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왕철
▲지왕철 대표회장. ⓒ크리스천투데이 DB

기독교 보수원형 찾기는 이 시대의 기독교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와 관련하여 매우 시의 적절한 운동이며 한국기독교나 세계기독교사에 희망을 주는 최고의 과제이다.

기독교가 말하는 두 가지 보수는 첫째는 역사적 보수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이다. 역사적 보수란 지금까지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견지해 오고 있는 일명 보수라는 신앙논리를 말한다. 이 논리 안에는 선후의 문제나 경중의 문제가 내제되어 있지만 대체로 카톨릭시즘, 어거스틴 논리, 칼비니즘, 알미니안 주의, 웨슬리안,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오순절주의나 현대시대와 맞물려 외쳐는 많은 신앙논리들의 범주를 망라한 신앙논리들을 말할 수 있다.

이같은 역사적 보수의 논리들을 들여다 보면 생각보다 다양하고 일치할 수 없는 상이한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들만의 논리구조를 가지고 보수성과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은 오직 하나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는 성경의 보수원형이다. 기독교는 역사적 보수만을 이야기 해 왔고 그것만이 유일한 보수라고 외쳐 왔다. 그런데 기독교에는 또 다른 보수가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아닌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이다.

이 보수원형의 특징은 어디에도 영향받지 않고 성경만이 지니고 있는 원형적인 보수를 말하는 것이다. 역사적 보수는 여러 개의 논리구조가 존재한다. 카톨릭이 있고 어거스틴과 칼빈의 장로교가 있고 알미니우스와 웨슬레의 감리교가 있고, 침례교가 있는 등 여러 개이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은 어디까지나 절대 유일한 하나의 보수원형이라는 것만 지니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은 절대적으로 하나만 존재한다. 성경 안에는 오직 하나의 절대 유일의 보수원형인 세계관만이 존재한다. 둘 이상의 세계관이 존재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성경 안에 상이한 다수 이상의 보수원형이 존재한다면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며 커다란 혼란이 자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적 보수는 결코 절대성을 가지지 못한다. 역사적 보수는 상대적이다. 아무리 역사적 보수가 절대성을 외쳐왔다고 하더라도 역사적 보수는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 절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이 역사적 보수가 안고 있는 한계이다.

성경이라는 보수원형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절대적으로 언제라도 그 자리에 있지만 상대적인 자리에 있는 역사적 보수는 성경이 말하는 절대적인 보수원형의 판단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 보수는 결코 절대적인 보수가 아니며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역사적인 보수를 절대적인 것으로 신봉하는 것은 절대적 보수원형과 상대적 보수의 입장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데서 비롯되었다.

역사적 보수와 성경만이 지니고 있는 보수원형이라는 양자의 보수는 당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양자의 보수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아직도 확인된 바가 없는데, 한국교회에서는 물론,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서구 기독교에서도 이에 대한 상관관계에 대하여 어떤 관계에 있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사람들은 역사적 보수가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이라고 믿고 따라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 보수가 어디에 근거한 보수인지 실제적이고 사실적으로 역사 속에서 논의된 바가 거의 없다. 양 보수가 동일할 수도 있고 상이할 수도 있다. 양자의 보수논리가 동일한 하나일 수도 있고, 서로 다른 보수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상이한 논리들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 보수는 성경이 말하는 절대 유일의 보수원형과 일치한다고 장담하기는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역사적 보수 논리 안에서조차 일치하지 않는 것이 다수 존재하기에 성경만이 지니고 있는 절대 유일의 보수원형과는 상이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적 보수는 문제가 있다.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은 오직 하나인데 역사적 보수는 여럿이다. 이 자체가 먼저 문제이며 모순이다. 왜 성경이 말하는 보수원형은 하나인데 역사적 보수 논리가 여럿이어야만 하나?

이것이 암시하는 바는 성경이 말하는 절대 보수원형이 나타난다면 대다수의 역사적 보수는 그 존재 기반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계의 큰 문제는 상대적 보수 즉 역사적 보수를 절대적 보수원형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속)

지왕철 대표회장(성경원형(본질)회복운동, 전 사단법인 한국기독교보수교단협의회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