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난민들을 환대하기 전에

입력 : 2018.07.10 14:17

성경은 지속적으로 약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돌보라고 그리스도인들에게 명령한다. 구약과 신약이 크게 다르지 않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환대하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뜻이다. 지난 호 사설에서도 우리는 그 부분을 분명히 짚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예멘인들 549명이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하면서, 유럽을 휩쓴 '난민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농어촌 중심의 '결혼 이민'으로 시작된 다문화 문제도 그들이 낳은 자녀들이 점점 청소년과 청년들로 커 가면서 앞으로 쉽지만은 않은 문제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일단 예멘인 난민들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견은 '반대'가 우세하다. 난민들, 특히 이슬람이라는 특정종교 난민들이 유럽에서 저지른 일들과 그 결과를 똑똑히 지켜봤기 때문이다. 유럽 사회가 난민 사회에 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환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아무 죄 없는 시민들을 잔혹하게 죽인 테러였다.

무엇보다 유럽으로 옮겨온 그들이 그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각종 혜택들은 마음껏 향유하면서도, 그곳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지 않은 채 '무슬림 공동체'로 살고자 함으로써 커다란 문제를 초래하고 말았던 데 문제가 있다. 그들의 공동체는 이웃에게 호전적인 '꾸란'을 삶의 최고 기준으로 삼고 있기에, 더 이상 그들을 보살핌이 필요한 '난민'으로 간주해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가 어려워진다.

더구나 한국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난민 제도의 허점을 활용하거나 이를 통해 장기 체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거부감은 커지고 있다. 특히 '공평과 정의'를 중요시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그들에게만 '특권'을 부여하는 것을 못마땅해한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밤에 거리를 다녀도 안전하다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치안’ 문제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가장 크다. 난민 입국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역대 가장 많은 국민들이 동참한 것도 이러한 이유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언론들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행정법원 전체 사건 10,870건 중 난민 사건이 3,143건이었다고 한다. 2013년에는 296건에 불과했으나, 4년만에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렇게 소송이 급증한 이유는, 한국에 합법적으로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출입국관리청에 난민으로 신청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난민위원회에 이의를 신청하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송은 3심까지 가능한데, 그 동안 '난민 신청자' 자격으로 우리나라에 계속 체류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소송을 최대한 '질질' 끌면서 체류기간을 늘리는 방식을 사용한다.

더구나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또 다시 '난민 신청'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계속 소송을 제기하며 10년 이상 국내에 체류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재판에서도 '(해당 국가에서) 박해받고 있었다'고만 주장할 뿐,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남아 등에서 취업을 위해 '불법체류'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들을 대응하느라 행정과 사법 시스템이 낭비되고, '진짜 난민'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경우도 생겨난다. 판사들은 "난민 재판을 하다 반(反) 난민 정서가 생길 지경"이라고 토로한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낯선 땅에서 나그네 된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어야 하겠지만, 이러한 전후사정도 잘 살펴야 한다. 어쩌면 그 지역에서는 이번에 입국한 예멘인들을 이후 '대량 이주'를 위한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처럼 여기고 있을지 모른다. 당국의 지혜로운 대처가, 우리의 지혜로운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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