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검은 돌로 둘러쌓은 집 마당을 나서면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고향에서 보던 짓푸른 빛깔과 달리 초록빛이 감도는 맑디 맑은 바다였다. 남강은 자갈밭으로 내려가 물결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중얼거리곤 했다.

"아, 저 멀리 북쪽 고향에서 이 남국의 섬까지 흘러와 소식을 전해 주는 듯하구나. 바다야, 너는 이렇게 늘 힘차게 파도치는데 내 청춘은 가뭇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구나."

그는 그리운 추억에라도 잠기듯 얼굴에 주름살을 지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승훈이 열 다섯이 되어 젊은이 티가 나자 사윗감으로 욕심내는 사람이 생겼다. 놋그릇 가게 주인 임박천씨 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이서방이란 사람이었다.

당시의 결혼 풍습은 당사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양쪽 부모의 의견이 서로 맞으면 성사되었다. 이서방이 임박천을 찾아가 심중을 털어놓자 임박천이 허락하여 일이 급속히 진행되었던 것이다. 신부는 꽃다운 나이의 이경강이란 처녀였다.

남강을 결혼시킨 임박천은 조촐한 초가집 한 채를 사서 새 살림을 차리도록 해주었다. 승훈은 이제 어엿한 가장으로서 한 집안의 생활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얼마 후에 임박천은 제안을 했다.

"비록 결혼을 했더라도 내 집에서 일하면서 지냈으면 싶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이미 결심을 하고 있었기에 남강은 의향을 밝혔다.

"어르신 말씀이 고맙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저는 독립을 하겠습니다. 어르신께서 부디 많이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음, 아쉽지만.... 뜻대로 하게."

그 후 남강은 놋그릇 행상을 시작했다. 장사 밑천은 임박천이 대 주었다.

장날은 각 지방마다 다르게 섰다.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5일마다 서는 장에서 구입했다. 장날이 가까워지면 행상인들이 여러 지방에서 모여들었다. 때론 아침 일찍 장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행상인들은 밤새도록 짐을 어깨에 멘 채 길을 걸어야만 했다.

승훈도 장날에 맞춰 이 지방 저 지방 매일 돌아다녔다. 행상은 고달픈 생활의 연속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닌 긴 새벽길은 심신을 고달프고 지치게 했다. 그래도 그는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 겪게 되는 세상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북쪽의 온 마을을 샅샅이 걸어다녔기 때문에, 그 지역의 특색과 사정 등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계급제도의 모순이었다. 갓 쓰고 두루마기를 걸친 양반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향해서도 으레 반말로 지껄여 대곤 했다.

"세상이 거꾸로 되어도 한참 거꾸로 됐군. 병이 들어도 보통 병이 든 게 아니야."

한심스러운 세태를 목격할 때마다 탄식이 절로 터져나왔다. 그가 훗날 개화 운동에 참여해 계급의 폐습을 앞장서 반대했던 이유도 그런 모순된 일을 현장에서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생업이니만큼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황해도의 안악, 신천, 재령 등은 땅이 기름지고 곡식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어서 장사가 잘 되었다. 얼마 후엔 나귀 한 마리를 사서 짐을 싣고 다녔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가 열심히 일한 것은 자기와 가족을 위해서였다. 조실부모하고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남의 밑에서 오랫동안 일해야 했던 그에게 자수성가하여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에게는 집안이 중요했지, 아직 민족은 관심 밖에 있었다. 한때 주인으로 모셨던 임일권이 그랬듯이, 이승훈 역시 돈을 주고 참봉 벼슬을 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상놈 출신인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집안의 위신과 자신의 체면을 세워 보려 했다.

젊은 시절 거의 북쪽 땅만 밟고 다녔기 때문에 어느 산에 어떤 샛길이 있고, 어느 고을 시냇물이 어디로 흐르는 것까지도 상세하게 알 정도였다. 오랫동안 행상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뜻있는 많은 인사들을 만나게 된 일이었다.

그가 훗날 독립운동에 발벗고 나섰을 때 황해도 출신의 애국지사들, 예컨대 김구, 안명근, 노백린 같은 위인들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한 나라 안팎 소식을 그때 그때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지금 조정에서는 인천 항구를 외국 사람들에게 개방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면서? 원산 항구는 벌써 개방해 버렸다니까 인천 항구도 조만간 개방되고 말겠지."

"그렇게 되고 나면 힘이 약한 우리나라는 외국 세력에 밀려서 오래잖아 망하고 말 것이 아닌가."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그럴 때일수록 현실적인 노력이 중요했다.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