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70년 예언과 21세기 한국교회의 사명

입력 : 2018.07.18 09:33

* 본지는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의 논문 <예레미야 70년 예언과(렘 29장)과 21세기 한국교회의 사명>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I.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2018년의 대한민국

금년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 남북한이 각각 정부를 수립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남북한의 정부수립은 한반도 안에 두 개의 체재가 고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수립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새삼 떠오르는 생각이 예레미야 70년 예언이다(렘 29장).

지금으로부터 2600여 년 전 예레미야를 통하여 유대민족에게 약속된 회복의 70년 예언이 오늘의 한반도 역사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어진 회복 약속 속에 담긴 하나님의 역사적 섭리를 헤아려보면서 체재분단 70주년을 맞는 오늘의 한반도 상황을 진단하고 그 안에 담긴 신앙적 함의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모색하는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남북의 평화통일은 우리민족이 풀어야 할 가장 절실하면서도 막중한 역사적 과제이다. 이 문제의 해결 없이는 누구도 우리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남북 당사자는 물론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한반도의 통일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가이다. 독일은 28년 전인 1990년 동서독 통일을 이루어 지금은 세계강국으로 우뚝 서있다. 1975년 월맹에 의해 흡수통합이 된 베트남은 자유경제체제 하에서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의 북쪽과 공산주의의 남쪽으로 양분되었던 예멘은 1990년 합의통일을 이루었지만, 1994년 재차 분단되었고, 같은 해 북예멘의 무력침공으로 흡수통합이 되었다. 그러다가 2013년부터는 남예멘에서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시위가 벌어지면서 치안상태가 매우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다. 대만은 중국과 상당기간 심각한 갈등관계를 겪었지만, 삼불정책(불독립-불통일-무력불사용)을 앞세운 마잉주 총통의 2008년 집권과 2012년 재집권으로 양안간의 교류협력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양안관계는 활발한 교류협력으로 실제적 통일(de facto unification)을 이룬 상태이기도 했다. 2016년 새로 집권한 차이잉원 총통이 대만독립정책을 주장하고 있긴 하지만, 기존의 양안 간 교류협력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II. 절망 속에서 주어진 미래 희망으로서의 70년 예언

예레미야는 베냐민 땅 아나돗 지방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유다의 제16대 왕이었던 요시야 재위 13년(주전 627년)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배반하며 율법을 저버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바빌론에게 점령당하고 지도층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주전 597년 유다의 18대 왕이었던 여호야긴이 바빌론으로 사로잡혀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예언자로서 바벨론 포로들에게 편지를 보낸다(렘 29:1-3).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바빌론에 상당기간 정착하여 살 것을 권면했다. 곧 그곳에 살아갈 집을 짓고, 양식을 위해 전원을 만들며, 아내를 맞아들여 자녀를 낳을 뿐 아니라 그 자녀들도 결혼시켜 자손의 번성을 이루라고 권면했다(5-6절). 또한 그들이 살고 있는 바벨론 성읍의 평안을 위해서도 힘쓰라고 했다. 그것은 그들이 그곳에서 평안하게 살아가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렘 29:7). 예레미야의 권면은 바벨론 포로가 여호와의 섭리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에 정해진 기간 동안 바빌론에 정착하여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기간이 70년이라는 것이다(렘 29:10). 그와 같은 예레미야의 권면은 당시 바벨론 포로들 사이에서 활동하였던 거짓 예언자들과 점술가들의 잘못된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곧바로 포로생활에서 풀려날 것이라고 백성들을 현혹하였다(렘 29:8-9). 그런 주장은 바벨론에 대한 반란으로 오해될 여지가 있어 심각한 정치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다.

비록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하였지만, 그들의 미래희망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것이 예레미야의 '새 언약'이다(렘 31:33).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로 파기된 시내 산의 '옛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여 영원히 지속될 '새 언약'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민족적 비극인 바빌론포로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필수과정이라는 것이 '새 언약' 예언의 핵심이다. 예레미야가 '새 언약' 예언에 앞서 '70년 예언'을 제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새 언약'이 바벨론 포로라는 역사적 과정을 거친 후에 주어질 미래의 결실이라면, '70년 예언'은 바벨론 포로가 영원한 형벌이 아님을 밝히는 희망의 메시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 곧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렘 29:11).

나라가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엄청난 비극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간이 70년으로 제한된 것은 절망 속에서 주어진 희망이 아닐 수 없다(렘 25:11-13; 29:10). 때로 하나님께서는 잘못을 범한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시지만,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켜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것은 분명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었다. 그러나 그 기간은 70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것을 '칠십 년이 차는 것'(Seventy years are completed)이라고 표현하였다. 여기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 '말레'는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예레미야가 제시한 70년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로 기다리며 채워야 할 시간적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2-13)고 약속하셨다. 70년이란 곧 하나님께 대한 신뢰 속에서 기도하며 보내야 할 거룩한 시간이어야 함을 보여준다. (계속)

권혁승 박사(서울신대 구약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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