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문화치료 입문
관계문화치료 입문

Judith V. Jordan | 정푸름, 유상희 역 | 학지사 | 197쪽 | 13,000원

인간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있다. 그 중 그리스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정의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을 좀 더 읽어봐야겠지만, 인간이 혼자 살아가는 방식으로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현대화는 인간을 혼자 살아가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 원인이 사회적 현상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학의 발달에 기인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현재의 관점으로 볼 때 인간은 혼자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진화되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이러한 방향으로의 진화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전통적 심리학

과연 개인화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을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점점 더 사람들의 도움으로부터 기계의 도움으로 옮겨가게 되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생략할 수 있는 편리한 관계(기계, 컴퓨터, AI, SNS)를 추구하게 된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호기심이 많지만, 아직은 공부를 할 시간을 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공부한 것 중 분명한 것은 19세기 프로이트를 시작으로 한 전통심리학이 오늘날 개인화적인 사상의 심리학적 뿌리가 됐다는 점이다. 즉 정신분석(정신역동)에 기반한 심리치료의 핵심 방향은 의존적인 사람을 건강하지 못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분리와 독립을 향하여 치료의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 그래서 부모나 권위자(혹은 중독)에 의존돼 있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주도하며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다.

이처럼 인간의 성장과 발달을 '개인'의 성장과 발달에 초점이 맞추는 것이 현재 전통심리학의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이 많은 사람들을 건강하게 자립하고 독립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그 부작용으로 관계적 성향을 가진 여성들이 '의존'적 성향으로 해석되어, 대부분의 여성들은 여성으로서 정상적임에도 관계성이 의존성으로 해석되어 문제가 있는 것으로 평가돼 왔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주의 프로이트를 매우 혐오하는데, 그들의 이론 기반은 프로이트의 '독립'과 '분리' 이론에 있다는 점이다. 여하튼 병리적 의존에서 자립과 독립이 인간발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한 가지 관점만이 인류 사상에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이제는 관계의 고통(때로는 PTSD)과 어려움으로 인해 고립을 경험하거나 고립적 환경에 의해 사람들과 사회가 신음하고 있다.

RCT(Relational-Cultural Therapy), 관계문화치료  

관계문화치료의 출발점은 기존 전통심리학의 남성 중심과 지배문화적 관점의 심리분석이 여성에게는 맞지 않다는 운동에서 시작됐고, 이것이 관계문화치료로 발전되었다(여성주의가 아니다). 물론 전통심리학에 비해 역사가 매우 짧기 때문에 많은 영향력이나 인지도는 없지만, 앞으로 관심을 두고 살펴야 할 이론임은 분명하다.

RCT는 현대의 개인들이 전통심리학의 지나친 분리와 독립 혹은 일방적 관점의 한계로 인해 현대인들의 다수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고립'의 경험을 보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즉 관계의 불편함과 고통으로 야기되는 고립의 경험은 단절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단절을 경험한 사람의 심리는 불안과 두려움의 상태에 놓이게 되며, 이것이 굳어지면 거절과 단절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역기능적 단절전략을 형성하게 됨으로 관계를 갈망하지만 관계를 지속할 수 없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버린다(물론 당사자는 자신이 쓰고 있는 단절 전략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 생각하거나, 자신의 단절 전략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또 가부장적 가정, 공동체(교회나 커뮤니티, 회사 등), 그리고 사회적 분위기는 관계 형성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힘의 불균형으로 인한 왜곡된 관계 형성이다. 그럼에도 이 왜곡된 관계형성은 그 가정이나 공동체와 사회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문화로서, 거기에 문제제기를 할 경우 오히려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피해를 입게 됨으로, 왜곡적으로 형성된 관계문화가 그대로 통용되고 지속되고 있다(권위적 집단이나 공동체일수록 '미투(#Me_Too)'가 나오기 어려워진다. 그 이유는 관계이미지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 그 피해자들은 약자들이며, 약자들은 그 불합리한 권위에 도전하기 어려운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이는 성장을 막는 문화로서 병리적 사회가 되어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프로이트와 전통심리학자들이 생물학적이고 개인심리 발달에 관심을 두었다면, RCT는 관계로 인한 고통과 건강한 관계 형성을 통한 상호심리 발달에 관심을 둔다. 그런데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질수록 관계의 경험과 그 경험을 통해 형성된 관계 이미지가 개인과 공동체(사회도 포함)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알게 해 준다.

성장을 향하여

본서는 RCT에 대한 개관적 설명을 담고 있는 책이다. RCT가 태동한 배경, 그리고 그 과정과 흐름을 1-2장에서 다루고 있다. 3-4장은 본서의 핵심 내용으로, RCT의 핵심 개념과 치료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5-7장은 RCT를 중심으로 한 치료 결과와 관련된 연구, 적용과 향후 비전들을 나누고 있다.

본서를 서평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 가운데 형성되어 있는 관계가 과연 건강한 관계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건강하지 않은 관계로 형성돼 살아가는 사람은 궁극적으론 치료가 불가능하며(재발한다) 관계의 회복과 재형성이 치료의 필수적 요소라는 점이다. 물론 기존 심리치료에서는 '분리'의 처방을 내리지만, 그것이 결코 안전한 처방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RCT는 심리치료사들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관계가 건강한 가정, 공동체, 사회가 모두를 건강하고 성장케 하는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시중에 여러 가지 관계에 대한 기법들을 다루는 책들이 자기계발서로 나와 있다. 하지만 다수의 책들이 표면적인 이야기들에 불과하며, 실제로 관계는 기법이 아니라 그 관계의 진정성과 진실성에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전통, 지배문화 등으로 인해 그 진실성이 왜곡돼 수많은 고통들이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관계 형성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돼 버린다.

최근 국내에서 일어나는 'Me Too' 운동은 바로 잘못된 지배 문화에 의해 형성된 관계 이미지로 인해 누적된 부작용들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단순히 갑질 당사자들에 대한 처단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지배 문화와 지배 이미지, 그리고 관계 이미지들을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관계 문화를 형성하는 데까지 이어져야만 사태를 예방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심리치료에 기초한 책이지만, 건강한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