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승 생명샘교회
▲천정에서 물이 새는 생명샘교회.
1. 여름이 오고 장마철이 되면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여름은 무사히 지나갈까.... 또 비가 어디서 샐까 하는 걱정입니다. 작년 아이들이 주로 있는 기도실 천장이 무너지는 경험 이후에 노이로제가 된 듯 합니다.

환경이 좋지 않은 교회에 아이들을 둘 수 없어 우리 집을 부수고 다시 지어 학교 공간으로 제공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 대한 걱정은 한시름 놓았습니다.

2. 금요일 오후 달꿈학교 일과가 끝난뒤 예배를 위해 교회로 향했습니다. 교회에 내려가기 위해 휠체어를 계단에서 미끄러지듯 쿵쾅쿵쾅 내려가면, 익숙해진 쾨쾨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얼른 제습기를 가동하고 불을 켜는데 아동부실에 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니, 익숙하게 차단기를 다시 올려봅니다. 그런데 내려간 차단기가 다시 올라가자마자 또 내려갑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천장에서부터 물이 뚝뚝 새어나와 전기선을 타고 흘러내려왔습니다. 그 밑에 있던 아동부 물건들이 다 젖어버렸습니다. 큰 문제는 당장 아동부 아이들, 청년부가 예배드릴 곳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사무실 공간 컴퓨터 및 전화기, 인쇄기까지 함께 불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3. 급한대로 전도사님들이 오셔서 일단 젖은 물건들을 정리하고, 저녁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친 뒤 전기 수리하는 선생님을 모시고 교회로 갔습니다.

진단 결과 다행히 누전은 아니라서 한 시름 놓았습니다. 그럼에도 위에서 물이 새는 문제를 잡을 수는 없어, 물이 떨어지는 곳과 전기선 위치를 분리하여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전기를 고쳐주신 권사님(감리교)께서는 걱정말라고 하셨습니다. 누전은 전혀 없으니, 물 새는 문제는 윗집에 말씀드려 해결하면 된다고 말이지요.

집에 돌아와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배드릴 수 있게 되어서 감사드립니다." 신경을 써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려, 설교문만 수정하고 읽어본 뒤 누워 있었습니다.

4. 주일 오전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신 천사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행복한 마음으로 교회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좋을까.... 9시 청소년부 예배 도중 강대상에 불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부엌도 불이 나갔습니다. 음향이 꺼져 버리고,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던 권사님들도 어둠에 묻히셨습니다. 설교하는 전도사님 마이크도 건반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냥 초대교회 예배를 아이들이 드렸습니다. 어제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이 전기가 나가버린 것입니다.

5. 부리나케 다시 전기 권사님께 전화드렸습니다. 택시를 타고 오신 권사님은 섬기는 교회를 제쳐두신 채, 우리 교회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원인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급한대로 전기선이 살아있는 곳을 끌어다가 강대상쪽 전기를 연결하였습니다. 11시 예배 직전 내내 정신이 없었습니다.

6. 담임목사의 자리가 가진 역할(role)이 있습니다. 담임목사는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성격과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주의 이름 아래 모였으므로 이 공동체가 한 몸이 되어 갈 수 있는 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공동체가 가진 주님이 원하는 정신을 밝히 깨달아 제안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건물과 조직, 제도권 내에서 상처입은 경험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건물과 제도보다 사람과 생명',
'내 교회보다는 하나된 교회',
'돈은 고이지 않게'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비록 처한 현실이 지하이지만, 건축헌금을 더 이상 따로 두지 않고 모인 헌금은 사람을 위해, 또 더 어려운 교회를 돕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한승 생명샘교회
▲물이 샌 교회 모습.
7.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런 상황이 될 때마다 아찔합니다. '모아둔 돈이라도 있으면 다 뜯어 점검이라도 해 볼텐데.' 그러나 모아둔 돈이 없고,

'차라리 내 건물이라면 뜯어서 보기라도 쉬울텐데.' 하지만 주인은 따로 있고.

'차라리 목사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라면, 주인에게 하소연이라도 해볼텐데' 라는 여러 생각들이 복잡복잡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런 일로 인해 믿음이 연약하신 분들이 교회가 불편하다고, 냄새 난다고, 이런 것도 못 고치느냐고 불편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도 재신임 투표가 끝나고 이제 다시 3년의 임기가 정식으로 주어진 첫 예배에서 말입니다.


8.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교회의 역사를 바라보고, 현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이라고 생각되는 점을 제시하지만, 버겁고 힘겨울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 해서 교회의 형편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같은 상황이 연일 벌어질 때마다, 가끔 이런 형편에도 어려운 교회를 돕는데 왜 우리 교회의 이런 어려운 형편을 돕는 교회는 없는가 하고 하나님께 물을 때도 있습니다.

왜 대형교회들이 아프리카 단기 선교에는 많은 시간과 재력 사람을 투여하면서, 정작 이 나라 이 땅에서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돕지는 못하는가 하나님께 물을 때도 있지요.

그런데 그 때마다 그분은 잠잠하십니다. 고요하십니다. 왜 이다지도 고요할까..., 내 마음에는 폭풍이 치는데 말입니다.

9. 그런데 오늘 오전, 11시 예배 직전의 일입니다. 평상시 우리 교회는 11시 예배 직전 매우 요란합니다. 한 공간에 아동부 청소년부 예배가 모두 끝나고 이동하며, 2부 순서와 뒤에서는 부엌일이, 그리고 앞에서는 좁은 공간때문에 연습을 못한 성가대가 연습하는 등 여러 상황들이 촉박하게 이루어집니다.

더구나 오늘은, 전기를 긴급하게 수리하는 일들이 있었으니 얼마나 소란스러웠겠습니까. 제 마음도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10. 11시 예배 직전, 저는 위와 같은 상황들을 잘 알고 있는지라 성도들에게 달리 '조용해야 한다', '예배 10분 전에는 소란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가 먼저 10분 전에 단 위에 올라가 말씀을 다시 점검하고 기도할 뿐입니다. 특별히 폭풍 같은 상황, 제 마음이 요동치는 오늘 오전, 이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 주님, 이런 일을 왜 하필 주일 오전에 주십니까. 우리 성도 가운데 또 한 명이라도 실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마땅히 책임질 일이 있다면 책임지는 제가 되게 하옵소서.'

11. 그런데 눈을 뜬 제게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평상시면 여전히 소란스러울 교회의 예배 5분 전, 고요하게 자리잡은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제 눈에만 그리 보인 것인지는 몰라도, 올해 들어 가장 고요하게 기도하며 준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주님이 침묵으로 제게 응답하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그 침묵은 더 이상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폭풍처럼 요동치던 저에게 "잠잠하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제게는 더 이상 문 밖의 소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12. 저희 집 바로 왼쪽에는 수녀들이 모여 사는 수녀원이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 달꿈학교 카페에 수녀님들이 오셨습니다. 예쁜 화분을 들고요. 누구시냐고 여쭈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책임 수녀예요."

책임 수녀가 담임목사 같은 것이냐고 여쭈었더니 "책임 수녀는 성도 같은 거예요. 2-3년 하다가 다시 돌아가요 일반 수녀로. 그냥 정해진 기간에 책임지는 거예요. 공동체를 위해 나쁜 역할을 감당해야 할 때는 하고..., 그래서 욕먹을 건 먹고...."

그러면서 수줍게 웃는 모습에서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렇구나, 책임 목사구나. 3년 재신임하는 제도가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냥 일반 수녀로 돌아가는 분도 계시는데.'

13. 맞습니다. 내가 책임질 것은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입니다. 바른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가야할 길을 가려 함에는 생명도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길임을 알면서 도망가지 않는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잘 하려고, 성도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기간 최선을 다하되 앞장서 부르짖을 때는 부르짖고, 욕 먹을 때는 욕 먹는 것도 감내하는 자리.

재신임 투표가 끝나고 3년의 기간이 다시 주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걸은 길, 다시 책임지라는 의미로 알고 계속 가려합니다.

14. 청년들과 오후 섬김 훈련을 하며 나누었던 기도문 가운데 일부를 나누며 사랑의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주여, 바깥문을 닫사오니 제게 말씀하옵소서.
주위가 소란스러울 때에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나이다.
이제 저의 마음 문을 여오니 제게 속삭이소서.
밖이 아무리 시끄러울지라도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나이다(윌리암)."

P. S. 샬롬.

오늘(12일) 전기공사를 급히 하여 누전된 부분을 복구 수리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의 편지를 본 우리 교회 성도들이 답을 보내주셨었어요. 모두가 다들 지금 이 상태가 행복하다고 하시네요. 부족한 목사에게 분에 넘치는 성도들입니다.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한승 목사(생명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