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설교하라
단순하게 설교하라

J. C. 라일 | 장호준 역 | 복있는사람 | 56쪽 | 4,000원

J. C. 라일(1816-1900)은 성공회 사제로서 45년간 맡겨진 교구에서 성실하게 사명을 감당했다. 설교에 관한 50여쪽의 이 짧은 소책자는 자신의 설교 사역을 돌아보며 젊은 사역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책 제목과 같이 "단순하게 설교하라"이다.

쉬운 설교라서 좋은 설교이고, 어려운 설교라서 꼭 나쁜 설교는 아닐 것이다. 쉽게 이해되는 시(詩)를 좋은 시라고 말하고, 난해한 시(詩)라 해서 좋지 못한 시라고 말하지 않듯 말이다.

하지만 청중에게 잘 전달되지 못하는 설교를 좋은 설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책은 라일이 서문에 적었듯이 설교의 본질이나 설교자의 자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9쪽). 그 중요성에 비해 너무 소홀히 대해온 설교의 전달, 즉 설교의 '용어와 문체의 단순함'에 있다.

라일이 사역을 시작한 곳은 가난한 시골의 한 교구였고, 교구원들은 대부분 노동자들과 농민들이었다. 주일날 '잠들기 위해' 나오는 그들에게 캠브리지나 옥스퍼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51쪽). 그런 라일에게 단순하게 설교한다는 것은 현실적인 요구였다.

하지만 라일은 단순하게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어셔(Usher) 주교의 말을 빌려 "어려운 주제를 어렵게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말한다.

설교의 용어와 문체가 쉽고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만들려면 엄청난 노력을 쏟아야 한다. 정곡을 찌르면서도 쉽고 오래 기억되는 설교는 모든 설교자들의 바람이 아닐까. 문제는 그 바람을 향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가이다.

라일은 젊은 사역자들에게 리처드 세실(Richard CeCil)의 이야기를 소개한다(44쪽). 한 젊은 목사가 세실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는 믿음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세실은 이렇게 대답했단다. "아닐세,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믿음이 아니라 더 많은 수고와 노력이네, 자네가 준비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믿음을 통해 자네에게 역사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하네"라고.

저속하고 통속적이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되는 설교 그것이 라일이 말하는 '단순한 설교'다. 라일은 이 단순한 설교를 위해 설교자가 지침으로 삼아야 할 몇 가지를 적확히 제시한다.

첫째, 단순한 설교를 위해 설교자가 설교하려는 주제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설교자라면 마음 깊이 공감하는 말이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말들은 청중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설교뿐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말이 듣는 이를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면, 청중의 입장에서 청중을 섬기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라일은 굳이 난해한 본문을 택하지 말고 설교자가 이해하는 분명하고 명확한 주제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적 유추에 관해 신중해야 하고, 성경의 문맥에 관련 없이 한 구절만 빼는 것도 경계하라고 말한다(22쪽).

대지를 나누어 설교를 하든 단 하나의 요지로 설교하든 단순명료한 설교를 위해서는 질서와 체계가 필요한데, 자신은 한평생 요지를 나누어 설교했다고도 말한다(26쪽). 설교는 회중이 듣고 깨닫고 실천하도록 만드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대지를 나눈 설교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설교에서 가장 단순한 용어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이 듣고 열등감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단어들을 사용하라는 말이다.

학식이 높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젠체 하는 말은 아예 쓰지 않기로 다짐해야 한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단순명료한 말을 쓰지 않는 한, 단순명료한 설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30쪽)".

셋째, 단순명료한 설교를 위해서는 문체 또한 단순명료해야 한다. 긴 문장을 쓰면서 간명한 문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부분에서 라일은 설교자가 짚어야 할 중요한 대목을 지적하고 있다.

"설교자가 대하는 사람들은 청중이지 독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잘 '읽히는' 글이라고 해서 항상 '듣기'도 좋은 것은 아닙니다. 독자라면 조금 전에 지나간 문장이나 단락으로 되돌아가 난해한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청중은 한 번 못 들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긴 문장들 때문에 청중이 일단 설교의 흐름을 놓치게 되면, 그 흐름을 다시 따라 잡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32쪽)".

TED 설교
▲짧은 시간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집중력 있는 강의를 선보이는 TED 강연(본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크리스천투데이 DB
넷째는 단도직입적인 화법을 쓰는 것이다. '나'나 '여러분'과 같은 구체적인 인칭을 사용하고, '우리'와 같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모호한 말은 사용하지 말라고 권한다.

다섯째는 많은 예화와 일화를 사용하라고 한다. 라일의 말대로라면 "예화는 설교의 주제를 조명하는 빛이 들어오는 창문(37쪽)"이다.

현대의 스피치에도 '에피소드'의 중요함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아서, 전문 강사들도 에피소드를 찾는데 온갖 공을 들인다. 라일은 예수님께서도 적절하게 사용하신 예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것들을 수집해서 적재적소에 사용하라고 권한다.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예화가 설교보다 더 두껍게 덧칠해져서는 안 된다. 수채화처럼 밑그림을 살리는 채색이 되어야 한다.

라일은 어느 곳에서 어떤 설교를 하든, 반짝 하고 사라지는 설교가 아니라 영혼에 유익으로 남는 설교를 권한다. 흥분해서 보란 듯 설교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발하고 독창적인 설교가 때론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설교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한성서공회 총무였던 민영진 목사님은 자신의 설교를 회고하면서 "청중이 아니라 본문에 더 사로잡히고 싶습니다. 이젠 청중 없이도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듣기를 거절한다면 봉인하여 오래 묵힐 그런 설교를 하고 싶습니다. 청중을 일차적으로 고려한 것이 내 설교의 실패였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청중을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본문을 대하는 설교자의 태도를 통렬하게 되짚는 말이다. 인기와 영향력이 아니라 본문에 사로잡힌 설교야말로 영혼에 유익이 되는 설교이기에.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분명하고도 생명력 있게' 설교하기 위해, 라일은 설교의 전달(diction)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목회 속에서 통감했다. 그리고 그것을 젊은 목회자들에게 전달하려고 애를 쓴다.

그는 단순한 설교를 떠받치는 것은 거룩한 삶과 열렬한 기도라고 하면서(52쪽), 설교자의 파토스와 에토스로 책을 마무리한다.

J. C. 라일이 '단순한 설교'를 강조하는 것만큼, 책의 내용과 전개도 뚜렷하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설교 전달에 미진했던 내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본문과 씨름한 고민의 흔적이 있다면, 전달이 좀 세련되지 못해도 말만 번지르르한 설교보다 낫다고 생각해 왔다.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맞는 것도 아니었다. 좋은 설교는 내용과 전달이 함께 좋아야 한다. 전달이 안 되는 설교는 내용이 좋지 못한 설교만큼 뼈를 깎는 자기성찰과 교정이 필요하다.

요즘 설교자들이나 설교학자들이 강조하는 점들을 1800년대를 살았던 라일이 이미 일목요연하게 지적해 놓았다. 설교 전달을 소홀히 여기는 설교자들이 그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면 책을 읽는데 필요한 두 시간은 조금도 아깝지 않는 시간이다.

서중한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다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