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구원의 확신'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습니다. 로마가톨릭은 원천적으로 확신을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점지를 받은 특별한 사람 외에, 평범한 교인이 확신을 갖는 것은 마귀의 역사라고 단죄하기까지 합니다.

한편 확신을 심리적 현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신념을 확장시키면 확신이 되며, 최면에 잘 빠지는 심리적 유약자들이 확신에 잘 빠진다고 말합니다. 말도 안 되는 감언이설이나 이단에 잘 빠지는 이들이 그런 류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정반대 분석을 내놓는 이들도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자주 의심에 빠지는 것은 개인의 의지 박약과 심리적 불안증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신앙뿐 아니라 매사에 확신이나 자신감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분석들은 모두 확신을 인간의 의지와 심리의 산물로 본 결과입니다. 만일 기독교의 확신이 그런 류의 것이라면, 기독교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구원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의 확신이 가능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단지 심리적 작용에서 생겨난 결과물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영적이고 인격적인 것입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구원의 확신'은 "예수 믿어 구원 얻음"을 하나님의 명령(뜻)으로 받들어 순종하는 이들에게 따르는 신본주의적인 어떤 것입니다.

'구원'을 자신의 가능성에 의존시키거나 인간의 필요에 의한 것으로 여기는 인본적 구원 개념에는 확신이 수반되지 않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 얻음"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해할 때만 확신이 따라붙습니다.

물론 구원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수납한다 해서 다 확신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적인 구원 명령'은 확신보다는 정죄 의식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성경이 믿음을 순종으로 말하면서도 율법에 대한 순종과 구분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인간의 연약성으로 인해 실패할 수밖에 없지만, 율법의 성취로 경륜된 '믿음에 대한 순종'은 실패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율법 준수가 전제 된 율법적 구원 명령 곧 "행하여 구원을 받으라(갈 3:12)"는 '살 수 있다'는 구원의 확신보다는 오히려 정죄 의식을 갖다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율법 성취로 경륜된 "믿어 구원 얻으라(롬 10:4, 행 16:31)"는 명령에는 '구원의 확신'이 수반됩니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명령은 실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믿음에 대한 순종'을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벧전 1:2)"이라고 했음은 '율법에 대한 순종'과 차별화 한 것이고, 실패 가능성이 없는 성령의 경륜임을 뜻합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요 6:40)"이라는 말씀은 '예수를 믿고 영생 얻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뜻)'일 뿐더러(시 133:3, 요 12:50), 그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는 영생의 확신이 따름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이는 "예수 믿어 영생 얻는" 하나님의 명령(뜻)은 실패할 수 없을 뿐더러, 구속력(拘束力)이 있고 그 구속력이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겠구나" 하는 강한 확신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예수 믿고 영생 얻음"을 명령이 아닌 부드러운 권면으로 그쳤다면, 구속력(拘束力)이 없기에 "예수 믿어 영생 얻음"에 대한 강한 확신도 따라붙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믿지 않는 자들을 정죄하신 것은(막 16:16) "예수 믿어 구원 얻으라"는 성령의 명령을 거부했기(행 7:51) 때문입니다. 만일 그것이 명령이 아닌 그저 부드러운 권면이었다면 정죄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청교도 존 오웬(John Owen, 1616-1683)이 믿음을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최고의 순종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하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믿음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그리고 순종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존 오웬, 개혁주의 성령론, 368)." 이처럼 "믿어 구원 얻음"에 대한 확신은 신념이나 최면으로 말미암는 심리적 현상도 아니고 혹은 단지 인간의 필요에 의한 '인본주의(humanitarianism)'의 발로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신본주의(the God-oriented)'의 발로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의 확신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믿어 구원 얻으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 영광을 지향합니다. "믿어 구원 얻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일 뿐더러, 하나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구약을 통틀어 믿음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영광을 지향하는 신본주의자들이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 11:6)",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말씀은 그들의 신앙 좌표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방편으로 이해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가 받은 하나님의 약속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은 이유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였습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롬 4:20)."

하나님 영광에 대한 그의 열망이 자신의 믿음의 나약함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의 믿음이 나약해짐은 곧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고 마귀를 기쁘게 하는 일로 생각했기에 결코 믿음의 회의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들이 자신을 믿지 않은 이유를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말씀한 것도 "그리스도를 믿음"과 "하나님 영광"이 직결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 5:44)".

"예수 믿어 구원 얻음"이 하나님 영광의 경륜임을 이해할 때 불신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특히 오늘 같은 불신의 시대에 "예수 믿어 구원 얻음"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없어 보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 얻음"은 인간을 위한 것인 동시에 하나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믿어 구원 얻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쫓는 신본주의 신앙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속성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거듭나지 못한 '가라지 교인'들에게는 하나님 영광을 지향하는 신본주의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들로 하여금 무엇을 행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 하나님 영광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희생과 손실을 무릅쓰고서라도 기꺼히 순종하려 합니다. 흔히 공격자들의 주장대로 '구원의 확신'은 자신의 구원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려는 '안간힘'이라기보다는, 믿음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는 거듭난 자의 열망의 발로입니다.

마지막으로 "믿어 구원 얻으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과 "성령의 관계"를 말하고자 합니다. 곧 "믿어 구원 얻음"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순종할 때 부어지는 성령이 확신을 부추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행 5:32)"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믿어 구원 얻으라"는 명령에 순종할 때 성령이 부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는 '율법적 행위'가 아닌 율법의 성취로 경륜된 '믿음'에 성령이 부어진다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 3:2)". '순종케 하시는 영'일 뿐더러 '순종하는 자에게 부어지는 영'인 성령은 믿음의 순종을 하는 자들에게 부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스도 위에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신 것은, 그가 대속의 죽음을 죽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므로 성령이 부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 믿어 구원얻으라"는 명령을 순종할 때 도장으로 인(印)친 것처럼, 성령이 영혼에 인(印)처지므로 구원의 확신이 생겨납니다.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印)치심을 받았으니(엡 1:13)".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이신칭의, 값싼 구원이 아닙니다(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