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상담학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충렬 박사.
오늘 본문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칫집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 잔치에서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반응이 조금 엉뚱하다는 것이 대조적으로 연출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포도주가 바닥나서 말이 아닌 잔칫집 형편을 직접 어머니로부터 사전에 들었으면서도, 동정은커녕 퉁명스럽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때 어머니 마리아는 이에 개의치 않고 하인들에게 지시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라는 제목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믿음이 우선이다

본문 3-4절에서 "여자여!"라고 대응하는 주님의 엉뚱함에도, 어머니 마리아가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는 데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것은 "여자여?"라는 헬라어 '구나이'는 조소나 힐책의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순수한 경어(敬語)라는 점입니다.

그렇다 해도, 주님께서는 어머니라는 뜻의 '메테르' 대신 갑자기 경어를 사용하시면서 상당히 객관적인 자세를 취하신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도 어머니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는 자신의 간곡한 부탁을 반드시 들어주리라는 믿음의 확신이 느껴집니다.

어머니 마리아의 이 확신, 믿음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믿음의 우선성은 마리아가 그 옛날 요셉과 정혼하기 전 아들을 낳으리라는 엄청난 수태고지를 순종하는 데도 발휘됐습니다. 마리아는 만세에 복 있는 여인이라 일컬음을 받았던 것도 믿음의 우선성 때문이었습니다.

2. 기적은 하인들의 실천에서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상당히 절박한 상황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결혼식은 동네 전체의 경사여서, 항상 축제로 지켜졌다고 합니다.

결혼식에 참석한 손님들에게는 음식 제공이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포도주는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중동 지역에는 물이 귀했기에, 포도로 술을 만들어 음료수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상황은 잔치의 여흥을 위해서뿐 아니라, 잔칫집의 커다란 결례이기에 집안의 수치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 난감한 상황은 기적이 없고서는 안 됐기에, 마리아는 응급조치 방안으로 기적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름 아닌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대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기적은 말씀을 실천해야 가능하고, 말씀을 실천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교훈입니다.

3. 말씀에의 순종, 예배보다 좋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형식적으로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옳다는 뜻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말씀에 순종하여 놀라운 기적을 이룬 부분이 성경 여러 곳에 나옵니다.

베드로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이 찢어지도록 풍성하게 고기를 잡은 것(눅 5:4), 예루살렘 가까이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두 제자에게 "나귀를 풀어 끌고 오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도운 것(마 21:1-3), 그리고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창 22:2) 등입니다. 모두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한 인물들입니다.

어느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 바다에서 조난당한 배 한 척이 SOS를 쳤습니다. 구조선 선장은 서둘러 배를 띄웠습니다. 그때 젊은 선원 하나가 선장에게 다가왔습니다. "선장님! 바람이 너무 세고 파도가 너무 높아 배를 띄우기에는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선장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구조하러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지금 바다에는 조난당한 배가 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가야 한다."

그러자 젊은 선원이 다시 항의조로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선장님, 우리는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선장의 대꾸는 다부졌습니다. "이 사람아, 우리는 돌아오라는 명령을 받은 게 아니라, 지금 곧 가라는 명령을 받았네." 믿음은 이처럼 앞뒤를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순종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 실천하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믿는 믿음에 온전히 서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실천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무엇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말씀에 실천하여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기적을 체험하도록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 소장, 한일장신대 전 교수, 한국실천신학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