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송인규 외 | IVP | 288쪽 | 18,000원

1980-90년대 기독교계에서 커다란 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기독교 세계관 운동'은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답한 상황에 빛을 던져준 중요한 일이었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이해만이 아니라 학문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해석의 시도를 했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녔다. 그것을 토대로 교회청년들이 독재와 불의한 정권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있어서도 도전을 주었다.

하지만 그 대응을 보면 항상 한 박자 늦은 듯 보였다. 예를 들면 포장만 직선제로 바뀌었던 대선에서 기독교 내에서도 공정선거 운동은 있었지만 선거 이전에 정권과 미디어를 통한 불법선거가 행해지는 속에서 이미 공정성은 없었다.

일반 사회나 학문 속에서도 나름의 이론을 제시하고 체계를 갖춘 듯 했지만 미국 상황에서의 기독교 세계관과 적용을 그대로 국내에 답습함으로써 현실과의 간극으로 기독인들에게 당혹감과 적용의 한계 속에서 갈등과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청년층과는 달리 변하지 않는 기독교 지도층 대다수와 교회로 인해 고민과 회의에 빠진 청년층들이 대거 교회를 떠나는 지금의 현실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이런 간극을 줄이고자 힘쓰는 이들이 있었다. 출판계나 학계에서도 이론과 현실의 틈을 메꾸려는 수많은 시도가 시행착오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그에 대한 대안과 적용을 가능하게 하려는 고민들이 계속 있어왔다.

이러한 시도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연구 중 하나가 교회탐구포럼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국내 기독교 세계관 운동 1세대라 할 수 있는 송인규 교수님이 주도하는 교회탐구포럼은 기독교 내의 여러 가지 이슈들을 놓고 발제와 토론을 통해 나눈 것들을 책으로 묶어 내놓곤 했는데, 벌써 여덟 번째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기독교 세계관 운동이 한참 뒤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면 교회탐구포럼은 조금 더 빨리 세상 속에서 교회를 이해하려는 시도들을 한다. 초기 포럼들은 교회탐구포럼이란 제목처럼 너무 교회에서만 갇힌 면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조금씩 더 세상에서의 교회와 성도의 위치를 고민하면서 그 지평을 조금씩 넓히고 있는 듯 보인다.

이번엔 페미니즘이다. 이미 이전에 교회탐구포럼 2에서 '한국교회와 여성'이란 연관된 주제를 다루긴 했지만, 좀 더 교회 내 여성에 대한 고찰이라면 이번 주제는 미투운동과 페미니즘과 연결지어 포럼을 개최한 듯 싶다.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것은 요새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쉽지 않긴 하다. 교회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발언할 때, 말하고도 본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진솔하게 이야기해도 오해받을 소지나 편견이라고 비판받기 쉬울 듯 싶다.

두란노에서 얼마 전 나온 김영한 박사의 '젠더주의 도전과 기독교 신앙'은 페미니즘을 전면적으로 다룬 책은 아니지만, 책 속에서 젠더주의와 페미니즘의 연관성을 어느 정도 담아낸다는 측면에서 페미니즘과 젠더, 성소수자 등의 문제를 기독교에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책이었다. 독일에서 철학과 신학에 대해 공부했던 원로 학자인 저자의 글은 그저 일방적 주장에 그치는 책들에 비하면 읽는 독자들에게 기독교적 접근과 시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8차 교회탐구포럼
▲한국교회탐구센터 송인규 소장이 '여성을 향한 복음주의의 4가지 시선'을 주제로 발표하는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하지만 저자의 글이 지나치게 기독교적 진영에서의 이해이고, 젠더와 페미니즘주의자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그들을 이단적 비판을 하다시피 바라보는 측면이 있어, 과연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 지금의 이슈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풀어갈 수 있을지는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은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기독교인들 일부만.

그에 반해 교회탐구포럼은 페미니즘에 있어 기독교와 교회 안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점에서는 동일한 출발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이해의 폭을 넓히고 이에 대한 여러 관점과 복음주의 쪽에서는 꺼려질 수 있는 발언까지 담아내려 노력한다. 특히 이슈들에 대해 단순히 신학적 접근을 하는 것을 넘어, 현실과의 관계 측면에서 풀어내려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우리가 어떤 것을 고민하고 어떤 이해와 시도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 이 시기에 기독교적 고민을 내놓는 것은, 비록 일부는 시행착오도 있고 서로 다름과 충돌이 있더라도 신앙 안에서 세상의 이슈를 어떻게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지를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글은 역시 송인규 교수에게서 시작된다. 기독교 내에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 몇 가지 관점을 체계적이고 탁월하게 비교 정리하고 제시한다.

두 번째 글은 <교회 언니 여성을 말하다>의 저자이자 번역가로 알려진 양혜원 박사의 글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교회 내에서의 여성과 사모로서의 문제 등을 다룬다. 앞서 송인규 교수의 글이 이론적으로 우리들의 현실과는 약간 거리감을 두었다면, 양혜원 박사의 글은 현실적이고, 포럼의 글 중 가장 공감이 가며, 여성 문제를 깊게 느끼고 고민하게 만드는 글이다.

세 번째 글 저자인 백소영 교수는 포럼 발제자 중 가장 이질적이고 도발적이다. 복음주의나 보수적 신앙생활을 해온 독자라면 거북하고 불편할 수 있는 성경에 대한 저자의 시각과 공격적인 글들을 느낄 수 있지만, 이 시대 페미니즘과 교회에 대한 시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주목해야 할 부분이고 고민해야 될 글이다.

제8차 교회탐구포럼
▲교회탐구포럼에서 양혜원 박사가 발표하는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복음주의 시각에서는 또 다른 반대편의 진영논리가 어느 정도 느껴지는 글이고, 현대 교회에 불편함을 느끼는 기독인들에게는 저자의 글이 사이다 발언 같을 수도 있겠지만, 결국 앞서 나온 글들을 같이 아우러 소화해내는 노력을 기울일 때 이 사회 속에서 기독인들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풀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 생각한다.

앞서 김영한의 저작처럼 학문적으로 가치가 있고 특히 기독교적 진영 논리로는 공감 가는 글이어도,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또 다른 벽을 만든다면 옳고 그름을 떠나 갈등과 교회의 소외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네 번째 김애희의 논문은 교회 안 여성문제에 대한 설문조사를 담고 있는데, 지금 한국교회의 여성 문제와 시각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글이다. 단지 그 가치 측면을 떠나, 아무리 좋은 설문 결과도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한 유익도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측면에서 일부 결과가 이런 요인 때문에 나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결과와 현실은 다를 것이라고 읽어내는 점은 또 다른 선입견과 프레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으로 정지영의 글은 여성 관련 책들에 대한 정보들을 담아 정리해 주는데, 페미니즘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유익한 정보다. 개인적으로 오래전 읽었고 좋아하는 책이지만 주변 분들이 잘 알지 못했던 책에 대해 글쓴이가 언급하여 무척 반갑고 기뻤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번 교회탐구포럼 8권도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중요한 이슈들을 다룬다는 측면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책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의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은 지나치게 이분화된 극단성을 보여주는 면이 있고, 교회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책을 통해 미리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좀 더 공동체 내의 이슈들을 객관화시키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바라건대 다음번 포럼 때는 좀 더 뜨거운 이슈들을 놓고 다루어 줌으로써, 한국교회에 대해 더욱 큰 도움을 주기를....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