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가 필요했던 조선, ‘간서치’가 필요한 대한민국

▲영화 <전우치> 중 한 장면.

신출귀몰 '전우치(田禹治, 14??년-15??년)'도 조선을 바꾸지는 못했다. 많은 도전자들이 혁명을 하기도, 반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칼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에서 드러난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틴어 Calamus Gladio Fortior, 영어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우리는 문무겸전(文武兼全)이라 했다. 문(文)을 너무 숭상하여 무(武)를 천시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권력은 항상 무력(武力)에 근거했다.

그럼에도 무력은 시대를 아프게 했을 뿐, 회복을 제공하지 못했다. 간혹 무력독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인간 존중이 결여된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다. 칼(刀)을 근거로 한 통치는 칼잡이를 잡은 사람에게 유용할 뿐, 칼 위 사람이나 칼 아래 사람은 극과 극을 경험하게 된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사회는 전우치를 원했다. 신출귀몰한 술수를 부려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그 신출귀몰한 술수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어야 했다. 칼을 위에 선 사람들은 예리한 칼날에 베임을 당했고, 칼 아래 사람들만 칼 아래에서 안정과 번영을 누렸다.

전우치가 필요한 것은 시대가 불안하고 긴박할 때다. 자기 불만을 투사시켜 객관화시킨 것이 전우치이다. 그 전우치가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 전우치가 필요할까?

우리 사회에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어떤 가족의 충격적인 죽음을 보았는데, 사각지대라고 한다. 사회의 불안정은 불합리한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배고픔을 걱정하는 사회가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전우치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풍요롭게 해줄 전우치보다 더, 전우치 같은 위인을 요구한다. 전우치도 부당한데, 전우치보다 더 전우치 같은 위인이란 있을 수 없다.

▲웹드라마 <간서치열전> 중 한 장면.

우리 시대에 전우치와 같은 전우치보다 더 전우치 같은 지도자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말자. 차라리 전우치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간서치(看書痴, 책만 읽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가 되자. 간서치가 가득한 세상은, 전우치보다 더 전우치가 아닌 간서치가 통치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간서치가 다스리는 시대를 상상해 보자. 간서치가 우리를 다스리는 것은 우리가 간서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우치를 기다리지 말고 간서치가 되자. 전우치보다 더 전우치를 기다리는 것보다 간서치가 된다면, 전우치가 아닌 간서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책(冊), 도서(圖書)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가장 유용한 도구이다. 모든 길은 책에 있다. 멸망으로 가는 길도 책에 있고, 구원으로 가는 길도 책에 있다. 책으로 구원으로 인도할 사람은 '간서치'뿐이다.

책을 읽는 사람은 부당한 것에 대해 글로 대화를 시도한다. 지도자가 글에 대해 반박하지 못하면, 간서치의 글에 굴복하게 된다. 그래서 정복자들은 자신의 통치에 부당한 저술들을 분서(焚書)하거나 금서(禁書)로 통제했다. 그러나 진리는 사라지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배부른 사회이다. 더 이상 전우치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간서치가 되어라. 옛날 간서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였다. 현대의 간서치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수 없으니, 두려워 말고 간서치를 추구하자. 배부른 소크라테스는 되지 않겠지만, 배부른 돼지는 되지 않을 것이다.

고경태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광주 주님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