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넣고 ‘기도 세리머니’ 안 된다? 행복한 비판”

이대웅 기자 입력 : 2018.06.18 16:41

2018 러시아 월드컵, ‘멘토’ 이영표 위원과 함께 (上)

이영표
▲이영표 위원은 자신의 책에서 “노력이란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에서 오는 통증을 미리 나누어 갖는 것”이라며 “노력에도 고통이 따르고 원하지 않은 결과에도 고통이 따르지만, 노력에서 오는 통증이 원하는 결과를 놓쳤을 때의 통증보다 더 견디기 쉽다”고 말했다. ⓒ김신의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이 개막했다. 본지는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 TV 중계를 위해 한국을 찾은 이영표 KBS 해설위원과 만나, 축구와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이영표 위원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며, 이후 히딩크 감독을 따라 유럽으로 진출해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 리그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했고, 이 팀에서 2004-2005 시즌 박지성 선수와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다. 이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핫스퍼으로 이적해 황금기를 보냈으며, 독일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9년 사우디 알 힐랄, 2011년 메이저리그 사커 밴쿠버 화이트캡스 FC 등에서 뛰었다.

이영표 위원은 뿐만 아니라 '멘토'로 불린다. 방송이나 강연을 통해 많은 청소년·청년들에게 '노력'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최근 <생각이 내가 된다(두란노)>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앞선 2009년에는 <성공이 성공이 아니고 실패가 실패가 아니다(홍성사)>도 썼다. 다음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하고 있는 이영표 위원과 지난 5월 31일 서울 성수동 한 카페에서 만나 나눈 축구 이야기.

-먼저 축구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골을 넣고 '기도 세리머니'를 하는 것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있는데요.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왜 골을 넣고 기도하면 안 되는 건가요? 골을 넣고 선수가 점프를 하든 기도를 하든, 왜 문제가 되나요? 물론 하나님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런 이야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반응이고, 그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계속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지적을 듣고 '기도 세리머니'를 하던 선수가 다른 세리머니로 바꾸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 말이 타당하지만 바꾸고 싶진 않다'는 선수도 괜찮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각 개인의 생각을 지켜주자. 내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중적 태도가 숨어 있습니다. 자신만 생각하지 말고 남을 배려하라고 말하면서, 결국 골을 넣은 그 선수를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팬이라 해도 골 넣은 선수는 남인데, 말로는 남을 배려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배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배려받아야 하고, 소수의 사람들은 배려받아선 안 되나요? 그것도 일종의 차별입니다. 그 말 속에 어떤 의미가 있어도, 논리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소수는 다수를 위해 희생해야 하고, 다수는 소수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골 넣은 선수가 다른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이 배려라면, 골 넣은 선수도 배려해야겠지요. 그런 생각을 갖는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크게 동의되진 않습니다.

축구선수들이 받는 비판 중에 그런 정도는 사실 비판도 아닙니다. 그리고 행복한 비판입니다. 골을 넣었잖아요(웃음)? 축구선수는 축구를 못하면 스스로 자아비판이 찾아옵니다. 남들이 비판하지 않아도, 스스로 비판하게 됩니다.

운동할 때 그런 게 있었습니다. 못하면 팬들로부터 비난받는 게 맞지만, 못하는 것 자체가 범죄는 아니잖아요? 누구를 때리거나 욕을 하거나 훔치거나 속였다면 범죄이지만, 축구를 못하는 게 범죄는 아닙니다. 욕 먹을 일이지만, 죄는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사실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후배들에게 '축구를 못하면 미안해할 수는 있지만,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함"

-'축잘알(축구를 잘 아는 사람)' 동료 기자의 질문입니다. 개인플레이를 즐기는 이승우 선수가 단기간에 대표팀 축구의 조직력에 잘 녹아들 수 있을까요.

"온두라스 전에서는 나름 좋은 경기를 했고, 장점이 많이 드러났습니다. 동시에 피지컬 등에서 단점도 드러났습니다. 장기적으로 몇 가지 보완해야 할 점이 있지만, 신선하게 분위기를 바꾼 것도 분명합니다.

저는 이승우 선수가 23명 안에 드는 건 무난할 것 같고(인터뷰는 온두라스전 이후 최종 엔트리 발표 전 진행됐고, 이영표 위원은 또 '맞췄다' -편집자 주), 경우에 따라 경기장 안에서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 그 경기는 이기고 있는 경기여야지, 지고 있는 경기에서는 큰 역할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축구 좋아하는 목사님들 많으신데요, 지나치게 좋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 짧은 생각인데,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삶을 살기 원하실까요? 예전처럼 청교도적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경건생활만 하는 것을 원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주셨습니다. 행복, 만족, 성취감 등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 감정, 기쁨과 성취감과 만족이 왜 있을까요? 느끼라고 만들어 주셨지요.

우리가 뭔가를 좋아하면, 그건 하나님도 좋아하실 것입니다. 아이가 퍼즐 게임을 해서 행복하면, 저도 행복합니다. 우리가 행복해하면, 하나님도 행복해하십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퍼즐을 하느라 밥도 안 먹고 학교도 안 간다면 어떨까요?

이영표
▲이영표 위원은 1999년 올림픽 대표로 전격 발탁된 뒤 2011년까지 국가대표로 뛰면서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는 등 총 127경기에 출전했다. 은퇴 후 2014년 브라질 월드컵부터 KBS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데, 특유의 분석력으로 많은 경기 결과를 예측해 ‘문어 영표’로 불렸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현지에서 생생한 해설로 국민들의 밤잠을 깨울 예정이다. ⓒ김신의 기자

취미를 갖는 것도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게임을 좋아해서 즐거우면 좋은 것이지만, 밥도 안 먹고 학교도 안 간다면 문제일 것입니다. 그 기준이 어디인지는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을까요? 하나님께서 어디까지 기뻐하시고 어디까지 싫어하실지 말입니다. 저는 그래서 '여기까지는 되고, 여기까지는 안 되고' 식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신앙은 자유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유함이란,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함이지요. 밥을 먹고 가끔 초콜렛을 먹어야 하는데 가끔은 초콜렛부터 먹다 밥을 안 먹는다면, 그러면 안 된다고 하시겠지만 그 정도를 갖고 뭐라고 하시진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기 때문에, 그 정도 자유함은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얽매여서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것이 더 건전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지만 다정다감하시고, 무서운 분이지만 한없이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양한 성품 안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너무 왜곡시켜서,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고 내가 이렇게 하면 벌 주실거야' 하는 게 건강한 신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 안에 있으니 내 마음대로 해도 돼' 이것도 문제입니다. 양쪽 모두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는 때가 있습니다. 먹을 때가 있고 참을 때가 있으며 즐길 때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때가 언제인지 항상 알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살아갈 때대로 살아갈 때만 우리가 가장 행복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할 수 있습니다.

자유함이란,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할 때 기쁘지만 하지 않고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기쁨을 느끼는 면에선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 질서 밖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함.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자유함입니다. 자유의 전제조건이 바로 가장 큰 행복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저 자신조차 실제로는 완전히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걸 알고 있는 사람만이 또 그렇게 할 수 있기도 합니다."

◈"월드컵, 불안감과 기대감 동시에 느낄 몇 안 되는 기회"

-월드컵을 기대하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월드컵에 크리스천과 넌크리스천이 어디 있나요? 이기고 지는 것보다, 즐기면 됩니다. 누구든 즐길 수 있습니다. '강팀인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 '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있습니다.

우리 삶에서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나이가 들수록 감정 변화가 옅어집니다. 그래서 그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느끼기 위해 돈을 주고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습니까? 월드컵에서는 돈도 안 내고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 두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건 즐기셔야죠. 이기고 지는 건 나중 문제이고, 세계인의 축제를 즐겨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영표 위원의 책 <생각이 내가 된다> 중에서, 월드컵 경기 관람을 앞둔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구절을 꼽아봤다. "월드컵처럼 큰 경기를 앞둔 선수들은 문득문득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 두려움은 얼핏 보면 외부 환경에서 오는 것 같지만, 사실 그 근원지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 즉 내 안에서 만들어질 때가 더 많다. 엄밀히 따지면, 실패 자체가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가 나를 더 두렵게 한다."

"완벽한 기술로 날마다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유럽 축구를 쉽게 접하는 국내 축구팬들 중 일부는 '이제 우리도 멘탈 타령은 그만하고 기술 축구 좀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유럽 축구의 환상적인 기술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바로 강력한 멘탈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 축구선수에게 멘탈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필수적인 요소다. 눈에 보이는 훌륭한 기술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멘탈의 깊은 의미를 깨닫자.”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 뭔가 특별한 비책이나 지름길을 기대했을지 모르는 소년과 아버지의 질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였다. '내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보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노력하면 됩니다.' 노력에는 항상 고통과 인내가 따르고, 육체적 고통과 내적 갈등 없이 무언가 얻을 수 있는 방법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충분한 노력과 실패 없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도 이 세상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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