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회
▲주요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학회 제공
한국개혁신학회 제44차 학술심포지엄이 '도르트 신경 400주년의 역사적 의미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26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강당에서 개최됐다.

1618년 11월 13일부터 1619년 5월 9일까지 164회기를 거쳐 채택된 '도르트 신조(도르트 신경, The Canons of Dordt)'는 인간의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등 5대 교리의 영문 머릿글자를 딴 '튤립(TULIP) 교리'로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자유 의지(Free Will), 조건적 선택(Conditional Election), 보편적 속죄(Universal Atonement), 저항할 수 있는 은혜(Obstructable Grace), 은혜의 상실(Falling From Grace) 등을 주장한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가  맞서 채택된 것이다.

◈온건한 칼빈주의-알미니안주의 대화 가능

'정통 칼빈주의와 온건한 알미니안주의의 대화'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전한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장)는 "정통 칼빈주의는 극단적 칼빈주의가 아닌 온건한 칼빈주의로, 도르트 회의 400주년을 맞는 오늘날 양자의 대립보다는 온건한 칼빈주의와 존 웨슬리가 성경적으로 수용한 온건한 알미니안주의(soft Arminianism)는 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 박사가 소개한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공통점은 △인간의 자연적 무력함과 부패성 △예정과 선택 △그리스도의 속죄 △하나님의 선행 은혜 △견인의 은혜 등을 믿는 점이며, 차이점은 위 5대 교리이다.

김영한 박사는 "보수적 알미니안주의자였던 웨슬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인간의 전적 타락을 믿었지만, 극단적 칼빈주의자들이 하나님의 예정과 절대주권을 원리화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등한시한 것을 반대했다"며 "극단적 칼빈주의와 달리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는 겸허하고 온건한 칼빈주의와 보수적 알미니안주의는 상호 격려하고 대화하면서 구원론에 있어 하나님 주권과 인간 책임의 균형잡힌 길을 가야 할 것(빌 2:12-13)"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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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 박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발표하고 있다. ⓒ학회 제공
◈"인간 타락의 4중 원인"

이날 2분과에서 박재은 박사(총신대)는 '도르트 신경의 빛으로 읽는 인간 타락의 4중 원인과 신학적·실천적 함의'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인간 타락(Human Fall)의 원인을 무엇 혹은 누구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 죄의 책임을 돌려 하나님을 '죄의 저자(the Author of Sin)'로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인간에게 죄의 책임을 물어 인간론·구원론 안에서 죄책 개념을 논의할 가능성을 열 수도 있다"며 "도르트 회의 역시 인간 타락의 원인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가 격하게 충돌한 격전지였다"고 설명했다.

박 박사는 "아르미니우스의 후예들인 항론파(Remonstrant)와 개혁파 신학자들 사이에 본질상 좁히기 어려운 여러 신학적 간극들 중 하나가 이에 대한 입장 차이였다"며 "이 차이는 선택(election)과 유기(reprobation)에 대한 입장, 그리스도의 속죄(atonement) 사역에 대한 입장, 인간 본성(human nature)에 대한 입장, 구원(salvation)에 대한 입장, 신자의 인내(perseverance)에 대한 입장들과 상호 밀접하게 결부돼 화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신학적 간극을 구체적으로 창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잡다단한(intricate) 인간 타락의 원인을 풀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4중 원인(the fourfold cause)' 개념을 차용한 뒤 신학적·실천적 함의를 살폈다. 4중 원인이란 변화를 일으키는 원천적 주체를 의미하는 작용인(作用因, the efficient cause), 어떤 존재가 되게 하는 근본적 본질을 뜻하는 형상인(形相因, the formal cause), 한 존재를 구성하는 재료라는 차원의 질료인(質料因, the material cause), 존재에 변화가 생긴 최종 목적 또는 이유를 말하는 목적인(目的因, the final cause) 등으로 원인을 구분, 한 사건이 벌어진 원인을 다층적으로 고찰하는 방법이다.

박재은 박사는 "도르트 신경은 타락의 '질료인'을 뱀과 선악과를 도구로 삼은 사탄과 사탄의 충동(혹은 유혹)으로, '형상인'을 인간의 불신앙 혹은 완고함으로 보고, '작용인'을 인간의 자유 선택 의지로, '목적인'을 숨겨진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본다"며 "도르트 신경은 타락의 책임을 '목적인'인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두지 않고, '작용인'인 인간에게 둔다. 이 논리 가운데서 하나님은 '죄의 저자'가 되
지 않으며, 오히려 공의로운 뜻을 불가해하게 실행하시는 '목적인'이 되신다"고 요약했다.

또 "도르트 신경은 타락의 '목적인'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나타내시기 위함 혹은 하나님의 한없이 깊으신 뜻을 드러내시기 위함으로 보는데, 이것이 항론파와 다른 점"이라며 "도르트 신경을 타락의 4중 원인론의 틀 가운데 살펴보면, 끊임없이 타락의 '작용인'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 '목적인'을 인간이 아닌 하나님으로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항론파는 이와 달리 타락의 '작용인'과 '목적인' 모두를 인간에게 두려 한다. 이는 결국 '타락 사건'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것인가 거세할 것인가의 다툼"이라고 밝혔다.

이후 신학적·실천적 함의에 대해선 △타락의 '질료인'이 사탄과 사탄의 유혹이라는 사실은, 신자들이 언제나 사탄의 꼬임에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뜻한다 △타락의 '형상인'이 인간의 불신앙이라는 것은, 타락의 '질료인(사탄의 유혹)'이 타락의 '형상인(불신앙)'과 결합되지 않도록 신자들이 마음을 지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함을 의미한다 △타락의 '작용인'이 인간의 자유 선택 의지라는 말은 우리의 자유 선택 의지가 신령한 선택들을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아야 함을 이른다 △타락의 '목적인'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임은 신자가 타락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이 싹틀 수 있다는 불가해한 진리 앞에 겸손하게 부복해야 함을 말한다 등 네 가지를 꼽았다.

박재은 박사는 "우리는 항론파들처럼 모든 일의 작용인과 목적인을 인간들이 독식해나가는 구조를 만들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남겨두는 겸손함으로 무장할 필요가 있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사역인 작정(作定, decree)은 유한한 인간이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항론파는 이 점에서 실패했다"고 결론내렸다

또 "'타락의 4중 원인'의 각 요소들이 본연의 위치에서 그대로 가감 없이 타락 사건 속에서 작용될 때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결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 강화"라며 "이 점이 도르트 신경이 추구하는 바였고 도르트 신경의 빛 아래 참된 신학을 추구하려는 후예들이 추구해야 나가야 할 가장 귀한 가치"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