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시키는 승리만이 승리가 아니다: 암브로시우스 감독

입력 : 2018.06.10 20:46

[한평우 목사의 로마 이야기] 황제, 무릎 꿇다

암브로시우스 밀라노
▲암브로시우스가 사역한, 밀라노에 있는 교회
바티칸의 중앙에 사도 베드로가 의자에 앉아 있는 형상이 있다. 베드로가 앉아있는 의자 모서리를 들고 있는 네 사람을 가톨릭의 4대 박사라고 칭한다. 그들은 서방의 박사인 암브로시우스(Ambrosius, 340-397)와 어거스틴, 그리고 동방의 박사인 아타나시우스와 크리소스톰이다. 이토록 암브로시우스는 아주 중요한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암브로시우스는 밀란의 감독으로 어거스틴에게 세례를 베푼 사람이다. 위대한 사람이 위대한 사람을 태어나게 하는 것 같다. 어거스틴은 평생 암브로시우스를 존경했고 영적 스승으로 여겼다.

암브로시우스는 로마 귀족의 아들로, 아버지의 근무지인 독일 남부의 트리어에서 339년에 출생했다. 부친이 죽은 후 그는 부친의 친구인 프로부스의 도움으로 로마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법학과 수사학을 공부했고 변호사가 되었다.

프로보스의 보좌관으로 있다가 370년, 32살의 나이로 밀라노 근교인 에밀리아와 리구리아의 지방장관으로 임직되었다. 374년 아리우스를 지지하던 밀라노의 주교 아욱센티우스(Auxentius)가 죽자, 정통파와 아리우스파는 팽팽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질서 유지를 위해 참석한 암브로시우스는 회중을 향해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설을 하는 중에 한 어린아이가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라고 외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에 운집한 수많은 사람들이 합창으로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 "암브로시우스를 감독으로!" 하는 외침으로 그는 얼떨결에 밀란의 주교로 취임하게 된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말이다. 아직 세례도 받기 전이어서

373년 11월 24일에 세례를 받았고, 12월 1일 서품을 받아 감독에 취임했다. 그는 수사학을 전공했기에 설교에 아주 능했고, 담대한 믿음으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특히 당시 동서 로마를 통일한 강력한 황제 테오도시우스 황제와의 대결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테오도시우스 황제(379-395)는 신앙이 투철했던 황제였다. 그래서 이름도 하나님께서 주신 자(Theo, Dosius)라고 칭할 정도였다.

테오도시우스는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종교로 공식적으로 공포한 최초의 황제였다.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지 70여년이 지난 후에야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결단에 의해 국교가 됐다. 그는 황제였지만 경건하고 투철한 신앙생활을 도모한 황제였다.

390년 그는 놀라운 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그것은 로마의 주둔군이 있는 데살로니가에서 주민들의 폭동으로 야기된 일이었다. 당시 데살로니가 총독으로는 고트족 출신 부테릭이 로마군 사령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참모들과 함께 시민들의 재산을 탈취했고, 격분한 시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사령관과 참모들을 돌로 쳐 죽였으며, 그 시체를 끌고 거리를 행진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강력한 로마제국을 향한 엄청난 도전이었다. 보고를 받은 황제는 진노하여 항거한 주민들을 죽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 명령을 받은 로마 군인들은 현지인 6천여 명을 살상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감독 암브로시우스는 황제를 향해 대노했다. 편지를 보내 공식적으로 황제가 참회할 것과 허락이 있을 때까지 교회 출입을 금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황제는 부활절에 측근을 데리고 교회에 들어오려 했고, 암브로시우스는 교회 입구를 막고 완강하게 황제의 출입을 거절했다. 황제는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고, 그 해 성탄절에 다시 들어오려고 시도했으나 주교는 또 다시 교회 입구를 막고 먼저 참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황제는 "성경에 보면 다윗도 죄인이 아니었습니까?" 라고 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는 "황제께서는 다윗의 죄만 모방하시겠습니까? 다윗의 참회도 모방하셔야지요?" 라고 했다.

황제는 마침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성찬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황제는 시민들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무릎을 꿇고 회개했다. 황제는 비로소 주교의 용서를 받고 성찬례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는 죽을 때 암브로시우스의 품에서 죽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다. "내게 진리를 말해준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훌륭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다."

암브로시우스 감독도 놀랍지만, 정말 대단한 사람은 테오도시우스 황제이지 싶다. 막강한 권력을 손에 잡고 있는 황제요, 명령 한 마디로 젊은 주교쯤은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대단한 황제인데, 주교의 책망을 듣고 수용한 겸손함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싶다.

변명 같지만, 황제는 로마 총독을 죽인 데살로니가 시민들을 보복하라고 명했지만 곧 지나치다고 여겨 그 명령을 철회하도록 전령사를 보냈다. 그러나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밀란에서 데살로니카는 수천 킬로미터(km)나 떨어져 있고, 재차 보낸 전령사는 사건이 끝난 다음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감독 암브로시우스는 동서 로마를 통일한 대단한 황제를 굴복시켰다. 자신의 우렁찬 명령, "황제는 회개하시오!"라는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에 저 위대한 황제가 성전 입구에서 무릎을 꿇었을 때,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세상을 통치하는 황제가 주교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전 로마 제국이 주교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었을 까 싶다. 시민들은 암브로시우스의 담력에 놀랐을 것이고, 또한 비범한 황제의 겸손함에 놀랐을 것이다.

힘은 크면 클수록 비례하여 자존심을 높이게 된다. 그래서 대통령이나 지도자는 여간해서는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자신의 명령에 굴복하는 걸출한 황제를 보며 주교 암브로시우스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마도 전신을 타고 흐르는 승리감을 가라앉히려 애썼을 것이다.

남자의 속성은 누구에게나 이런 면이 있다. 그래서 너도나도 명령권자가 되려고 한다. 새파랗게 젊은 회장이 늙은 중역들을 세워놓고 아이 나무라듯 꾸짖을 때, 고개를 숙이고 쩔쩔매는 정황을 보며 얼마나 통쾌할까 싶다. 아마 암브로시우스는 이런 비슷한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황제는 비례적으로 패배자로서의 울분을 느꼈을 것이고.... 물론 신앙심이 돈독한 황제이니, 그 모든 정황을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였겠지만 말이다.

아무리 신앙의 세계라고 하지만 말이다. 황제가 감독의 그 어떤 책망도 수용할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굳이 그런 식의 책망이 필요했을까 싶기도 하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그를 당회장실로 불러 "이번 일에 황제는 잘못했소이다. 회개하시오"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둘만의 자리에서 회개하고 용서를 베풀어 주었다면 결과는 어찌되었을까?

암브로시우스의 이런 일방적인 승리는 역사적 앙금으로 남게 되었다. 그래서 후대 교황들에게 수위권을 주장하는 단초를 주었다. 그리고 이 논리를 적용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게 됐고, 그 결과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주장을 교황 수위권(首位權)의 신수설(神授說)이라고 한다.

이 치열한 논쟁은 역사적으로 온통 진흙탕 싸움이었다. 진리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동물적인 싸움, '내가 당신보다 높다'는 치졸한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싸움들이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점철됐다. 주님께서는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는데 말이다.

어떤 경우에서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겸손을 추구하려 할 때만이 서로가 '윈-윈'할 수 있다. 우리는 교회 역사에서 이런 부분을 배워야 한다. 즉 온전히 굴복시키는 승리만이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평우 목사(로마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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