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담임).
▲최종천 목사(분당중앙교회 담임).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 원하고, 또 그 행복을 찾아 삶의 여행을 진행합니다. 진리를 쫓는 사람도, 그 진리를 쫓음이 행복하기에 그의 진리를 추구하는 여정을 지속합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함보다 사랑을 얻음이 더 행복해서입니다. 주님을 위해 그 삶의 대부분을 살아가는 사람도, 그러한 믿음의 사고와 행위가 행복해서입니다.

행복이란 단순히 마음 편하고, 기쁨과 희열이 있고, 또 원하는 성취와 소유의 완성만은 아닙니다.가고 싶은 근본적 희망과 기대의 언덕이며, 정서의 다독임과 푸근히 숨 쉴 수 있는 시공간입니다. 다른 것이 결핍되어도, 그가 원하는 것이 주어졌을 때 다른 것의 부족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행복이란 매우 주관적이며, 비교해서 재단할 수 없는 절대가치입니다.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기대하고 기도할 수는 있어도, 강요하거나 억지로 줄 수 없습니다. 부부도 서로의 행복을 인정하고 도와줄 수는 있어도,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행복은 있는 그대로의 인정과 존중을 통해, 상대가 스스로 얻도록 길을 여는 의지와 기다림입니다.

그 행복을 누리는 것은, 그래서 본인도 또 그것을 지켜보고 성원하는 곁의 사람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행복하고 유려한 삶을 산다면, 그뿐 아니라 그것을 보는 주변 사람까지 기뻐집니다. 행복이란 개체의 누림을 넘어 공익적 유익까지를 부여하는 큰 능력이 있는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행복하면 내 앞과 옆의 사람에게도 그 혜택이 흘러가고, 그가 행복하면 나도 마음 편해집니다.

행복을 누리는 요소는 내재적 정서이지만, 또한 주변의 물리적 여건이 그 정서에 영향을 끼칩니다. 배가 고파도 행복할 수 있고, 몸이 아파도, 시험에 떨어져도,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지만, 같은 상태가 반복되고, 지루함까지 수반하는 시간의 연속이 이어지면, 삶의 자연은 빛이 바랩니다.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원하고 기대하고 꿈에 그리는 것들을 모두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큼은 이룸입니다. 또 하나는, 삶의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더라도 그것을 소화하고 흡수해 내는 능력의 유연함입니다.

그중에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무엇인가 자신의 원함을 현실에서 이루지 못합니다. 우리 능력의 제한이고, 우리 욕심의 확장입니다. 어떠해도 이 세상 모든 결핍된 사람, 마음 상심한 사람을 물리적 공급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그 마음에 임해, 그 마음을 지배하시고, 새로운 경작으로 옥토가 되어 씨가 뿌려져야 합니다. 천국이 된 마음, 모든 것을 평안과 기쁨으로 볼 수 있는 마음만이, 온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