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한상화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가 지난 5월 4일 서울 양재 온누리교회에서 '젠더리즘,네오마르크시즘, 트랜스 페미니즘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열렸던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영성포럼에서 '트랜스페미니즘과 동성애'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을 매주 1회 연재합니다.

한상화
▲한상화 교수
켈러의 신학 사상은 다양한 사상들의 집합체로서 그 내용도 복잡하고 어려울 뿐 아니라 사상을 표현하는데 있어 논리정연하게 논증해 가는 스타일이 아니고 그림이나 시어 등의 예술을 통해 표현된 것들을 해설하는 스타일이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상가는 아닙니다. 그리고 본고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기초적인 개념들 외에도 매우 다양한 면모들을 가지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조망하기가 절대 쉽지 않은 사상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상의 몇 가지 기초 개념만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에 근거한 과정신학의 관계적 우주론(relational cosmology)

먼저 그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출발점을 삼을 수 있는 것은 "얽힘(entanglement)"이라는 개념으로서 이 개념은 그녀의 과정신학과 부정신학에 밀접하게 연결되어서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상호 내재성(mutual immanence)"과 "신비적 얽힘(apophatic entanglement)"을 주장하는 하나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이 "얽힘"이라는 개념은 본래 우리의 상식에 전혀 맞지 않는 양자이론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특징에 관한 것입니다. 이 "얽힘"이라는 용어는 당시 충격과 열기 속에 출현하고 있는 양자 역학 가운데 1935년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가 아인슈타인에게 쓴 편지 속에서 영어와 독일어(Verschrankung)로 만들어진 용어라고 합니다. 이 "얽힘"에 대해 슈뢰딩거는 양자 역학의 한 특성이 아니라 전체 특성이라고 보았으며 고전적 사고로부터 확실하게 전혀 새로운 사고로 전환하게 하는 개념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관찰자와 관찰대상 즉 주체와 객체가 서로 어울려 하나로 얽혀지는 현상, 그리고 관찰도구들을 통해 이 얽힘 현상을 관찰하는 동시에 이 도구들이 현상에 함께 연결되어져서 복합적인 얽힘 현상을 만들어 내게 되는 이러한 기이한 현상은 이전 근대 과학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고 합니다. 이 양자 얽힘은 다른 말로는 양자의 비장소성(nonlocality), 불가분리성(nonseparability) 등으로도 알려져 있는 현상으로 물리학의 상식을 깨는 그리하여 근대성 자체를 허물어버리는 입자들의 신비한 특성을 말합니다. 얽힘(entanglement)이란 서로 상호작용했던 전자(electron)와 같은 두 입자들이 서로 멀리 떨어진 뒤에도 모종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한 입자의 위치나 운동량, 스핀과 같은 특성을 측정했을 때 쌍을 이루었던 다른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동시적으로 동일하게 반응하는 현상입니다. 이 현상은 이 두 입자가 모래알의 크기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던지 은하계만큼이나 멀리 떨어져 있던지 간에 상관없이 동시적으로, 즉 빛보다 빠르게 동일하게 반응하는 괴기한 현상을 말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이 얽힘 현상을 "원거리에서의 유령과 같은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고 불만스럽게 불렀고 그의 남은 생애를 이 현상에 대해 반증하고자 애썼지만 실패했다고 합니다.

켈러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 이하 입자들의 이러한 상호 얽힘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과정신학의 관계적 우주론(relational cosmology of process theology)" 또는 과정 우주론(process cosmology)을 주장합니다. 이 견해는 모든 것을 존재(Being)로 보는 것이 아니라 되어감(becoming) 즉 과정(process)으로 이해하는 화이트헤드 유기체 철학 사상에 기초합니다. 실제로 칸트가 뉴톤의 고전 물리학에 철학적 토대를 제시하고자 한 것과 같이, 화이트헤드도 당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현대 물리학 이론들과 상응하는 실재에 대한 철학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켈러에 의하면, 이 우주는 "무한한 미완성의 상호활동성(interactivity) 가운데 우리 자신의 구성적 관계성(constituent relationality) 속에서 펼쳐진다고" 말합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우리 개개인은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생물학적 구성요소, 생태적 환경적 요소, 사회학적 구성요소 등 우주의 모든 것들에 함께 얽혀서 계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변화하는 흐름 또는 과정 속에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과정 우주론(process cosmology)에 의하면,  이 과정(process)이야말로 지속적이고 무한한데, 이 끝없는 흐름의 과정은 특정 시공 속에서 상대적인 작용과 반작용의 맥박들 또는 파동들에 협력적으로 상호작용하고 그 얻어지는 결과들은 다시금 이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계속 전진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고립된 개별적 실체로 이해하기를 거부하고 모든 것은 되어짐(Bcoming)의 과정 속에서 상호얽힘의 연결성으로만 존재한다는 사상을 피력합니다.

2. 접힘(fold) 또는 주름(pli)으로서 설명되는 내재성(차이)의 철학: 실재의 다겹성(multiplicity)과 신비주의 부정 신학(apophatic, negative theology)

이러한 관계적 존재론 속에서 자아만 해체될 뿐 아니라 하나님도 용해되어 버리는데, 특별히 그녀의 초기 작품들 Face of the Deep: A Theology of Becoming(2003)과 On the Mystery: discerning God in Process(2008) 속에서 나타나는 "깊음(테홈)"과 신비로서의 범재신론(panentheism)적 신 이해는 최순양 박사에 의하여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보다 최근의 켈러의 저서, 『불가능성의 구름』(Cloud of the Impossible)은 그녀의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적 신 이해를 "신-시학적(theopoesis)"으로 제시하는데 매우 난해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신비적 얽힘(apophatic entanglement)은 구름이란 은유로 표상됩니다. 이 책은 고대 카파도키아 교부 그레고리 닛사의 사상으로부터 중세 초기의 위 디오니시우스,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부지성의 구름(Cloud of Unknowing)』이라는 무명의 신비주의 작가의 작품과 니콜라스 쿠자에 이르기까지의 낯선 부정신학 전통의 논의들을 섭렵하며, "신비롭게 빛나는 어둠(luminous dark)"과 "부지성의 구름(cloud of unknowing)" 그리고 접힘과 펼쳐짐의 신(enfolding and unfolding God) 등의 다양한 은유들을 통해 하나님의 불가해성에 대해 계속 시적 언어로 설명합니다.

그녀의 부정 신학적 설명의 기본 틀을 제공하는 것은 들뢰즈가 차용하는 라이프니츠의 주름 혹은 겹(the fold)이라는 개념인데 이 개념은 본래 물체와 정신의 관계에 대해 일원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마치 화이트헤드의 물극과 심극이 분리되지 않고 한 현실태(actual reality)의 양면을 이루고 있듯이, 라이프니츠도 완전한 단자 내 물질계에 내재적 접힘으로 분리될 수 없게 연결되어 있는 정신계를 말함으로써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거부합니다. 들뢰즈는 이 겹의 개념을 차용하여 그의 내재적 물질주의를 더 확고히 하는데, 이 겹이야 말로 모든 차이의 가능성으로서, 원본과 모사본의 이중성의 지속적인 반복을 통하여 차이의 가능성을 현실화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 겹의 개념은 일종의 연결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켈러는 이러한 들뢰즈의 겹(fold) 개념을 가지고 부정신학을 설명합니다. 켈러에 의하면 한계 지워질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하나님을 니콜라스 쿠자가 무한(infiniti)이라 명명할 때 이것은 우주의 무한한 다겹성 가운데 그 하나님의 접혀짐(enfold, complicans)과 펼쳐짐(unfold, explicans)에 따라  역사적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불가능의 구름』이란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복합(complication), 전개(explication) 그리고 의미(implication)의 파트로 나누어 부정신학의 내용들과 그 이론적 토대와 함의들을 다룹니다. 켈러의 부정신학이 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특정한 실체로 간주하고 말하는 모든 기독교 정통의 신학적 언어가 가지는 지배적 권력성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신비를 강조함으로서 모든 확실성을 뒤흔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니콜라스 쿠자에게서 "무지의 교사(doctor ignorantia)" 또는 "아는 무지"(knowing ignorance)라는 개념을 취하여 그러한 해체작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신비는 지배를 좌절시킨다."

3. 신유물론(New Materialism): 관계-성육신론(intercanation)

켈러는 화이트헤드 뿐 아니라 케런 바라드의 신유물론으로부터도 신학적 적용 가능성을 봅니다. 신유물론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단순히 물질과 얽혀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물질화(materialization)는 다른 물질화와 얽혀 있다고 보는 이해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신유물론은 현재 문화이론, 여성 신학, 정치 신학, 그리고 퀴어 이론들을 통하여 물질 그 자체의 대행(agency of material itself)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인간의 특권을 대체하고자 합니다. 이 신유물론은 화이트헤드, 들뢰즈, 가타리, 스텐저 등에 영향을 받아 과거 유물론의 부작용으로부터 물질성을 회복하고자 하는데, 특히 바라드가 보다 강조하는 개념은 진입 행위(intra-action)인데 이 개념은 사물들이 있어서 상호작용(interaction)한다는 기존 개념을 대체합니다. 대신 모든 물질화 과정에 필연적인 진입행위를 강조합니다. 이 진입 행위는 대행자를 인간이나 개인으로 이해하지 아니하고 모든 물질들이 상호간의 교환하고 분산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힘들의 역동성으로서 이해합니다. 그리하여 물질화 과정에 이러한 진입 행위를 이해하게 되면 사물 간의 절대적 분리나 전통적으로 이해된 객체 개념이 불가능해진다고 합니다. 사물은 항상 다겹적으로, 집합적으로, 혼합적으로 그야말로 진입행위들과 복합성들로 존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인용들은 이 유물론의 특성을 설명해 줍니다. "인간 유전체(genome)는 소위 나의 몸이라고 불리는 평범한 공간 가운데 있는 모든 세포들 중 오직 10%밖에 되지 않는다.; 세포들의 다른 90%는 박테리아, 균, 원생생물(protists)...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이러한 수많은 작은 짝(mates)들과 어울어져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 진다." 또한   "하나이기 위해서는 항상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되어감이다." 켈러는 이것을 평면적 존재론이 아니라 접힘의 존재론 또는 프랙탈 존재론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의 다겹들은 공생적이고, 그것의  되어감은 동물들과, 식물들, 마이크로유기체들, 광기의 입자들 그리고 은하계 전체를 연결시켜준다고 주장합니다. 이 신유물론의 깃발 아래 모인 페미니스트, 퀴어, 반-인종주의자들에 의해 힘을 받아 정치성을 띄게 되면 그것은 항상 변증법적 유물론과 반-자본주의 경제논리들과 연대하게 된다고 합니다.

켈러는 양자역학의 신비하고도 상식을 뛰어넘는 발견들을 반영한 예전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과 오늘날의 신유물론을 함께 묶어서 기독교적 신학적 반성의 자료들로 삼아 기독교적 유물론의 한 형태로 발전시킬 가능성을 논합니다. 기독교 신학 전통의 몸에 대한 억압적 요소들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며 그러한 이분법적, 본질주의적 물질이해와 몸 이해에 근거한 전통적 그리스도의 성육신론을 미신적(superstition) 기독론이라 일컫고 그러한 성육신론을 거부하고 나왔던 블랙, 라티노, 퀴어 또는 소피아 기독론 등의 다양한 해방 기독론들은 중첩적 즉 덮어씌운(superposition) 기독론들이라고 봅니다. 그녀는 양자역학에 근거한 신비한 물질성(apophatic matter)을 담지 할 수 있는 관계적 성육신론(intercarnation)의 비전을 소망하는 듯합니다. 그녀는 휘트니 바우만의 퀴어적 생태 행성적 연결성을 주장하는 다애적 공간(polyamory of place) 개념을 예로 언급하며 다애적 범재신론(polyamory panentheism)을 지향합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