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영감: 종교성의 즉흥적 나레이션, 재즈(Jazz)

라라랜드
▲영화 <라라랜드> 중 주인공 세바스찬의 피아노 재즈 연주 장면.
◈재즈와 종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역사성과 재즈

<라라랜드>의 서사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첫째는 무명배우 미아(엠마 스톤 분)의 꿈, 둘째는 무명뮤지션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의 꿈, 셋째는 이 두 사람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생겨난 사랑이다.

이 가운데 두 번째를 차지하는 세바스찬의 꿈은 바로 미국 고유의 음악 장르인 재즈의 계승과 유지다. 이에 <라라랜드>는 세바스찬의 연주와 대사를 통해 여러 곡의 재즈를 선보이며 그 음악적 특성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재즈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 남부 멕시코만, 미시시피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리잡은 항구도시 뉴올리언스(New Orleans)를 거점으로 생겨난 음악이다. 재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는 19세기 말 미시시피 강 유람선에서 밴드 연주를 맡은 크레올(Créole,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의 혼혈 서자들)에 의해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다.

뉴올리언스는 서부개척 시대부터 동북부의 영국적-청교도적 문화와 크게 차별되는 문화적 분위기를 향유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 도시는 원래 18세기 초 프랑스인들이 미시시피 강 유역 아메리카 원주민(혹은 인디언)들과 호혜적 모피무역을 수행하면서 건립한 도시로, 자유롭고 활달하며 때로 전위적이기까지 한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였다.

나폴레옹 집권기인 1803년, 프랑스령 서인도제도 중 하나인 아이티(Haiti)에서 원주민 혁명이 일어나 미시시피 강으로 통하는 해상교역로를 상실한 프랑스는, 자신들이 점거하고 있던(혹은 그렇게 주장하던) 루이지애나 식민지(현재 루이지애나 주가 아닌 미시시피강 유역 전체)를 미국에게 매각했다. 이 때 뉴올리언스도 미국의 도시가 되었으나, 프랑스령 당시의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문화적 분위기만큼은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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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 1803) 당시 미국이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미시시피 강 유역 식민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동산 거래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뉴올리언스가 미국에게 매각되기 전, 이 도시에 살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인-흑인 혼혈자녀, 즉 크레올을 미국인들보다 비교적 평등하게(기본적 차별은 여전했지만 미국의 가혹했던 노예제보다는 훨씬 온건하게) 대우했다. 크레올들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시민으로 인정되었고, 일정한 정도의 교육도 받을 수 있었다.

루이지애나 매입 당시 미국 정부는 크레올을 미국 내 흑인노예들과 달리, 자유민으로 인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 인해 뉴올리언스에는 전문적 음악교육을 받은 크레올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19세기 말 재즈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재즈에는 뉴올리언스 크레올 못지 않게 중요한 다른 기원 하나가 더 존재한다. 바로 남부 흑인 노예들에게 전수돼 온 영가(black spirituals)다.

대서양 노예무역을 통해 미국에 팔려온 아프리카 노예들은 초기에 거의 반강제로 기독교 신앙을 배우고 받아들여야 했으나, 점차 기독교 신앙에 담긴 메시지에 감화되기 시작했고, 그들만의 독특한 기독교 신앙과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현세가 아닌 내세를 바라보며, 강자가 아닌 약자를 돌보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가 아니라 죄인이라 수긍하는 자를 구원하는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은, 비참하고 고달픈 노예의 삶과 맞물려 깊은 신앙심을 형성하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아프리카계 노예들은 그들이 기억하고 있던 서아프리카 전통 축제적 종교제의, 특히 춤과 노래를 기독교 신앙을 표현하는 데 활용했고, 이것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고유한 형태로 전래되어 온 흑인 영가의 형식을 결정했다.

결국 재즈는 로코코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자유롭고 활달한 프랑스의 도회적-시민적 문화요소와, 원시 부족적 제의의 성격을 내포하면서 억압과 고난에 짓눌린 미국 남부 흑인노예들의 삶을 반영한 향토적 문화요소가 종합돼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재즈는 즉흥성과 역동성을 그 주된 특징으로 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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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활약한 뉴올리언스의 한 크레올 재즈밴드.
즉흥성은 형식적 측면에서 서아프리카 특유의 성문화되지 않은 구전적, 축제적 주문(呪文) 형식을 계승한 것이다. 반면 내용적 측면에서는 언제 어디로 팔려가거나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노예로서의 지극히 불안하고 고된 실존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어떤 새로운 고난과 위기가 닥쳐올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하나님과 복음을 의지하는 삶의 결단이 즉흥성의 기본 정신을 이룬다.

이런 해석은 홉킨스(Dwight N. Hopkins)나 비빈스(Jason C. Bivins)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문화 및 음악에 담긴 종교성을 연구하는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견해이다.

역동성은 형식적 측면에서 흑인 밴드 음악 고유의 부조화스런 조화, 공동체적 개별화 등에 그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내용적 측면에서는 고된 현세의 삶과 복음이 가르치는 복된 내세의 삶의 부조화, 고난이 주는 고통과 신앙이 주는 기쁨이 엇갈리는 삶의 역설에서 유발되는 긴장, 갈등, 충돌을 반영한다.

나아가 프랑스적 문화 전통이 표방하는 세속성과 남부 흑인 노예들 사이에 공유되던 초월지향성이 충돌되는 가운데 유발되는 갈등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재즈는 이런 상충되고 부조화스러운 종교적-문화적 요소들을 역사성(die Geschichtlichkeit)으로 삼아 포용하고 있다. 역사성이란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에 포함된 용어로서, 과거의 현실적 궤적들이 단지 과거로만 남아있지 않고 오늘날의 실존적 현실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면서 장래의 존재가능까지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유래는 단지 유래로만 남지 않고, 그 유래에 의해 실현된 현실을 지속적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역사성의 의미다.

<라라랜드>의 세바스찬은 바로 이런 유래를 지키고 싶어한다. 그가 바라는 것은 죽어가는 재즈의 계승과 보전이다. 영화 속 재즈 바에서,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즈는 편한 음악이 아니에요. ... 얼마나 치열하게 대결하는지 직접 봐야 해요. ... 서로 충돌하고, 다시 타협하고, ... 매번 새로워요. 정말이지 흥분되는 음악이에요. 그런데 죽어가고 있죠. ... 이제 수명이 다했다고 죽게 내버려 두라지만 나는 지켜낼 겁니다."

◈재즈의 세속화: 종교성이 배제된, 듣기 편한 재즈

그러나 세바스찬의 의지는 현실 앞에 잠정적으로 꺾이고 만다. 그는 '순수한' 재즈를 마음껏 연주할 수 있는 클럽을 개장하기 위해 보수가 좋은, 그렇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재즈를 연주한다.

상업화된, 사람들이 환호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 속에는 더 이상 종교성과 세속성의 갈등, 현실과 초월의 갈등을 담아내는 즉흥성이나 역동성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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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재즈의 꿈을 잠시 접고 상업화된 재즈를 연주하라는 제의를 받는 세바스찬.
이처럼 세바스찬이 기존의 '순수한' 재즈 스타일을 잠시 접어둔 채, '돈이 되는' 연주와 투어에 몰입하는 지점에서 <라라랜드>의 서사 전체는 급격한 분위기 전환을 맞는다. 영화 중반부를 지배하던 마이너하고 역동적인 부조화의 음률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고, 성공을 향한 미아의 꿈을 반영하는 조화의 음률이 영화를 지배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세속성은 영화 전체의 서사를 지배하는 특징으로 부각된다. 재즈의 종교성이 사라지면서, 세바스찬과 미아는 각자의 성공을 추구하는 가운데 그들만의 현실을 넘어선 사랑을 잃어버리기 시작하고, 무명 아티스트와 배우 시절의 정서는 사그라들며, 부와 명성이라는 성취를 손에 넣은 '흔하디 흔한' 스타들만 남게 된다.

재즈는 현실의 고난과 초월의 소망이 마음껏 충돌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실존적 역사성을 반영한다. 반면 <라라랜드>는 그 재즈가 죽어가는 오늘날 미국의 역사성을 반영한다.

다시 말해 도저히 초월할 수 없는 죽음, 고통, 차별의 현실을 구원에 대한 신앙으로 극복해 보려는 초월지향의 종교성은 이제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오직 개인의 세속적 꿈을 이루는 데 급급한, 그리고 그 꿈은 이루어진다는 아메리칸 드림 혹은 디즈니적 사실주의의 자긍만이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어디에? 좁게는 헐리우드에, 넓게는 미국과 그 문화권 전반에. 여기에는 한국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세속적 성공과 그로부터 얻는 개인적 행복을 무작정 배척하려는 의도는 없다. 무조건 '순수한' 옛 예술 형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실 재즈는 한국인들의 정서에 별로 친숙하지 않은 낯선 음악일 뿐이다.

다만 <라라랜드> 안에서 재즈가 죽어가는 오늘날의 역사성을 목격하고, 이것이 문화 전반에 종교성이 자리잡을 자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시대적 징조(마 16:3)'라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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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찬이 추구하던 것과는 다른, 종교성이 배제된 ‘순수하게 세속화된’ 재즈 연주 현장.
<라라랜드>에서 마이너하고 즉흥적인 재즈의 선율이 등장하는 장면은 대부분 현실적 상황을 연출한다. 반면 디즈니 스타일의 오케스트라-뮤지컬 음악이 지배하는 장면들은 미아와 세바스찬의, 특히 미아의 공상으로 가득차 있다. 즐겁고 아름답고 낭만적이기만 한 이런 장면들은 삶의 유한성과 고통을 제거해 버리는 조작을 통해서만 연출이 가능하다.

그런데 삶의 유한성과 고통은 인간이 무한자, 초월자를 갈구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라라랜드>의 서사나 분위기 전반이 공허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 영화 속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만한 고난의 현실은 의도적으로 은폐되어 있고, 허영에 가까운 가볍고 공허한 공상이 전면에 주로 부각되고 있다.

<라라랜드>는 재즈를 살리고 싶은 듯 한 태도를 보이지만, 실상 그것을 죽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겉으로는 음악, 예술,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관철하려는 듯 하나, 실상은 세속적이고 통속적인 욕망들만 되풀이해 보여주고 있다.

결국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무게감 없는 영화, 이것이 <라라랜드>에 대한 결론적 평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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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재즈 클럽에서 춤을 추는 미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주변인으로 물러나고 오직 주인공 미아만이 돋보인다. 이 장면은 디즈니적 사실주의에 함몰되어 실존적 유한성과 고통을 고의적으로 은폐하는 <라라랜드> 전체의 정서를 대변한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