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인간이 자기 본위나 자기 중심으로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도 자기 본위로 살지 못한 채 뭔가를 떠받들며 살고 있습니다. 중력(重力)의 지배를 받는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위를 떠받들지(내리눌림을 받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성도는 하나님을 떠받들고, 불신자는 우상을 떠받듭니다. 여기엔 종교, 지식, 교양 유무의 차이가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세계 최고의 지성의 산실이었던 아덴(Athens)에서조차 우상이 가득했던 것은 그 반영입니다(행 17:16-23). 모든 인간은 섬기는 대상 만 다를 뿐, 어느 누구도 뭣을 섬기지 않는 자란 없습니다.

◈섬기지 않으면 못사는 피조물의 본성

한때 우리 사회에서 '사대주의(flunkeyist)' 혹은 '식민지 근성(colonial mentality)'이라는 말들이 회자됐습니다. 자기비하적이고 강자숭배적인 약소국민이 갖는 일종의 신드롬(syndrome)을 말한 것입니다.

유사하게, 모든 인류가 가진 공통적인 신드롬이 또 하나 있습니다. 뭔가를 섬기지 않고선 못 배기는 소위 "피조물 근성(creature mentality)"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향해 죽은 죄인들은 피조물을 숭배하는 속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는 못 살듯이, 죄인들의 '피조물 근성' 역시 섬기는 대상을 두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그들은 동시에 여러 우상들을 두기도 하고 혹은 끊임없이 새로운 우상들을 들여오기도 합니다.

그들에게는 우상 없이 존속하는 때란 없습니다. 깨끗이 소제된 빈 집에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와 분탕질한다는(마 12:45) 예수님의 가르침은 숭배를 멈추지 않는 죄인의 '피조물 근성'을 잘 드러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 "당신은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하면, 마치 자기는 이제까지 전혀 아무것도 섬겨오지 않았던 것처럼 "왜 내가 하나님을 섬겨야 해? 나는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는 자신에 대한 무지의 소치이든지, 아니면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죄인의 '피조물 근성'에 대해 말하면서, '하나님 섬김은 인간이 아무것도 안 섬기다 비로소 뭔가를 섬기기 시작했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 섬겨왔던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살전 1:9)'이라고 말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살전1:9)".

그리고 이것은 단지 우상에서 하나님에게로의 수평이동이 아니라, 죄로 하나님을 향해 죽었던 자가 중생하여 하나님께로 돌이킨 경천동지 할 사건입니다.   

이러한 죄 된 인간의 '피조물 근성'은 정반대의, 하나님이 되려는 도발로도 나타납니다. 태초에 아담이 뱀의 미혹을 받아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 한 것은, 희랍 신화의 작가들에게는 영웅적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이 역시  '자아(ego)'를 우상화하려는 '피조물 근성'의 발현입니다. 이들은 밖으로부터 우상을 들여오지 않고 자기 내면의 '자아'라는 우상을 선택한 것뿐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to be) 없음은, 하나님은 '되심(to be)'으로서가 아니라, 영원히 '스스로 계심(THAT I AM)'으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됨(to to)'으로서 존재한 자가 '스스로 계시는(THAT I AM)' 하나님이 되려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도모하는 악한 '피조물 근성'의 발현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효율성

인간의 죄 된 '피조물 근성'은 수많은 피조물들을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모든 것을 숭배 대상으로 삼음으로 자신을 맨 아래에 두는, 소위 '1인지상 만인지하(一人之上 萬人之下)'은 죄 된 '피조물 근성'의 발현입니다. 그들은 자신들과 관계하는 모든 것들, 예컨대 종교, 돈, 학문, 쾌락, 명예, 권세 심지어 사람까지 모조리 우상화합니다.

반면 '1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에로 등극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 한 분만을 자기 위에 모셔 섬김으로 다른 모든 우상에게서 벗어나는 이들입니다.

둘 중 당연히 후자가 더 효율적입니다. 수많은 것들을 우상으로 존치시키는 전자는 그 많은 우상들을 섬기려면 그 만큼 많은 수고와 대가가 지불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후자는 1인지하(一人之下), 곧 하나님 한 분만 주인으로 모심으로 다른 많은 것들을 섬기는 수고에서 해방을 받습니다.

역사적으로 항상 약소국이었던 우리나라는 주변의 강국들과 부마국, 형제국의 관계를 맺고(고려 때는 몽골(1271-1368)의 부마국으로, 조선 때는 후금(1616-1636)의 형제국으로) 그들에게 조공을 바치면, 그들이 다른 침략자들의 지배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었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빗대는 것이 부적절하고 지나치게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보일지 모르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핏공로로 중생하여 하나님을 섬기면(히 9:14), 많은 우상들을 섬기는 수고로부터 해방을 받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많은 우상을 섬기는 수고에서 건짐을 받게 해 줄 뿐더러,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수고스러웠던) 우상 치하(治下)로 돌아가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엘리야 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한 7천명(롬 11:4),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우상)에 절하지 아니한 다니엘의 세 친구(단 3:16-18), 그리고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거부는 고무적인 실례들입니다(계 19:20).

그러나 성경과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런 이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배교자들도 늘 있어 왔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언제 까지 우상과 하나님 사이를 왕래할 것인가? 이제 그만 섬길 자를 택하라(수 24:25)"고 결단을 촉구한 것도 그런 양상의 일단을 말해 줍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시킨 대죄(大罪)요, 하나님의 질투를 촉발하는 영적 간음었으나(렘 13:27, 겔 23:19, 호 4:12),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장 빈번하게 빠지는 죄였습니다.  

사도들이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고전 10:14, 요일 5:21)"고 한 것이 교회 밖 사람들이 아닌 성도들을 향한 권면이었던 것을 볼 때, 신약 시대에도 우상 숭배는 흔한 죄였습니다.

그리고 우상숭배의 양상이 구약 시대에는 물체적인 보이는 형상으로 나타났다면, 신약 시대는 주로 보이지 않는 정신, 사상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탐심(골 3:5,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입니다. 믿는 이들은 탐심을 통해 자신의 우상숭배적 성향을 드러냅니다.

또 하나가 물신(Mammon) 숭배, 곧 금송아지 우상(Golden calf)입니다. 구약 때는 말 그대로 금송아지 형상의 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했고(출 32:4; 왕상 12:28), 신약 시대에는 '재물 사랑(마 6:24)'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Mammon)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그리고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하는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는 영적 간음도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일종의 우상숭배입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약 4:4)." 이 영적 간음 역시 성도들을 쉽게 자유롭게 하지 못합니다.

또 자신과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곧, 자신을 궁극으로 떠받드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우상 숭배입니다. "저희의 신은 배(belly)요(빌3:19)",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belly)만 섬기나니(롬 16:18)".

이 '자아 우상(ego idol)'은 이미 앞서 언급했듯, 태초의 에덴에서 아담이 뱀으로부터 부추김을 받았던 가장 강력한 우상입니다. 오늘날 물신 숭배, 영적 간음, 핍박을 이긴 자도 이 '자아 우상(ego idol)' 앞에서 무너지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성도들도 다양한 우상들로부터 유혹을 받으며 때때로 그것들 앞에서 연약성을 드러내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본래의 하나님 섬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합니다.

이는 그들에게서 우상을 섬기는 죄 된 '피조물 근성'이 뽑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적 근성(godly mentality)'이 그들에게 심겨졌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쉽게 풀어 쓴 이신칭의(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