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의 논문 <'Peopled Land'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신앙과 역사>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C. 다윗과 예루살렘

이스라엘에게 큰 중요성을 갖지 못하였던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와 운명에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은 다윗과 그의 뒤를 이은 다윗왕가의 주도적 역할 때문이다. 다윗의 예루살렘 선택은 무엇보다도 통일 이스라엘의 수도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다윗의 궁극적인 관심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신앙 중심지로 삼는 것이었다. 그것이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곧바로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온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언약궤의 예루살렘 이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로 부각된 결정적 계기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온 일이었다. 사무엘하 6장은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거의 20여 년 동안 기럇여아림에 방치되어 있었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것은 예루살렘을 정치적 중심지 뿐 아니라 종교적 중심지로 삼으려는 다윗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옴으로서 다윗은 자신을 중심으로 새롭게 통일을 이룬 이스라엘을 고대로부터 지켜오던 신앙전승과 접목시킬 수 있었다. 그것은 언약궤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울의 입장과는 대조를 이룬다.

다윗에 의한 언약궤의 예루살렘 이전은 사무엘상 4장에서 시작되는 언약궤의 긴 이동 역사를 끝내는 것이기도 하다. 사무엘상 4-6장은 실로에 보관되었던 언약궤의 비극적인 운명을 소개하고 있다. 즉 전쟁터로 옮겨져 온 언약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겼다가 후에는 다시 이스라엘로 되돌아왔다.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이스라엘 지역으로 되돌려 보내면서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어 본처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와 우리 백성 죽임을 면케 하자"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본처'는 히브리어 '메코모'(its place)의 번역이다. 그런데 그 '메코모'가 사무엘하의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는 내용에서 다시 등장한다.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예비한 자리에 두매"(삼하 6:17)에서 '예비한 자리'로 번역된 것이 메코모'이다. 이 두 구절에 등장하는 '메코모'는 블레셋 사람들에 의하여 언급된 언약궤의 '본처'가 파괴된 실로가 아니라 다윗에 의해 점령된 예루살렘임을 암시하고 있다. 이는 언약궤의 예루살렘 이전이 사무엘상 4장-6장에서 시작된 비극적 방황을 종결시키는 사건임을 보여준다.

사무엘상 6장과 사무엘하 6장은 문학적으로나 신학적 관점에서 별개의 두 주제가 아니라 하나를 이루는 두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왜 한 주제를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언약궤의 주제와 더불어 또 다른 주제인 다윗 관한 내용을 연결시키기 위함이다. 언약궤에 관한 두 부분 사이에는 여호와에 의한 다윗의 선택과 그분의 전적인 도움으로 유지되었던 다윗의 초기 생애가 기록되어 있다. 사무엘을 통한 다윗의 선택에서도 직접적인 언급이 있었듯이(삼상 16:12), 그 이후 여호와께서는 언제나 다윗 편이 되어주셨다. 다윗에 관하여 반복되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라는 표현은 다윗이 하나님의 전적인 지지를 받는 왕임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지도자들이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와 통일왕국을 이루게 되자, 다윗은 시온산성을 점령하여 그곳을 다윗성으로 삼았다(삼하 5:1-10). 그리고 다윗은 곧바로 그곳으로 언약궤를 옮겨온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지금까지 각각 다르게 흘러내려오던 두 흐름 곧 언약궤 관련 내용과 다윗 관련 내용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로 모아진 것이다.

다윗의 예루살렘 점령과 그곳으로의 언약궤 이전은 단순히 한 개인의 정략적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모든 역사 뒤에 계신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하심을 따라 이루어진 섭리역사였다. 다윗과 늘 함께 하셨던 여호와께서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이전시키는 과정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셨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문제는 단순히 개인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승인이 필요했다. 그런 점을 보여주는 것이 사무엘하 6장 9절-12절에 나오는 내용이다. 언약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던 웃사의 죽음으로 언약궤의 이전은 3개월간 지연되었다. 그러나 언약궤가 오벳에돔 집에 머물러있는 동안 그의 집이 복을 얻었다는 소식에 용기를 얻은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성으로 옮겨온 것이다. 비록 언약궤의 이전계획은 다윗이 세웠다하여도 그 실행과정은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일이었다.

2. 다윗언약과 예루살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이전시킨 다윗은 나단선지자에게 언약궤를 항구적으로 모셔놓을 성전건축을 제안하였다. 다윗이 그런 의견을 제시한 것은 백향목 궁에서 편하게 지내는 자신과는 대조적으로 언약궤가 천막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삼하 7:1-2).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언약궤가 불편한 천막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편안하게 지낸다는 것이 하나님께 죄송스럽다는 신앙고백이기도 했다. 나단은 다윗의 성전건축 제안을 좋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나단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의 성전건축 제안을 거절하였다. 사무엘서 본문은 하나님의 거절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대기에서는 다윗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대상 22:8; 28:3).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하여 성전건축 제안을 거절하였지만, 다윗에게 새로운 약속을 전달해 주셨다(삼하 7:9-16). 그것은 다윗의 성전건축 제안을 거절하신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기도 했다. 다윗의 성전건축 제안이 백향목 궁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에 대한 죄송함에 근거한 것이라면, 다윗언약은 성전건축 제안의 거절 대한 하나님의 미안함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다윗의 성전건축 제안은 그의 순수한 사랑과 충성심에 근거한 것이었다.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약속은 '다윗언약'이라고 통칭된다. 물론 관련 본문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내용을 시적으로 표현한 시편 89:21-37에서는 '언약'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성전봉헌식을 마친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속에도 '언약을 맺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 '카라트'가 나온다(대하 7:18). 하나님께서는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전달한 다윗언약의 내용은 네 가지이다. (1) 다윗의 이름이 위대하게 될 것이다(7:9). (2) 다윗에게 대적을 벗어나 평안을 누리는 안식을 주실 것이다. (3) 다윗의 왕권이 후손에게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7:11-13). (4) 하나님과 다윗왕조와는 아비와 아들처럼 언약의 관계가 될 것이다. 따라서 잘못할 경우 징계는 있겠지만, 사울의 경우처럼 왕권자체가 끊어지지는 않을 것이다(7:14).

다윗언약은 다음 두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는 후대의 메시아사상이다.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대를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메시아에 대한 미래 소망을 기대했다. 그런 메시아사상을 상승시킨 요소는 다윗언약이었다. 초기의 메시아사상은 다윗언약에서 규명하고 있는 약속들 자체가 구체적으로 실제화 되지는 않았고, 다만 새로운 왕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제시했다(시편 2편; 132편). 둘째는 시온의 무적성(승승장구)이다.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성전이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다윗왕가의 거주지라는 점에서 이중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곳이다. 그런 시온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침범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신학적 주제는 시편과 이사야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온의 무적성은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예루살렘을 지켜주신다는 잘못된 신앙관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렘 7:4).

다윗언약과 관련하여 특별히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장소를 정해주셨다는 점이다(삼하 7:19).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서 다윗과 다윗왕가를 위한 특별한 약속을 전달하시면서 자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한 약속도 첨가시키셨다. 그것은 다윗과 다윗왕가의 존재 이유가 하나님백성 이스라엘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한 장소'로 번역된 히브리어 '마콤'이다. 어원적으로 '세우다'를 뜻하는 '쿰'에서 파행한 '마콤'은 하나님께서 특정하신 장소를 지칭한다. 신명기에서 17회나 반복하여 사용된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히브리어로는 '마콤'이다. 그런 점에서 다윗언약에서 언급된 '한 장소'는 다름 아닌 예루살렘을 의미한다. 그곳은 언약궤가 안치된 '본처'이기도 했다. 솔로몬의 성전봉헌식 기도에서도 새로 지은 성전은 '이곳'(마콤)으로 지칭되고 있다(대하 6:20, 21, 26).(계속)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