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 혼인잔치처럼...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영적으로 고갈된 우리

입력 : 2018.06.08 15:46

[5분만 읽는 설교 10] 연회장이 신랑에게 한 말(요 2:9-10)

정신분석 김충렬 한일장신
▲김충렬 교수(심리치료대학원장)가 강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오늘 본문은 지난 회에 이어 가나 혼인잔치 기적의 사건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연출가의 입장에서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잔치 기적의 사건 가운데 처음에는 마리아를, 다음으로 하인들을, 그리고 오늘은 연회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연회장은 하인들이 떠왔던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았지요? 사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본 행위 하나만 해도 연회장으로서의 품위를 잃은 처신이었습니다. 그 잔치 자리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총책임자로서 모두 알아야 했거든요. 그랬는데, 영문을 알기 위해 신랑까지 다시 불러냈습니다. 연회장이 신랑까지 부른 처사야말로, 아직도 포도주의 출처에 대해 깜깜이었음을 스스로 드러낸 행위입니다. 우리는 연회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본문을 배경으로 '연회장이 신랑에게 한 말'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1. 연회장에게는 주님이 보이지 않았다

9-10절을 다시 읽습니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그 출처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하인들을 불러 조용히 그 내막을 물어봤으면 좋았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신랑을 불러 포도주에 대한 출처를 묻습니다. 연회장은 모처럼 축하를 받느라 즐거운 기분이 얼굴에 가득해 거의 흥분상태였던 신랑을 성급하게 불러서 물었습니다. 아마 신랑이 많은 포도주를 숨겨두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연회장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잔칫집에서 포도주는 잔치의 여흥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이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연회장은 총 책임을 맡은 사람 같지 않습니다. 연회장은 주인공이 신랑인 줄 알았거나, 자신이 주인공이라 착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연회장에게는 주님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연회장은 잔치의 주인공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는 '영적 까막눈'이었습니다. 만약 연회장에게 주님이 보였다면, 오히려 주님을 찾아가 놀라운 기적의 사건을 일으키심에 대해 정중히 예의를 갖추었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삶의 자리에서 주님이 보여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2. 연회장이 세속적인 인생관을 드러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이라는 연회장의 말에서, 그의 세속적 모습을 봅니다. 세속적 삶의 방식을 뛰어넘지 못하고, 세속적 인생관으로 살아가는 연회장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연회장의 세속적인 모습이 어쩌면 우리 실존의 한 단면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은 처음에는 좋다가, 나중에는 나빠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입니다. 시작할 때는 모두 평생 동지라며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하다가 그것이 곧 시들어버리고, 곧 배신하며 원수 맺고 맙니다. 그리고 분개하면서 많이 후회하기도 합니다.

결혼생활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엔 죽자 살자 사랑하다가, 세월이 지나면 퉁명스런 말로 "내가 뭐 정(情)으로 사는 줄 아시오? 그저 법에 묶여 살 뿐이지" 합니다.

한 번은 나이가 똑같이 91세 된 노부부가 이혼 청구를 하려고 재판관 앞에 섰습니다. "왜 지금 이혼을 원하십니까?" 판사가 물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이렇게 답변했답니다. "우린 벌써 서른살 때 이혼하기로 합의했는데,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세속적 인생관을 넘어서지 못한 채 살아가는 씁쓸한 세상사의 단면입니다. 우리는 그런 세속적 실존에 물들어 살아가는 존재가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3. 연회장은 주님의 능력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그런데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연회장은 주님의 능력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회장의 문제입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신랑이 숨겨둔 포도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났는데도, 자초지종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연회장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피상적인 것만 구하고 있지 않나요? "아픕니다. 고쳐주소서!", "가난합니다, 물질을 주소서!", "슬픕니다, 위로해 주소서!", "죄책감에 눌려 있습니다, 자유를 주소서!" 등만 구하고 있지 않나요?

이처럼 우리가 근본적인 것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라면 겉보기엔 제법 떠들썩하는 잔칫집인데, 실제로는 포도주가 동이 난지 오래인 영적인 고갈 상태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것은 모두 주님의 능력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경우에 일어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저와 여러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능력과 상관이 있는 귀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는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주님이 보이지 않는 삶은 아닙니까?. 주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나 자신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아닙니까? 더욱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님의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은 아닙니까? 바라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과 상관이 있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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