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죄의 종됨'은 아담의 원죄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죄의 종' 하면, 어떤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죄에 중독됐거나 평균을 상회하는 죄의 집착성을 보이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아니면 과거엔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죄의 탐닉 성향을 보이는 사람을 떠 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죄의 종됨'은 흔히 생각하듯 도덕적인 죄의 탐닉 성향(addiction tendency)도 아니며, 역사적으로도 어제 오늘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롬 6:17)"라는 말씀은 '죄의 종'의 기원을 말합니다. 여기서 '본래'는 '죄의 종'의 기원을 말한 것입니다. 그 기원자는 원죄자 아담이며, 그의 첫 범죄가 그것의 기원입니다. 무죄의 순결한 상태에서 그가 범한 단 한 번의 죄가 그를 '죄의 종'으로 만들었습니다(죄는 범법자를 그의 종으로 만드는 속성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죄의 종' 되게 하는 원죄를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후손들 역시 아담처럼 '죄의 종'이 됐습니다. 성경이 인류를 '죄의 종'이라 선포하는 것은 그들의 자범죄 때문이 아닌, 아담의 원죄를 그들이 유전한 때문입니다. 자범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예외 없이 '죄의 종'이라고 말하는 것은, '죄의 종'으로 만드는 원죄를 그가 받아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죄의 종' 됨은 탐닉적이고 습관적인 윤리적 죄들(자범죄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담의 원죄를 유전 받음에서 됩니다. 무죄한 상태에서의 아담의 첫 범죄가 그와 인류를 죄의 지배권 아래에 두는 '죄의 종'으로 만들었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요 8:34)"는 말은 죄인이 새롭게 어떤 죄를 지으므로 비로소 죄의 종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범하는 죄를 통해 처음부터 그가 '죄의 종'이었음을 증거한다 는 뜻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34, 41, 44)."

여기서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향해 '죄의 종'이라고 말씀 하신 것은 당시 유대인의 현재적 죄를 지적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의 뿌리인 마귀에게로까지 추적하신 것입니다.

◈'죄의 종'이란 자력으로는 죄를 벗어날 수 없는 자입니다

종이란 무엇에 묶여 있어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에서 자유할 수 없는 무능한 자를 뜻합니다. 죄에 묶여 있는 '죄의 종' 역시 자력으로는 죄의 세력을 거스를 수 없는 무능한 자입니다.

성경이 '죄의 종됨'의 무능함을 '죽은 자'에 비유한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둘 다 항거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성경이 '죄의 종'을 '죽은 자'와 동일시했습니다. "양심으로 죽은 행실(히 9:14)"이라는 말씀에서, '죄'를  '죽은 행실' 로 묘사한 것은 인간은 죄에 대해 죽음처럼 무능하다는 뜻입니다.

태초의 무죄한 아담에게 하나님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신 것은, 범죄하면 그들의 육체만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동의어인 '죄의 종'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그의 범죄 이후 정황을 통해 잘 설명됩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했지만, 실제로 아담이 따먹은 후에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지 않음은 진정한 삶이 아닌 곧, '죄의 종된 삶'이었으며 사실은 죽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죄로 죽었다'는 말은 '죄로 하나님을 향해 죽었다'는 뜻 외에 "죄의 종이 되어 죄에 대해 항거불능이 됐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이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시 65:3)"라고 한 것은 죄에 대한 인간의 무능을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뒤이어 그는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의 종'이 되어 죄를 이길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의 실상을 아시는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죄 사함(시 65:3)'을 마련하셨습니다(롬 4:7-8).

그러면 구체적으로 '죄의 종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본성이 된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선악과 범법(犯法)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시도였기에(창 3:5), 범법의 결과인 '죄의 종됨' 역시 단지 윤리적인 죄의 탐닉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아담을 위시해서 '죄의 종된' 타락한 인류의 죄의 속성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의 종된' 삶은, 말이 삶이지 실상은 죽음이기에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은, 죄의 대가로 인간에게 사망이 왔다는 것만이 아니라, '죄의 종'이 되어 죽음을 살아낸다는 뜻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죄의 종'이란 죄에 대한 항거불능 상태에서 하나님 없이 죽음을 사는 자를 뜻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자력으로는 죄를 벗어날 수 없고, 타력에 의해서만 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가 '죄의 종'이고, 그렇게 '죄의 종된' 우리를 그것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 1:5)".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율법의 정죄'에서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의 종됨'에서 우리를 해방시켰습니다.

그러나 죄에서 해방되면, 다만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곧 '의의 종된 자리', 곧 하나님을 섬기는 데로 나아갑니다. 죄의 종에서의 해방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의의 종이 되기 위한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3-14)."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을 받으면 '죄의 종'에서 놓여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억지로 애써서 의의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나를 죄에서 해방하면 하나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이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죄사함 받아 하나님의 소유가 됨을 의미하는 '죄의 구속'은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됨'을 뜻합니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어린양 그리스도가 자신의 피로 사람들을 구속하여 하나님의 소유, 종이 되게 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은, 윤리적인 죄의 탐닉에서 벗어나 의로운 일만 하게 됐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던 자가 하나님의 종이 됐다는 뜻입니다. 다음의 성경 말씀은 '의의 종'의 실체가 '하나님께 종되는 것(22)'임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17-18, 22)." 복음에의 순종 곧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종이 됐고 거룩함에 이르게 됐습니다.

그러나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됐지만 노아(창 9:21), 다윗(삼하 11:4, 15), 베드로(마 26:74) 같은 이들이 그랬듯, 우리 역시 인간의 연약성을 가졌기에, 때때로 도덕적 유약성이나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을 보이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됐다"고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롬 7:21)"고 한 것과, 루터가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우리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자아의 분열상이 결코 '죄의 종에서 의의 종 됨'의 완결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것도 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고 담대히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쉽게 풀어 쓴 이신칭의(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