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참전용사
▲한 참전용사가 천안함 희생 장병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김진영 기자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8주년이 된다. 1950년 6월 25일은 우리 역사에 가장 비극적인 하루였다. 북한 인민군 12만이 완전 무장한 채로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밀어닥치자 방심하고 있던 국군은 역부족이었다. 삽시간에 서울이 함락되고 남한의 공산화는 눈에 보이는 듯하였다. 그러나 글자 그대로 하늘이 도우셔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다.

어느 역사학자가 일러주기를 6.25 전쟁에서 공산화되지 아니하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지켜낼 수 있었던 데는 5가지 기적이 있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들 5가지 기적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앞으로도 이 나라를 지켜나감에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하고픈 마음 간절하다.

첫째, 6.25 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에 일어난 여수·순천 14연대 반란사건이다. 이 사건의 배경은 같은 해 4월 3일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제주 4.3 사건이다. 이 사건을 진압하라는 명을 받은 여수 주둔 14연대에서 일부 군인들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1948년 10월 19일에 시작되었다. 역시 우리 민족사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었을 비극이었다.

그러나 여수·순천의 14연대 반란사건이 동기가 되어 군대 내 정화(淨化)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 정화 작업이 2년 후 일어난 6.25 전쟁에서 공산화가 되지 않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여수 14연대의 반란사건이 일어나 군인과 경찰과 민간에 큰 희생이 있게 되자 이승만 정권은 반공법을 지정하여 반공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군부 안에 침투하여 있는 좌익 세력을 소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숙군작업(肅軍作業)에서 엉뚱한 희생자들도 적지 않았다. 어떤 장교는 군대 내에 침투한 좌익으로 몰려 총살을 당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짖으며 죽어간 장교도 있었다. 그런 억울한 희생자들도 있었지만 그때 군부 내에 좌익 동조자들을 제거하였기에 6.25 전쟁이 일어난 후 북한 인민군의 침략을 저지함에 큰 공이 있었다는 평가이다.

군부 내에서 남로당 조직책으로 있었던 박정희 장교가 이때 검거되어 전향함으로 살아남았던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후일에 역사가가 평가하기를 6.25 전쟁이 일어나기 2년 전에 여수 14연대 반란사건이 일어나지 아니하고 군부 내에 좌익 동조세력이 숙군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었다면 6.25 전쟁이 크게 위험하였을 것이란 평가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사건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