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서울대공원

고주한 | 홍성사 | 232쪽 | 14,000원

저는 요리 재료 중에서 '두부'를 좋아합니다. 그대로 간장에 찍어 먹는 것도 좋아하고 전골도 좋아하지만, 제가 가장 맛있게 요리할 수 있으면서 좋아하는 요리 형태는 '두부부침'입니다. 두부부침 하나면 밥 한 그릇은 뚝딱 해결합니다. 그래서 아내나 어머니는 곧잘 두부부침을 해 줍니다.

며칠 전 어머니가 두부부침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엄마, 나 할 말이 있는데 상처받지 마세요. 그냥 하는 말이니" 했고, 어머니는 "해 보라!"고 하여 말했습니다. "어제 한 두부부침은 간장을 많이 넣어서인지 짰고, 오늘 두부부침은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서인지 너무 매콤하네." 아주 못된 아들이죠? 그냥 주는대로 먹을 것이지 말입니다. ^^

도서를 음식으로 비유한다면, 도서의 장르는 요리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요리 재료를 놓고 찜도 하고, 부침도 하고, 튀기기도 하고, 탕으로도 하고, 볶기도 하듯,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시나 에세이, 소설이나 만화, 기독교라면 설교라는 장르의 틀에 넣어 글을 씁니다.

이 책의 저자는 어떤 책을 읽다가 혹은 사는 게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픈 '요리 재료'가 떠올랐을 겁니다. 어떻게 요리할까 궁리하다 택한 요리가 '소설'입니다.

잠시 줄거리를 훑어보겠습니다. 외제차 딜러로 일하며 돈을 많이 벌던 어느 남자가, 친구에게 26억원을 사기당해 무일푼이 되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다니며 자신을 위해 헌신적인 아내에게 미안한 그는 자살하기로 한 다음 날 아침 서울대공원의 진돗개가 되었고, 공원 안내자인 알렉한드로라는 이름의 아저씨와 더불어 여러 동물들과 만나며 삶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줄거리만 보면 우화 같습니다. 이 소설은 우화의 형태를 가지고 실의에 빠지고 낙담한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전을 주는 교훈적 에세이입니다. 진돗개로 변하는 대목에선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끔찍한 해충으로 변한 이야기를 다룬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르고, 여러 동물들을 통해 교훈을 듣는 장면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도 떠오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드는 의문은 '왜 소설로 썼을까?'입니다. 이 소설의 메시지는 지나치게 노골적입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쓸 거면, 그냥 격려가 되는 글들을 모아놓은 잠언집이나 에세이 형태로 내도 됩니다.

좋은 재료가 있는데 요리에 자신이 없으면, 그냥 그대로 내놓는 게 낫습니다. 맛있는 두부는 특별히 요리하지 않고 간장에 찍어 먹기만 해도 맛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요리에 자신이 없는데 갖은 양념을 넣고 갖가지 수를 쓰면 오히려 질 좋은 재료의 맛까지 상하게 됩니다.

자신이 진돗개로 변하고 나서 자신의 짓는 소리로 거울도 안 보았고, 누가 자신에게 "너는 진돗개다!"라고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진돗개로 변했다는 걸 알게 되는 첫 장면부터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등장하는 동물에게 팔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설정은 재미와 몰입을 위한 것이겠지만 유치하고, 동물들이 주인공에게 동서고금의 도전이 되는 온갖 예화들을 들려주는 대목에선 좋긴 하지만 지나치게 지시적이고 교훈적입니다.

편집에 있어서도 아쉬운 것이, 중요한 대목이라 생각하는 문장에서는 글자 크기를 크게 하거나 작게 하는 조절을 통해 부각시킵니다. 이 방식은 일반적인 소설에서 거의 쓰지 않고 에세이나 잠언집에서 주로 사용하는 겁니다.

저는 다시금 '메시지에 소설이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만만한 요리가 아닙니다. 저는 에세이도 써 봤고 시도 수 백편 써보았지만, 소설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에세이 쓰기보다 시 쓰기가 어렵고, 시 쓰기보다 소설 쓰기가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는 내용을 예쁜 문체로 쓰는 게 에세이이고, 아는 내용을 비틀어서 은유적으로 넌지시 알려주는 게 시이며, 뛰어난 문장 실력과 엄청난 자료 조사로 설정과 장치를 매설하여 사실과 허구의 조합을 가지고 시대를 반영하여 글을 쓰는 요리가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조사한 많은 예화들을 순서대로 배치시키면서 소개할 수 있는 요리로 소설을 택한 작가의 선택은, 소설을 많이 읽지 않고 소설을 만만하게 본 흔적이 곳곳에 보여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습니다. 소개한 많은 예화들은 자체로 탁월한 음식 재료라, 따로 모아 책으로 엮어도 상품성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를 생산하는 기술보다 정보를 엮는 기술이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으니 말입니다.

맛있게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구미가 당기는 요리가 없는 게 소설이란 장르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에 대해 호기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좋은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여 소설의 질을 높이고, 나아가 기독 출판의 부흥을 주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성구 부장(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