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표
▲이영표 위원은 책에서 “우리가 아직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은, 우리를 통해 무언가를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이라며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가 이 땅에 살아있을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김신의 기자
이영표 위원은 <말하지 않아야 할 때: 이영표의 말>에 담긴 '밴쿠버 통신' 4월호에 '어깨에 내려앉은 실오라기'라는 제목의 글을 남겼다. "작은 실오라기 하나가 날아올라 함께 예배를 드리던 앞사람 어깨에 내려앉았다. 그런데 그분은 알아채지 못했다. 문득 실오라기보다 더 가벼울 수 있는 성령님의 임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오늘 은혜 받았어요'라는 말은 잘못된 말인지도 모르겠다. 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매순간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실오라기가 어깨에 내려앉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느끼지 못했던 것뿐.

오늘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상상하고 느끼는 것보다 항상 더 넓고 더 깊다."

실오라기 성령
▲실오라기.
작은 실오라기 하나를 보면서도 성령님의 임재를 떠올릴 정도로, 이영표 위원은 평소에 생각과 묵상을 즐기는 듯 하다. 그리고 해설에서 느껴지듯 뛰어난 언변과 논리력은 꾸준한 독서에서 나오는 것 같다. 다음은 이영표 위원의 마지막 이야기.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 나오는데, 실제로 귀에 들리는 느낌인가요.

"우리가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습니다. 하나님과도 그럴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너무나 미세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순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말씀하고 계시지만, 문제는 우리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파수와 같습니다. '믿음의 주파수'가 맞아야 연결이 될텐데, 하나님은 말씀하시지만 세상의 주파수로 들으려 하니 안 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듣는 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주파수가 하나님께 맞춰져 있어야,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는 게 아니라, 우리가 들을 준비가 안 돼 있기에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건 제 고백입니다."

-이런 '모범답안'이 나올 수 있는 '생각의 비결'은 독서 덕분인가요.

"책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런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면 우리에게 말씀하실텐데, 왜 들리지 않을까?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왜 일시적으로 들을 뿐, 지속적으로 듣지 못할까?' 어떨 때는 예상치도 않는 상황에서 말씀을 주시다가, 또 어떨 때는 아무리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분명 문제는 제게 있을텐데, 무엇이 문제일까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데, '기도가 땅에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햇빛이 비추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공기를 주시고, 호흡을 주시고, 심장이 뛰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만지게 하시고 듣게 하시고 냄새 맡게 하시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하나님 은혜에 반응하지 않았구나. 내 기도에 반응하지 않으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은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가 문제구나.'

하나님이 답답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응답하지 않으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 은혜에 제가 응답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영표
▲이영표 위원은 책에서 “기도는, 그리고 신앙은 하나님을 졸라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이시면서 언제나 옳으신 그분 앞에서 나 자신의 잘못된 마음과 욕심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의 기자
물론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면서 왜 말씀하시지 않을까?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 같은 질문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이 '나 여기 있다'고 바로 응답하셨다면, 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찾았을 것입니다. 지나고 보니, 하나님은 미세하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너와 함께 있었던 거, 모르니?' 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은데, 하나님은 24시간 내내 저만 주시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지구상 모든 사람을 그렇게 다 따라다녀?' 하나님의 속성을 모르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1천년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내일도 계실 것이고, 1천년 후에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시간과 공간을 창조하셨기에, 그것에 지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 '무소부재(無所不在,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음)하심'을 이해한다면, 지금 이 순간 서울, 부산, 파리, 런던에 동시에 계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가슴 벅찼거나 기억에 남는 응답이 있으시다면.

"그런 건 없었습니다. 바로 그 분이 말씀하셨기에, 그 느낌은 모두 동일합니다. 하나님 음성을 직접적으로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일상에서 마음 속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꼈던 작은 감동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중 하나를 꼽는다는 건... 이런 느낌입니다. 엄마가 100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니?' 라고 묻는 것 같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요(웃음)?

저도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귀에다 직접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마음에 울림이 있습니다. 설명하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울릴 뿐 아니라, 벌써 눈물이 나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게 동시에 찾아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체험이 믿음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음성을 들었다 해도, 곧바로 의심이 찾아옵니다.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오히려 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처음엔 저도 '보여주시면 믿겠습니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그 분을 직접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는 것이 도움은 될 수 있겠지만, 진짜 믿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확인하는 것이 믿음을 보장(guarantee)하지는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보지 않고도 믿음을 갖지만, 예수님과 함께 3년을 보낸 유다는 결국 믿지 못해서 그 분을 팔아 넘겼습니다. 이처럼 눈으로 보는 것,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 믿음을 유지시키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머리가 좋든 나쁘든, 집안이 좋든 안 좋든, 아무 상관 없는 세계입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을 수 있지만, 누구나 믿을 순 없습니다. 여기에 엄청난 신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뭔가가 있습니다."

이영표
▲두 딸과 함께한 이영표 당시 선수의 모습. ⓒ이영표 페이스북
-선수 시절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실 것 같은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신앙을 접하게 하시는지요.

"제가 어떤 이슈만 있으면 신앙이나 성경을 연결시키려 하니, 아이들은 잘 듣지 않으려 합니다. '어떻게 티가 안 나게 아이들에게 잘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웃음).

이런 적은 있습니다. 어느 날 13세 아이가 질문했습니다. '다 자기 종교가 옳다는데,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증거가 뭐냐'고요. 저는 일단 칭찬을 했습니다. 우리가 질문 없이 어떤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질문하지 않는 것입니다. 질문은 궁금한 게 있다는 것이고, 질문하지 않는 게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그리고 질문이 있을 때에만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 자체에 대해 먼저 칭찬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질문의 대답은 하나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너의 삶으로 해답을 얻어갈 수 있다. 그 해답은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찾아서 자연스럽게 그 해답을 갖게 될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왜 하나님만이 진짜인지, 그 대답은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20대 청소년들과 청년들의 '멘토'로 불리시는데, 당부의 말씀이 있으신지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진리는 다수결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 생각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격을 사용하시지만, 믿음은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에, 자기 포기가 전제되지 않으면 믿음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우리가 보기에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6:25)'고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 자신이 곧 선입니다. 악이란,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말씀이시고, 말씀은 진리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읽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 보편의 선, '약한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 소수는 존중받아야 한다' 등은 신앙이 아니라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휴머니즘에 불과합니다. 어떤 의미로는 '자기 동정'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것 같지만, 인간을 우상시했기에 인간답지 않게 됩니다. 인간다운 삶이란, 하나님 말씀 아래 살 때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멀어지는 순간, 인간다움을 상실합니다.

이영표
▲이영표 위원은 “나는 신비주의나 놀라운 일들에 목매는 왜곡된 신앙을 경계한다.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욱 귀한 까닭”이라며 “그러나 동시에 복음의 힘을 잃어버리고 능력마저 상실해 버린 신앙은 더더욱 경계한다”고 전했다. ⓒ김신의 기자
(일부 신학생들을 향해) 하나님을 학문으로만 배울 뿐 하나님과 멀어져 있으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믿음을 지식으로 받아들이고, 선과 악의 기준이 애매해집니다. 성경을 분명한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열 명 중에 한 명이 죄를 지으면 분명히 죄로 보이는데, 열 명 중 8-9명이 죄를 지으니 더 이상 그것을 죄라고 하기 힘들어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고, 분별력을 상실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제 책임이기도 하고, 우리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영표 위원은 <생각이 내가 된다>에서 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했다. "지난날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성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착각했다면, 오늘날 인간 중심적이고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틀린' 것을 단지 '다른' 것뿐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동성애를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야말로 '틀린 것은 단지 다를 뿐'이라고 말하는 위험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동성애를 떠올릴 때 반드시 동시에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성경은 로마서 1장에서 동성애를 언급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불의, 탐욕, 시기, 분쟁, 사기, 교만, 무자비함 등을 말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동성애가 죄라고 말하면서도, 동성애와 똑같은 죄라고 성경이 말하는 불의, 탐욕, ..., 무자비함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리는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동성애를 행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되, 동성애라는 행위 자체는 죄이며 잘못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속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동성애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날마다 자신이 마주하는 일상의 죄일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동성애가 죄라고 규탄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죄에 대해 규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 자신의 죄를 먼저 보는 사람만이 동성애의 죄성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인상깊게 읽은 책 3권을 꼽아 주신다면.

"이재철 목사님의 <청년아, 울더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와 <새신자반>, 그리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