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물질주의에 오염되고,
탐욕에 피로해진 까닭인지
무소유에 대한 그리움이 많습니다.

기독교적 무소유란 어떤 것입니까?

세상과 삶이 허무한 것이기에
무를 추구하는 무소유가 아닙니다.
물질은 악한 것이기에 물질을 터부시하며

무를 추구하는 반소유적 행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 족하고,
있음 자체가 주는 넘치는 풍요의 바다에
삶을 던진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머니에 넣을 수 없고
이름을 붙여 내 것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주의 큰 세계에 녹아들어
자신을 잊었을 때에 얻어지는 기쁨의 차원입니다.

기독교적 무소유는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택함으로 열리는 새 하늘과 새 땅 위의
식지 않는 존재의 감격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처럼 십자가에
자기마저 바치는 아가페적 영성입니다.

<2004.5.26. 다시 묵상함. 이주연>

*오늘의 단상

노인에겐 삶의 의미를 낚시질 하게 하고,
젊은이에겐 무의미를 보게 하십시오.
<이주연>

* '산마루서신'은 산마루교회를 담임하는 이주연 목사가 매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깨달음들을 특유의 서정적인 글로 담아낸 것입니다. 이 목사는 지난 1990년대 초 월간 '기독교사상'에 글을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산마루서신'(www.sanletter.net)을 통해, 그의 글을 아끼는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