이를 감성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말씀만을 붙들고 그것을 깊이 내 것으로 체화하는 것은 이성적 차원에서의 경건을 배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서로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하나 되어져 그것이 심화될 때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내면을 들여다보면 아직도 멀고 먼 것임을 느끼곤 하지만 결국 각각의 수련회들은 내게 내 내면을 돌아보고 무엇이 옳은지 알려주는 잣대가 되었다.

이번 존 머리의 로마서 주석을 보며 그런 영적 거인의 모습을 마주한다. 이런 거인의 책 앞에서 감히 나 같은 수준의 목사가 책을 논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과 또 이미 주눅들었기에, 책 자체에 대한 논의는 피하려 한다. 단지 그 무게와 깊이만을 인정하고플 뿐이다.

그런 점에서 그가 기술해 가는 로마서는 지금 세계 신학계를 주름잡는 여러 학자들보다 화려하지도 않고 인사이트가 강해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학자들에게서 볼 수 없는 깊이와 뜨거움을 본다. 화려한 반찬 없이 깍두기 하나에 설렁탕 한 그릇 내놓는 오래된 맛집마냥 그런 단순하고 깊은 맛을 보여준다.

그의 이런 무게감을, 우리가 이 시대 학자나 목회자들이 보기에 좋은 학문과 듣기 좋은 설교를 한다는 이름 하에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일부의 문제이겠지만....

어찌 됐건 이런 단순함은 이 시대의 인기 상품은 아니다. 좀 더 인기를 끌려면 성경 바깥에서도 강한 시각도 많이 끌어 놓아야 하고, 사람들의 입맛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조미료도 좀 더 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존 머리는 그러지 않는다. 깊은 성경 묵상과 연구에서 나오는 저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잘 팔려야 하고, 또 많이 읽어야 할 책이다. 물론 이것은 소망일 뿐, 실제로 이 책이 얼마나 팔리고 읽을지 염려가 된다.

추신: 이 책은 성경을 중심으로 한 묵상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지만, 부록에서 몇몇 이슈적인 구절에 대해 신학적 논점과 설명을 잘 보여줘 좀 더 깊은 단계를 맛보게 한다. 약간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로마서 13장에서 정부의 기능에 대해 보수적인 태도뿐 아니라 12장과의 연계성에 대해 별로 가치를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