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입니다

입력 : 2018.06.08 15:46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한 사랑(perfect love)입니다. 하나님은 그 완전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인간은 이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앎으로 만족하며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납니다.

오늘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사도 요한의 말처럼 이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하나님 사랑은 어떤 사랑이기에 완전한 사랑입니까?

◈아들을 내어주신 완전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아낌없이 줍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줄 것이 없을 때까지 내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되다(행 20:35)"는 셈법은 우리에게 주신 말씀 전에 먼저 하나님 자신의 사랑 셈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복되셨습니다. 이 점에서 하나님보다 복되신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여 우리에게 주셨고, 타락 후에는 원수 같이 대적하는 죄인들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내어 주셨습니다.

이 중에서도 핵심은 아들을 주신 사랑입니다. 성경은 만물을 주시고 그것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 사랑의 확증이란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를 내어 주시곤 그렇게 말씀했습니다(롬 5:8).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온 순서는, 만물이 먼저이고 아들이 후(後)이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서는 창세 전의 작정인 아들이 먼저였고, 경륜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신 이가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롬 8:32)?"라는 말씀은, 아들을 주셨는데 다른 못 줄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한 핵심이 아들이며, 만물은 아들에 따라오는 부수물(附隨物, a concomitant)쯤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만물을 다 너희 것(고전 3:21-23)"이라고 한 것도 아들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은 자들에게 만물이 따라오게 했다는 뜻입니다. 아들을 주실 때 아들을 위해 창조된 만물도(골 1:16) 함께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용도 역시 아들의 사랑을 이루는데 소용됩니다. 건강도 질병도, 가난도 부(富)도, 명예도 권세도 우리의 구원을 위한 부수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나라들과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의 대신으로 주었노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사람들을 주어 너를 바꾸며 백성들로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사 43:3-4)."

그리고 개인의 생명도 그에게서 아들의 구속을 이루는데 소용되는 부수물입니다. 그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이 아들의 구속을 입게 한다면 생존을 허락하실 것이지만(딤전1:16, 벧후3:8-9), 정반대의 경우라면 육신의 생명을 거두어가기도 하십니다(고전 5:5).

따라서 인간이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아들로 말미암은 구속의 사랑입니다. 이 구속의 사랑을 택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진리의 교사 성령이(요일 2:29) 파송됐습니다(요 15:26). 이 구속의 사랑을 알 때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 되심도 알고, 만물이 자기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히 11:3)"라는 말씀은, "스스로에게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라는 암시를 자꾸 넣다 보면,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들에 대한 '구속 신앙'을 가지면 '창조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곧 아들에 대한 구속 신앙이 창조의 계시라는 말입니다. 아들 그리스도의 구속을 알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창조도, 만물의 존재 의의도 알지 못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아무리 창조를 말해도, 그들이 참된 창조 지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구속 신앙만이 창조를 계시해주기 때문입니다.

'창조서(Book of Genesis)'인 구약의 창세기 보다 '구원서(Book of salvation)'인 신약의 복음서부터 읽어야 할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구속의 계시 없인 창조의 계시를 얻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창세기부터 읽어야 할 것입니다(타락이 없다면 성경도 필요없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속 신앙을 창조 신앙에 앞세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처럼 '만물 시여(施輿)'와 '아들 시여'를 비교하며 장황하게 거론함은 하나님의 사랑의 핵심이 아들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도 아들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주심으로 우리에 대해 완전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따라서 아들을 받은 자는 모든 것을 다 받은 자이며, 더는 하나님께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완전한 사랑인 아들을 받은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음부와 아이 배지 못하는 태와 물로 채울 수 없는 땅과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불(잠 30:16)"처럼, 세상 것에 대한 욕심에 매몰된 그리스도인들을 볼 때 민망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구원을 주신 완전한 사랑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하시므로, 우리에 대한 당신의 완전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구속이 불완전하여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주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하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 효과의 완전함에서 그것의 완전함을 증거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엄마와 아기가 함께 사고를 만났을 때, 엄마의 몸이 보호막이 되어 아기를 살려내는 기적을 가끔 목도합니다. 여성은 연약하지만 살신성인한 엄마의 완전한 사랑이 자식을 살려낸 것입니다.

이렇게 연약한 여성도 완전한 모성애로 아기를 지켜낸다면,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택자의 구원을 완전케 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그의 강한 팔과 펴신 팔로 사랑하는 자를 구원하실 때(시 136:12), 아무도 그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 그들을 기어코 구원해 내십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8-29)."

따라서 만일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 하면서 그 사랑의 효과를 입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허술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실 때, 반드시 그 사랑의 결과물을 내심으로써 그의 사랑이 완전함을 증거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전가시키는 믿음을 완전케 하심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구속을 완성시켰는데도 우리의 믿음이 불완전하여 죄와 사망에서 완전한 해방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구현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아들의 완전한 대속을 믿어 의롭다 함을 받도록 믿음의 경륜을 완전케 하셨고, 그리하여 구원의 실패 가능성을 없이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라는 말로서 대신합니다. 믿음에 완전함을 부여한 '오직 믿음(Sola fide)'의 경륜은 육신의 연약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이룰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경륜입니다(롬 8:3-4).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완전한 구속과 완전한 믿음 위에서 입는 그리스도인의 의(義) 역시 완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완전한 자야(아 5:2)" 라고 호칭해 주시는 것은 빈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가 흠 없고 점 없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벧전 1:19) 믿음으로 말미암아,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흠이 없게(엡 5:27) 해 주셨습니다.

이 완전함은 예수를 영접하는 순간부터 종말 심판 때 까지 보장됩니다. 처음 우리를 완전케 해주신 그리스도의 피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완전하도록 보존해주실 것입니다.

본래 '구원(σϊζω, σωτηρία)'이라는 단어는, 영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는 '보존(preservation) 개념'을 함의합니다. 만일 구원이 시종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일시적인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사실상 구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같은 것을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받았다면서 구원이 불완전한 채로 남아 있다면 이는 거짓말입니다.

로마가톨릭이 그리스도의 피만으로 죄인이 완전케 되지 못하고, 자기의 공로를 위시해 마리아와 성자들의 잉여 공로를 끌어들이며, 마지막에는 연옥의 담금질을 통해 완전케 된다고 하는 것이나, 유보적 칭의론자들이 처음의 법정적 칭의가 종말까지 보장해 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의 완전한 속죄(히 10:14)와 믿음의 완전함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 사랑의 완전함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미심쩍고 불안한 사랑, 하다가 만 사랑 같은 불완전하고 무책임한 사랑은 완전한 하나님 사랑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쉽게 풀어 쓴 이신칭의(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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