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포스트휴먼의 욕망: <프랑켄슈타인>부터 <마녀>까지

입력 : 2018.07.08 19:14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마녀> (下)

마녀
▲한국형 슈퍼히어로 영화 <마녀>.
◈인간개조와 죄의식: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1년에 10편 가까이 개봉하는 마블과 DC의 슈퍼히어로 영화들 때문에, 이제는 캐릭터와 영화 이름조차 잘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조인간'이라는 개념이 진부하고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상당수의 슈퍼히어로들은 '개조인간'이다. 원본은 평범한 인간이었으나 불의의 사고, 과학의 힘, 외계인의 힘, 혹은 신화적-초자연적 힘에 의해 새로운 외모와 능력을 덧입은 인간들인 것이다. 스파이더맨, 헐크 등은 우연한 사고로 인해, 캡틴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은 과학의 힘에 의해, 그린랜턴은 외계인의 힘에 의해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서구 대중문화사에는 개조인간 모티프의 원조로 지목되는 작품이 있다. 1818년 영국에서 출간된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가 그 주인공이다.

이 소설은 여류 문인 메리 셸리(Mary Wollstonecraft Shelley)의 처녀작으로서, 과학의 힘으로 죽음을 극복하고 부활과 영생의 이적을 일으키려는 야심을 가진 의학도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적 종족 가운데 하나인 거인족의 일원 프로메테우스는 문화와 기술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원시 인간을 동정했다. 이에 올림포스 최고신 제우스의 금기를 무시하고 인간들에게 불을 전해준 뒤, 이를 사용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형벌로 천 년 동안 절벽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소설 속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말이 어울릴 법한 인물이다. 스위스 제네바의 상류층 출신인 그는 잉골슈타트대학교 유학 시절 왈드만 교수의 강연을 듣고 죽은 이의 부활과 영생을 재현하리라 결심한다.

"(왈드맨) 교수의 말, 운명의 말이라고 할만한 그 말이 나를 나락으로 이끌었다. ... 프랑켄슈타인의 영혼은 소리쳤다. ... 이제는 내가 더 많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어내리라. ... 미지의 힘을 탐사하고 창조의 가장 비밀스러운 신비를 세상에 드러내 보이리라(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중)."

마녀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이후의 이야기는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프랑켄슈타인은 해부학과 전기학 연구에 몰두하고, 시체들을 구해 성한 부위들을 접합해 붙인 뒤 전기 작용으로 시체를 되살려낸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생물을 창조해낸 순간, 이 괴생물체에 대한, 그리고 이런 괴생물체를 감히 만들어낸 자기 자신의 프로메테우스적 자긍심과 교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에 사로잡힌다.

이후의 서사는 오직 신의 영역으로만 여겨져 온 인간 창조에 감히 도전한 비극적 결과를 그려내는 데 할애돼 있다. 되살아난 시체는 창조자인 프랑켄슈타인을 비롯, 그를 만나는 인간들마다 극도의 혐오감과 멸시를 보내는 것에 분노해 복수를 단행한다. 바로 그런 자기를 일으킨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가족, 친구, 연인을 하나 하나 처참하게 살해하는 것으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교만과 호기심으로 행한 일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목격하고는 극도의 죄책, 분노, 절망에 빠진다.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는 개조인간이라는 모티프가 선사하는 참람함에 대한 두려움이 짙게 반영돼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적 인간을 인공적으로 조작하는 행위에 대한 분노와 질타 역시 분명하게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작품은, 출간 당시 감내해야 했던 전방위적 비난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서구 인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문헌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마녀 프랑켄슈타인
▲프랑켄슈타인 영화들 가운데 원작에 가장 충실한 것으로 평가되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1994)>.
<프랑켄슈타인>의 출간 연도는 1811년이었다. 당시는 인간과 세계의 창조 및 존재 섭리에 대한 서구 대중의 사고가 급격하게 변화되던 시기였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 의해 성서의 계시적, 지적 가치가 회의되던 시기였고, 찰스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 1731-1802)과 프랑스 자연학자 라마르크(Jean-Baptiste de Lamarck, 1774-1829) 등에 의해 이미 진화론적 사고가 학계에 확산되고 있던 시기였다.

즉 <프랑켄슈타인>의 서사는 우연히 창안된 것이라기보다, 급속히 무신론적인 방향으로 세속화되던 당시 세계관의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관여를 미약하게나마 인정하던 뉴턴적 이신론(Deism)마저 거부되고, 만물을 오직 자존하는 물질 자체로 보는 유물론적 사고관이 팽배해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가운데, 영혼의 부활과 영생이라는 성서적 가르침을 과학에 의한 시체의 부활로 변모시킨 것이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주된 서사였다.

그렇지만 셸리의 서사는 여전히 생명 창조를 하나님의 고유한 권리로 보는 기독교적 시각을 깊게 반영하고 있다. 작중 부활한 괴생물체가 겪는 심각한 정체성 혼란,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힌 젊은 의사 프랑켄슈타인의 절망 가운데는, 인간의 몸과 정신을 인위적으로 개조하는 월권행위가 초래할 극단의 불행을 예감하는 셸리의 사고가 깊게 반영되어 있다.

◈포스트휴머니즘과 초월 욕망: 대중문화 속 개조인간 전성시대

인간개조 모티프의 원조격으로 알려진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발간된 지 2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현재 범람하고 있는 슈퍼히어로 코믹스 및 영화들은 인간을 개조하는 행위에 아무런 죄책감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는 듯 하다. 물론 이런 영화들 속에서 다수의 빌런들 역시 인간개조 시도 가운데 등장하고, 이로 인해 인류 전체에 멸망의 위기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이런 위기감은 다시금 인간개조 시도에 의해 탄생한 히어로들의 활약으로 해소된다.

결국 오늘날의 히어로 영화들은 인간의 개조를 필요악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인류에 닥칠 질병, 노쇠,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줄 유일한 희망처럼 그려낸다.

대중문화에 활용되는 공상적 상상력은 향후 다양한 과학적 발전의 방향성을 결정한다. 너드 문화가 극단적으로 발전한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상기해 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되는 사실이다. 선진기술 개발의 선두를 달리는 이 두 나라의 과학도들 가운데 상당수는 어려서부터 너드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과학적 공상에 매료된 경험이 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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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의적 인간개조 시도가 초래하는 비극을 기괴한 방식으로 그려낸 두 영화, <플라이(1986)>와 <겟 아웃(2017)>.
<프랑켄슈타인> 역시 19세기 여러 예비 과학도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는 최소한 무절제한 과학적 호기심과 신념이 초래할 비극적 운명에 대한 위기감과 경고가 담겨 있었다.

사실 대중문화 속에 이런 정서가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장 작년 개봉한 미스터리 스릴러 <겟 아웃(Get out, 2017)>은 뇌이식을 통한 수명 연장 시도의 비인격성을 비판하고 있고, 꽤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플라이(The Fly, 1986)>는 인간개조 시도가 초래하는 비극에 대해 지극히 기괴하고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최근까지 꾸준하게 제작되던 <에일리언> 시리즈 역시 일면으로는 제노모프(Xenomorph)라는 괴생물체를 통해 외계인에 의한 인간개조 프로젝트를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운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고유한 권리의 영역에 속한 생명 창조 및 인간개조에 대한 인간의 월권을 경고하는 정서는 오늘날 지겹도록 쏟아져 나오는 슈퍼히어로 영화들에 의해 완전히 파묻혀 버리고 만다.

<마녀> 역시 그런 흐름 안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일면 인공적인 뇌 개조 및 조작에 의한 초인적 생물체 창조 시도를 비정하고 비인격적으로 그려내는 듯 하나, 역으로 이런 비정한 범죄가 주인공 자윤에게 모든 난관을 헤쳐나갈 힘을 선사하면서, 영화 속 인간개조에 대한 정서는 부정적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변모한다.

최근 대중문화 속에 반영된 인간개조에 대한 긍정적 시각과 초월욕망은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라 하는 새로운 인류 창조의 꿈을 깊게 반영하고 있다.

중세를 종결시킨 15-16세기 르네상스기 이후의 서구 역사는 휴머니즘의 역사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휴머니즘은 인간/비인간의 엄밀한 구분을 전제한 사고방식이다. 보수적 기독교 관점으로 보면 그리 달갑지 않게 받아들여지지만, 그래도 휴머니즘은 인간과 인공물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입장에서 자연적 인간의 역사적 발전 및 진화를 꿈꿨다.

그런데 포스트휴머니즘은 동물 장기이식 기술의 발전, 생체이식 의료기기 및 인공지능 개발 등에 힘입어 인간과 인공물의 근본적인 구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인간과 인공물의 융합에 의해 탄생하는 하이브리드(hybrid, 잡종)의 존재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적극 권장한다.

여기에는 인공물이 선사하는 방대한 지적-물리적 능력을 직접적으로 향유하고자 하는 힘에 대한 욕망, 그리고 자연적 인체로는 누릴 수 없는 인공물의 영속성을 누리고자 하는 자기 보존에 대한 욕망이 깊게 관여돼 있다.

결국 무지함과 연약함, 노쇠함과 죽어감을 감내하기 싫은 인류의 발악과 같은 사상이 포스트휴머니즘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신체 개조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영혼의 존속이 아니라 육체의 강화에 의한 물리적 존속을 최종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지능 증강은 전뇌화를 통한 기억 및 인격의 영속적 보존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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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인간의 장점만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대중문화계 포스트휴머니즘의 첨병, <어벤져스> 시리즈.
질병, 노쇠, 그리고 죽음은 지극히 불쾌하고 비극적인 일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관점으로는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운명적 유한성의 일부임에 분명하다.

물론 의료기술 발전에 의한 질병이나 노쇠의 극복을 무조건 거부할 필요는 없다. 인간의 자연적 신체에 허락된 최대한의 수명을 누리면서 유의미한 신앙의 삶을 영위하는 일만큼 복된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인체가 갖는 자연적 한계를 월등하게 넘어서는 인위적 영생, 인위적 자기보존 시도가 초래할 비극적 결말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성서는 부활, 영생, 완전함이 육체에 속한 인류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라, 영혼의 부활을 맞이하는 인류에게 허락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는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에게 허락하신 존재의 섬리이자 은혜이다.

그런데 대중문화에 범람하고 있는 통속적인 포스트휴머니즘은 이 섭리와 은혜를 부정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마녀>를 비롯한 슈퍼히어로 영화들은 관객들의 마음이 포스트휴머니즘에 '익숙해지게' 만든다.

이런 익숙함은 향후 과학계에서 지속적으로 시도될 인체 개조 및 지능증강 시도(예를 들어 죄 속에 칩을 장착하는 등)에 대한 거부감을 제거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할 것이고, 이런 시도들이 정치적으로 정당성을 얻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이런 암울한 전망을 상기해 보건대, <어벤져스> 시리즈의 유쾌함, <마녀>의 통쾌함보다는 차라리 <프랑켄슈타인>의 음울함과 기괴함이 그리울 지경이다. 거기에는 적어도 인간을 인간 마음대로 조작하려는 비틀린 욕망에 아로새겨 있는 프로메테우스적 참람함에 대한 경고의 외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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