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정신분석에 대해 특강하고 있는 김충렬 박사.
오늘은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첫 기적 사건에 대한 본문입니다. 이 잔치에서 주님은 물로 포도주로 만들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님의 이 기적 사건에서 연회장과 하인들이 대비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손님 접대 중 총책임을 맡은 연회장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분위기입니다. 방금 전까지 잔치에 내놓을 포도주가 바닥나서 안절부절 못하던 연회장 앞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최고급 포도주가 조달되었기 때문입니다.

연회장은 그 포도주가 어디서 조달되었는지 모르는데 반해, 물 떠온 하인들은 알고 있다는 역설적 문맥이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이 본문을 바탕으로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는 제목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경험보다 더 확실한 지식이 없다

9절을 다시 읽습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본래 히브리 말로 '-를 알다, 즉 '야다-는' 경험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1장 34절 나사렛 처녀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아들을 낳으리라는 수태고지를 받았을 때, 완강히 거부하면서 던진 반문이 나옵니다.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입니다.

이럴 때의 '알다'는 동침한다는 뜻, 곧 남자와의 성적 경험을 말합니다. 이는 실로 경험보다 더 확실한 지식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도 "머슴은 나이가 보배'라고 했을 것입니다.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임을 나타낸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누가 뭐래도 인간은 경험적 존재가 맞습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 이상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활하면서 알게 되는 생활 경험, 몸으로 알게 되는 육체적 경험, 그리고 공부하면서 깨닫게 되는 정신적 경험 등이 모두 그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이란 모름지기 이론적인 것보다는 경험으로 알아야 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2. 하인들이 신비체험을 했다

하인들이 혼인 집 마당 어귀에 놓여 있는 두 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 개에 길어다 부은 것은, 분명 그저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손 씻을 허드렛물 그대로였습니다. 항아리 아구까지 채울 동안은 분명 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분부를 따라 물을 떠나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을 땐 포도주였습니다. 하인들의 손에 의해 운반되는 과정에서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지난날 중세시대 신학자들은 이것을 두고 '물로 된 포도주냐', '포도주가 된 물이냐'며 길고 긴 논쟁을 했답니다. 그래서 결국 '물이었던 포도주'라는 결론났답니다. 마치 가톨릭의 성수(聖水)에 빠진 파리를 놓고 '성수가 오염됐느냐', '파리가 성화(聖化)가 됐느냐'며 논쟁하던 것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모두 체험하지 않은 이론가들의 논쟁일 뿐입니다. 체험하는 사람들은 말이 적기 때문입니다.

오늘 보란 듯 나오는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한 마디가 바로 그것을 일축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요즘 말로 하면 "까불지 마라!" 너희들이 체험도 해 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입니다.

본문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신비한 사건을 보았던 하인들이 체험한 것을 크게 부각시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한 체험이 있다는 비밀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 주님 안에서는 별 볼일 없는 존재가 이처럼 신비하고 귀중한 존재로 변화된다는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3. 하인들, 영광의 주인공이 되다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이 선언적 한 마디는 어쩌면 가장 하이라이트요, 클라이막스가 된 분위기입니다.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가 주님의 기적보다도 더 부각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그날의 하인들은 누구의 축하도 선물을 받는 처지도 아니었습니다. 넘치는 환영과 정중한 대접을 받는 각계각층의 하객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물만 떠나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은 이름 없고 빛도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무슨 기술이 있었을까. 무슨 자격과 권력이 있었을까. 그들에게 있는 것은 오직 겸손한 순종뿐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지금 주님의 첫 번째 기적을 체험한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웠을까요? 마음 깊은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마 그들은 이 영광스런 비밀을 확실히 체험한 이후에 그들의 삶은 기쁨으로 넘쳐흘렀을 것입니다.

가는 인생길, 저와 여러분도 이 신비한 기적을 체험하는 장본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 온 하인들은 알더라'. 주님! 우리는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도 능력이 없는 때가 많습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신비한 체험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여 신비한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 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 전 한국실천신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