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유월절 어린양
첫 유월절 어린양

김요한 | 진규선 영역 | 플레로마 | 112쪽 | 6,000원

소설 안에는 우화(寓話)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동식물을 인격화한 소설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있고, <어린 왕자>에서도 여우가 사람처럼 등장합니다.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에서는 흔하게 쓰입니다.

성경에서도 우화의 모습이 나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 발람이 나귀를 타고 가다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절하자 발람이 나귀를 때리니, 나귀가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민 11:28)!"고 항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형적인 우화의 모습입니다.

왜 사람이 아닌 동식물을 통해 말하는 방식을 쓸까요? 여러 정치적이고 문학적 해석이 있지만, 저는 '관점의 변화'와 '재미'에 있다고 봅니다.

하나의 현상과 사건, 사람에 대해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릅니다. 이 다름을 동식물에 적용한다면 어떤 관점으로 볼까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이 호기심은 '재미'와 연결이 됩니다.

누구나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전달할 때는 듣는 이가 끝까지 들을 수 있게 하는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재미'입니다. 소설에서 쓰이는 복선, 암시, 사건, 변화 등의 모든 장치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이가 듣고 읽을 이에게 끝까지 듣고 끝까지 읽게 하기 위한 겁니다. 우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우화에는 '착각'을 심어주게 되어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동식물에게도 감정이 있지만,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화를 읽다 보면, 실제로 그렇게 했을 거라는 착각을 갖게 합니다. 그건 작가가 심어놓은 거죠.

결국 동식물이 말하는 것처럼 보이나,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그걸 숨기면서 주제를 전달하는 능력이 우화에선 아주 중요합니다.

이 책 <첫 유월절 어린양>을 보죠. 출애굽기에서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 중에서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인 '처음 난 것들의 죽음'이 있습니다. 이 죽음을 피하려면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려야 합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할 피를 가진 이 어린 양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린 양을 인격화하여 어린 양을 통해 헌신의 삶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주 신선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명민함은 다 알고 있을 열 가지 재앙과 모세와 아론의 이야기를 짧게 알려주고 넘어갔다는 점입니다. 짧게 넘어가는 것도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면서 대강의 이야기를 숙지하게 하고, 바로 어린 양에게 초점을 맞추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진력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중요한 열 가지 재앙을 자세히 소개하면 다 읽고 났을 때 주제가 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게 됩니다. 그러면 일반 출애굽기 안내서와 다를 바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분량이 더 길어질 수 있겠지만, 작가는 일부러 피한 듯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 구성은 아주 좋습니다.

자료 조사를 많이 했습니다. 당시 시대상과 양의 습성들을 잘 조사했습니다. 조사를 했는데 조사한 티가 덜 나게 했습니다. 소설을 쓰려면 조사를 많이 해야 하고, 정보가 많아야 합니다.

그렇게 쌓인 자료가 아까워 어떤 이는 소설 속에서 전부 나열하여 소설인지, 역사서인지, 자신의 지식 자랑을 위한 글인지 헷갈리게 하는데 반해, 이 책은 주제에 도움되는 정보만 간단하게 알려주고 어린 양의 심리 상태에 집중시키게 합니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성과는 우화에서 저지르기 쉬운 작가의 과도한 노출을 피했다는 점입니다. 위에서 알려드렸듯 어린 양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 생각은 작가의 것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가 울면 주인공도 울고, 작가가 웃으면 주인공도 웃습니다. 그렇게 너무 직접적으로 쓰다 보면 주인공이 보이지 않고 작가가 보이게 마련이고, 우화의 경우 '결국 가짜다!'는 것이 너무 쉽게 들통나 버립니다.

그런데 이 책에선 작가가 최대한 어린 양에게 멀찌감치 떨어져 객관적으로 서술합니다. 그래서 진짜 어린 양이 그랬을 법한 모습으로 각인시키게 합니다. 그래서 감동스럽습니다.

작가의 노력으로 이 책은 짧은 분량 안에서 출애굽의 의미, 헌신의 의미, 유월절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림도 훌륭합니다. 간혹 우화에 들어간 그림이 촌스러운 경우가 있는데, 이 책에 삽입된 그림은 고전적이면서 내용을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 책은 짧은 이야기에 진규선 번역가가 영어로 번역한 것을 넣었습니다.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돼지를 의인화시킨 1995년작 영화 <꼬마 돼지 베이브>가 히트를 치는 바람에, 당시 미국에서 돼지고기의 수요량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감정 이입이 잘 되게 만들었다는 거겠죠.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린 양을 보면 마음이 측은해질 거 같습니다. 아마 읽는 모든 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을 쓴 김요한 작가의 지난 작품 두 권을 모두 읽었습니다. 좋은 점도 있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와서는 좋은 점만 보였습니다. 우화 소설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쓴 듯 하여 놀랍습니다.

분량으로 이야기의 질을 논할 수 없습니다. 분량 이상의 성경적 감동이 있는 이 책을 모든 성도들이 꼭 읽어,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희생의 삶을 따라가길 바람을 가집니다.

이성구 부장(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