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길 성경 주석
▲변종길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홍성사 주최 '우리 독자를 위한 성경 주석, 성경 주석 어떻게 써야 하는가' 특강이 1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서 개최됐다. 이날 특강에는 빌립보서와 요한계시록 주석과 <신약 정경론>, <핵심 헬라어 문법과 강독> 등을 썼으며 '한국 성경 주석의 역사와 과제' 등을 발표한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가 강의했다.

변종길 교수는 이날 '한국교회에 어떤 주석이 필요한가?' 특강에서 한국 주석의 나아갈 방향으로 '학문적 주석과 평신도용 주석의 이원화'를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홍성사는 평신도들을 위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를 편찬하고 있으며, <사무엘상>, <히브리서>, <빌립보서> 등이 나온 상태다.

◈"말씀 온전히 존중하고 드러내려는 노력 약해"

변 교수는 "출판사는 독자층을 고려해 목회자나 신학자를 위한 주석과 평신도를 위한 주석을 나눠 출판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며 "앞의 것은 성경 원어를 사용하면서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하고 논의하며 여러 학문적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다. 독자층은 제한되겠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할 때가 있으므로 필요한 주석"이라고 밝혔다.

'평신도를 위한 주석'의 경우 "가능한 한 성경 원어를 사용하지 않고, 사용하더라도 음역을 해 주며, 학적 논의는 최대한 간결하게 하고 본문의 뜻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며 "문서설이나 비평적 견해는 성경 본문의 뜻을 아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도 아무 유익이 없으므로 피하도록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의할 것은 평신도들을 위한 주석이라 해서 피상적으로 저술하거나 깊이 없이 써서는 안 되고, 가능한 한 본문이 말하는 의미를 잘 드러내야 한다"며 "최대한 내용은 깊이 있게 유지하면서 불필요한 논의를 없애고 간결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학적 주석을 집필하고 나서 동일 저자가 평신도를 위한 주석을 집필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조언했다.

변종길 교수는 "이런 점에서 20세기 화란(네덜란드) 개혁교회에서 출판된 주석 시리즈들을 참조할 만하다. 히브리어 등에 대한 유럽의 2천년 연구가 축적된 이 주석들은 영미권에서 따라오기 힘든 것"이라며 학문적인 주석으로는 세 가지를 소개했다. 먼저 흐레나이더스(Greijdanus)와 흐로쉐이드(Grosheide)가 집필한 'Kommentaar op het Nieuwe Testament 시리즈(KNT, 1922-1950년)'는 박윤선 박사가 참고한 주석으로, 성경 원어에 대한 문자적·문법적 해석이 뛰어나고 개혁주의 정통 신학의 토대 위에 서 있다. 두 번째는 'Commentaar op het Nieuwe Testament(CNT)'와 'Commentaar op het Oude Testament(COT)' 시리즈로, 구약은 거의 다 출간됐고 신약은 몇 권 나오다 중단됐다.

세 번째는 변 교수의 스승 브루헌(Jakob van Bruggen) 박사가 편집장으로 시작한 CNT-3 신약 주석으로, 1987-2010년 만들었다. 그는 "이 시리즈는 학문적인 것과 평신도용의 성격이 합쳐진 것인데 평가는 엇갈린다"며 "원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고 음역했으며, 한 단어나 구절씩 주석하는 대신 단락 전체를 해설하는 방식을 취했다. 전체적으로 문법적 해석은 이전 것들보다 훨씬 약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네 번째가 신구약 성경 전체를 간결하게 주석한 평신도용 'Korte Verklaring(간단한 주석)'이다. 그는 "간결하지만 학문적 깊이도 있어 성경을 읽다가 모르거나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찾아보면 도움이 많이 된다"며 "목회자들도 설교를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되고, 한때 네덜란드 개혁교회 성도들의 가정에 주석 전질이 비치돼 있었다. 현재 한국교회에 시급히 필요한 주석도 이러한 성격의 것으로, 우선 이 시리즈를 번역·보급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전했다.

변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한국인에 의한 한국적 주석이 나와야 할 것이나, 물론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신학자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성경관과 올바른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올바른 주석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신학이 달라졌기에, 예전의 경건한 신학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문서설이나 본문 비평은 기본으로 깔고 있다 보니, 말씀을 온전히 존중하고 드러내려는 노력이 약하다"고 진단했다.

◈"문자적 해석 충실, 교훈과 적용도 함께"

'이원화' 외에도 두 가지를 더 제안했다. 먼저 '문자적(문법적) 해석에 충실한 주석'이다. 그는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언어를 통해 주어졌고, 이는 문자를 통해 기록됐다. 따라서 우리는 계시의 도구로 사용된 성경 언어를 잘 연구하고 의미를 밝혀야 한다"며 "그것이 곧 성경의 의미를 드러내고, 이를 통해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게 한다. 이를 위해선 원어 단어를 잘 설명하는 것이 출발이고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또 "인간의 신학으로 성경을 대하기 전에, 성경에 기록된 단어의 뜻이 무엇인가를 사전과 문맥을 통해 바로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 해서 모든 단어를 다 설명할 필요는 없고, 중요한 단어나 어려운 단어 중심으로 설명하면 된다. 특히 번역상 다르거나 문제가 있는 부분에 유의해야 한다"며 "이때 주의할 것은 사전에 실린 단어의 의미를 아무거나 가져와선 안 되고, 여러 의미들 가운데 그 본문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됐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려면 문맥과 함께 성경 전체에서의 용례를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둘째로 '교훈과 적용이 있는 주석'이다. 그는 "오늘날 주석들은 성경의 문자적 의미를 드러내는 데만 집중할 뿐(하지만 이마저 충분하지 못하다), 영적 의미를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역사비평·문학비평은 성경의 올바른 의미가 드러나는 것을 방해하고, 이는 서양 주석들의 일반적 특징이자 근본적 한계"며 "'영적 의미(sensus spiritualis)'란 알레고리적(풍유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 즉 '살아있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변 교수는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주석할 때 본문의 문자적·역사적 의미를 밝혔다 해서 주석가의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주석가는 나아가 본문의 '영적 의미',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를 찾아야 한다"며 "물론 우리는 이때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본문에 기초하지 않은, 주석가의 생각을 집어넣으면 안 되고, 잘못된 알레고리적·자의적 해석을 피해야 한다. 그 영적 의미는 본문에 기초해야 하고, 성경 전체에 의해 지지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말하는 '본문의 교훈과 적용'이 말하자면 '영적 의미'에 가깝다. 이것이 있기에 독자들은 주석을 통해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발견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적용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설교자는 이를 토대로 설교를 작성할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교훈과 적용'은 성경 본문과 설교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적 의미'를 잘 살리는 것이 한국 주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서양 주석에서 부족했던 부분"이라고 이야기했다.

변종길 교수는 특히 '박윤선 주석'에 주목하면서 "전체적으로 교부들의 주석보다 종교개혁자들의 주석에서 더 진전된 모습을 볼 수 있고, 나아가 16세기 칼빈보다 20세기 개혁주의자들에게서 더욱 정확하고 치밀한 주석을 발견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영적 의미'를 드러내고 성도들의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면에 있어서는 박윤선 주석이 더욱 진전됐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 공경' 해설이나 '기도 생활'의 중요성과 의미 등은 서양의 어떤 주석보다 더 깊이가 있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동양에서 보다 진전된 주석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변종길 성경 주석
▲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칼빈의 원칙, 명료한 간결성과 저자의 의도"

앞서 변 교수는 칼빈의 주석 방법론을 소개하면서 주석가의 주된 미덕으로 '명료한 간결성(persipicua brevitas)', 주석가의 임무로 '저자의 의도(mens scriptoris)'를 드러내는 것을 각각 꼽았다. 그는 "주석의 목적은 저자(하나님)의 의도를 분명히 잘 드러내는 것인데, 복잡하게 하면 저자의 의도가 불분명해진다"며 "그래서 칼빈은 장황한 논증이나 본문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가능한 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저자의 의도'에 관해선 "오늘날 신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제2 저자(auctores secundarii)' 곧 바울과 모세 같은 인간 저자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 배후에 있는 제1 저자(Auctor primarius), 곧 하나님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바울 신학, 마가 신학, 요한 신학 등에 대해선 많이 말하지만, 성경의 참 저자 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거의 말하지 않는 것"이라며 "심지어 성경 저자의 신학들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와 바울의 성령론이 다르다면, 성경의 통일성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의도는 드러내지 못하고 만다. 이것이 성경 비평의 한계"라고 비평했다.

그는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 저자가 당시 사람들(제1 수신자)에게 무엇을 말했는가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고대 문서로만 본다면, <삼국지>를 읽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하나님께서 그 인간 저자를 통해, 그리고 그 시대 사람들에게 하신 말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를 충분히 고려해야 성경이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이라고 했다.

결론에서 변종길 교수는 "성경 주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며 "한국교회에 유익이 되는 올바른 주석은 신학적 지식이 많다고, 인력과 재정을 많이 투입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올바른 성경관의 바탕 위에 올바른 방법으로 성경 주석에 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주석가는 먼저 성경 원어에 대해 깊이 있게 정통해야 하고, 기록된 당시의 역사적·사회적·지리적·문화적 배경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개혁주의 신학 전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며 "나아가 본문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얻기 위해 늘 하나님 앞에서 기도와 묵상에 힘써야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이 아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주석가는 목회 현장과 유리돼선 안 되고, 성도들과의 교통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주석가로서의 달란트도 필요하다. 그 달란트로는 언어적 감각뿐 아니라 섬세함과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인간의 삶과 심리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합리적 사고, 건전한 판단력, 사물에 대한 통찰력 등 많은 것들이 요구된다. 그 위에 무엇보다 성령의 은혜와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며 "한 마디로 올바르고 유능한 주석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런 주석가들을 한국교회에 주시도록 기도하고, 그런 후보자들을 올바르게 교육·훈련시키는 우리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했다.

홍성사는 지난달 18일 성경전서 표준새번역과 새번역, 개역개정판과 공동번역 등의 출간을 지휘한 민영진 박사(대한성서공회 전 총무)를 초청해 '성경 주석, 어떻게 쓰고, 어떻게 읽어야 하나?'라는 주제로 특강을 청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