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신학
성전신학

그레고리 K. 비일 | 강성열 역 | 새물결플러스 | 626쪽 | 30,000원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의 전환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다양한 분기점들이 있다. 이것을 총칭해서 신학자들은 '유대교와의 연속성'과 '유대교와의 불연속성'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도교는 구약에 나타나는 성전을 읽을 때, 그 성전의 의미와 가르침들을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문자적 성전이나 물리적 성전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이것은 성전 개념이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으로, 구약의 성전 개념을 초월하고 확장된 개념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학의 발전

한국의 목회 현장을 보면 실천신학이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실천신학 외의 신학분야들은 '교회론'이나 '구원론'의 일부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실천신학 안에 무분별한 실용주의가 들어와, 경영적 마인드가 목회적 마인드처럼 되어 버린 이상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지금 출판되고 있는 경건서적 류의 다수 내용들을 보면, 매우 주관적인 경험과 입장이지만 성경 해석이 매우 난잡해졌다는 사실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교회가 이단에 대처(분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도 성경 해석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 신학이 없는 신앙에 근거한 직관적 해석, 자신의 상황이나 입장 혹은 필요에 근거한 감동을 찾거나 편협한 신학적 이론이나 지식에 근거해 성경의 맥락을 알지도 못한 채 주관적 해석들이 난무하기에, 이단들이 비유를 문자로 해석하고 문자와 역사를 은유로 해석하는 해프닝을 벌여도 그것이 왜 잘못된 해석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단지 교회 밖 성경공부는 하지 말라는 식의 경계령만 내리고 있다.

다시 말해 목회에 도움이 되는 성경해석이 결국 성경 본질의 의미에서 이미 많이 벗어나 있고, 결국 신학적 무지는 목회 현장에서 혼란을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교를 졸업한지 20년이 다 되어 신학교의 모습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목회 현장에서 신학 부재와 발전의 불균형(실천신학조차 성경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성경신학

개인적으로 교회가 성도들을 교육할 때 '교리(조직신학)'을 먼저 가르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 대부분 새가족 교육은 '교리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교리부터 가르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는, 수학공부를 할 때 그 문제의 질문과 그 풀이의 과정이 생략된 정답을 먼저 가르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물론 교리 교육을 강조하시는 분들 중 반론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있을 줄 안다. 왜냐하면 교리교육은 철저하게 성경구절들을 가지고 그 교리의 의미들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전 신학
▲예루살렘 모습. ⓒ픽사베이
그럼에도 교리에 문제와 과정이 생략됐다는 이유는 그러한 교리가 생성된 원인은 성경이 아니라, 그 시대의 환경과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러한 교리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적 상황과 환경이 생략된 교리적 설명은 문제와 풀이 과정이 없는 답만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다.

더욱이 교리적 지식으로 똘똘 뭉치면 권위적이고 배타적인 사람들이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교리를 가르치기 전에 성경 안에 담겨 있는 다양한 신학적 의미들을 파악할 수 있는 성경신학을 먼저 가르치는 것이 건강한 교리 교육으로 이어지는 신앙 교육이라 생각한다(성경신학과 역사신학-해석학-교리교육과 실천신학의 순서를 제안한다).

확장되는 성전

본서는 이미 저자가 쓴 <요한계시록 주석(새물결플러스)>의 후속편에 해당 되는 것 같다. '새 창조'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재림적 관점에서 '성전(새 하늘과 새 땅)'이 창세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어떠한 의미로 맥락과 확장이 이루어지는지를 매우 꼼꼼하게 살피면서 설명하고 있다.

먼저 성전으로서 에덴동산에서 출발한 구약의 성전 개념은 성막과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며, 사도행전, 바울서신,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을 각각 살피면서 구약(주로 역대기, 에스겔, 스가랴, 학개)에 나타나는 성전에 관한 예언(상징)들이 신약에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와 종말론적 성전의 성취로서 요한계시록의 성전이 세계를 포괄하는 성전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매우 체계적이고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해 왔는데, 저자는 구약의 '창조(에덴-성전-우주)'에 우주적 하나님 나라의 확장적 비전이 담겨 있으며, 타락으로 그 성전이 축소된 예루살렘에 세워졌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허무심은(물론 예루살렘 성전의 타락에도 원인이 있다) 하나님의 사명을 성취하는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주적 성전 완성(창 1:27-28의 성취)으로서 새 창조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 개신교회에서는 '구속사' 중심의 성경 해석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본서가 말하고 있는 '성전 개념 중심의 종말론'이 구속사 중심 성경 해석의 나머지 부분을 충분히 보완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르네 지라르의 문화인류학적 개념을 보완시킨다면 '제단에서 성막으로', '성막에서 성전으로'의 전환 의미와 설명이 빠져 있는 '성전 타락과 성전의 주인(완성자)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채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본서를 곁이 두고 반복해서 읽을 것이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