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G테크놀러지
제가 입사한 지 4년째 되던 1992년, 회사에 큰 위기가 닥쳤습니다. 회사 영업사원이 세곡동 사거리에서 신호등을 통과하다 과실로 교통사고를 냈습니다. 길을 건너던 모녀가 목숨을 잃었고, 유가족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내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사고가 났다. 내 기도가 부족했다...." 이장우 회장님은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고, 최선을 다해 사건 수습에 나섰습니다. 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갓집 분위기는 예상대로 험악했습니다. 욕설이 쏟아지고 멱살을 잡히는 가운데 이 회장님은 "제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끝까지 모든 질책과 모욕을 다 받고 사죄하셨습니다.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그 자리에 다혈질인 제가 있었다면 아마 발칵 뒤집어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였지만, 회사는 위기 속에서 결속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사고 발생 때부터 전 과정을 지켜본 우리들은 "더 열심히 일해야 하지 않겠느냐"라는 이장우 회장님의 다독임에 한 번 더 감동을 받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전혀 변화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바꿔내시는 것을 보고 '회장님은 참 인덕이 많다'고 느꼈는데, 이때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94년, 회장님은 제게 협력업체의 경영을 맡아보라고 하시며 대학에서 다시 경영을 공부할 것을 제안하셨습니다. 회사의 배려로 일찍 퇴근하며 학업에 한참 집중하던 때, 이번엔 저와 동료 3명이 출근길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1996년 2월 14일,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중부고속도로에서 차량 30여 대가 충돌하는 대형사고로 제 친구는 그 자리에서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탑차가 우리가 탄 차를 밀어버리면서 운전석에 앉은 친구의 머리가 눌려 즉사한 것입니다. 저는 얼굴에 136바늘을 꿰매고 팔이 마비되어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가슴이 더욱 아픈 것은 이 친구가 재입사한 지 10개월여 만에 사고를 당한 것입니다. 퇴사 후에도 몇 달 놀고 있길래, 제가 회장님께 특별히 부탁드려 다시 회사로 불렀었죠. 코앞에서 친한 동료의 죽은 모습을 목격한 것은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고 당시의 냄새로 일주일 동안은 밥을 삼킬 수도 없었습니다.

고영구 일출정밀 대표
▲고영구 일출정밀 대표
저 역시 사고 후 기절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병원에서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번개처럼 스쳐 가는 생각은 '하나님이 나를 또 살려주셨구나'였지요. 태어난 지 70여 일 되어 열병으로 죽었다 살아난 제가 다시 한번 죽을 고비를 기적적으로 넘긴 것입니다.

6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장우 회장님은 매일같이 찾아오셨습니다. 다른 것은 절대 안 사오시고 딱 박카스 한 박스만을 계속 들고 오셨습니다. 병원에 들려 매번 어려움이 없는지 물어보시고 기도해주셨습니다. 그러한 관심과 사랑 안에서 저는 빠르게 쾌차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고영구 3G테크놀러지 사내 협력업체 일출정밀 대표(64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