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민영진 박사가 강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홍성사 주최 '우리 독자를 위한 성경 주석, 성경 주석 어떻게 써야 하는가' 공개특강이 18일 오후 서울 합정동 양화진책방에서 개최됐다.

이번 특강은 성경 주석의 활용과 용도 등을 포함해 주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쓰여야 하고, 어떻게 읽어야 할지 등 전반적인 문제를 다뤘다. 이날 특강에는 민영진 박사(대한성서공회 전 총무)가 나섰다.

민영진 박사는 "출판사에서 단순히 주석을 출간하고 집필자에게 이를 맡기는 것만이 아니라, 주석 생산자인 집필자와 수요자인 독자 사이에서 생산과 소비가 효과적으로 이뤄지게 하려는 노력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며 "퍽 어려운 과제이지만, 출판사와 저자와 독자가 모두 함께 모여 대화하면서 해답을 찾아보겠다고 하는 방향은 출발부터 잘 잡은 것"이라고 격려했다.

민 박사는 "주석의 독자(readers)를 고려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평가하고 싶다. 출판사나 집필자는 당연히 독자를 고려하지만, 좋게 말해 저작물에 대한 독자의 접근성을 고려하는 배려(reader friendly)로 들릴 뿐, 실제에 있어서는 독자에 대한 폄하나 무지가 그 저변에 깔려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더욱이 '일반 목회자나 평신도가 읽을 수 있도록' 집필해 달라는 부탁 속에는 '학문적 주석에 대한 경계'가 전제돼 있기도 하지만, 심각하게는 '독자 무시'가 감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자리에 참석한 독자들은 '우리는 성서학자도 주석 전문가도 아니니까, 좀 쉽게 써주길 바란다'거나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문자적 의미보다는 성경에 감춰진 비의(秘義)를 밝혀 달라'고 요청하는 등 '자기비하'를 삼가야 한다"며 "본문을 이해한 다음 그 본문(혹은 본문을 구성하는 낱말, 낱말을 구성하는 알파벳 등)에 대한 연상은, 주석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감상이나 응답에 속하는 '성령께서 깨우쳐 주시는 영역'에 속하고 개인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주석이 다룰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민영진 박사는 목회자인 아버지의 서재에서 1950년대 중반인 고교 시절부터 주석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박형용·박윤선 목사의 성경주석, 이명직 목사의 성경강해, 아빙돈 단권성경주석 등을 읽었는데, 성서학도의 지적 기갈을 풀어주기에 넉넉한 자산이었다"며 "그러나 1970년대 쏟아져 나온 유명 번역 주석들 중에는 우리말 번역에 문제가 많아 소통이 잘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번역 주석에서 번역의 질이 문제되기 시작했다. 1934-35년 한국 개신교회 선교 50주년을 기념해 번역 출판된 주석보다 번역의 질이 떨어졌다. 오역은 아니라도, 축자역이나 번역투가 그대로 노출돼 독서를 방해했다"고 회고했다.

민 박사는 "1980년대부터는 몇몇 출판사들이 한국교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주석 총서를 기획하기도 했다. 주석을 이해하기 쉽게 써 달라는 부탁은 나무랄 데 없다. 문제는 그 배후에 목회자와 일반 신도들에 대한 비하가 깔려 있다는 점"이라며 "이런 요청이 학문적 주석을 피해달라는 것이라면 주석을 포기한 언급이고, 거기에 덧붙여 집필 마감 기간을 가능한 한 짧게 잡는다면 주석에 대한 무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 역사 100년이면 이제 그 나라의 신학자들이 주석을 집필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그것도 복음서를 기준으로 최소 10년이 아닌 1년 안에 집필을 마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마감 일자를 정하는 것, 그리고 영국, 독일, 프랑스에 주석들이 많이 나와 있으니 그것들과 비교해 주요 내용을 발췌해 소개하면 못할 것도 없다는 발행인과 집필자 쪽의 어처구니 없는 자신감 등이 지난 20여년간 성경 주석을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게 한 것은 아닌가"라며 "쉽게 나온 주석들은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유대교 대표적 주석가 '라쉬(1040-1105)'가 활동한 것은 11세기 말이었다. 히브리어 성경이 정경이 되고도 1천년이 지난 뒤였다. 적어도 1천년의 '집단 독경의 역사'가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또 "한국 개신교 100년 역사에서 우리말로 집필된 주석이 국제적으로 관심을 받아 그 나라 말로 번역되는 경우는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학자들을 제외하면 극히 드물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주석가들이 자신들의 주석을 국제학회에 내놓고 평가를 기다리는 경우는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지만, 주어진다 해도 퍽 드문 일이 될 것"이라며 "언젠가 글로벌(global)한 주석이 우리 역사에서도 나올 수 있기를 바라고, 이런 것까지 고려해 주석 집필을 격려하고 주석 독서를 장려하여 한국 성서학이 세계사적 공헌을 할 수 있도록 출판사가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면 달리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덧붙였다.

주석
▲민영진 박사가 이날 소개한 주석. 위쪽부터 바빌로니아 탈무드 전 20권, 라쉬(1040-1105)의 오경 주석 영어 번역판, 라쉬의 탈무드 주석.
그러면서 "그 동안 히브리어 성경에 대한 수많은 질문이 제기되고 집적됐다. 주석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집필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그러나 우리의 경우 성경이 완역되기 100년이 채 되기 전부터 주석들이 나왔다. 한국 기독교 100년 역사는 3천년 유대교 전승에 접목되든, 2천년 서양 기독교 전승에 접목되든, 아니면 두 전승에 함께 결합되든, 2-3천년의 그 독경과 주석의 시간을 독서로 공유했어야 했다"고 일침을 놓았다.

민 박사는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경전 역사만큼이나 주석 역사도 길다는 것이다. 이 긴 역사를, 대표적 주석에 대한 오랜 연구 없이 주석 역사를 뭉개버린 채, 주석을 쓸 수는 없다는 말"이라며 "최소한 중세 랍비들의 히브리어 성경 주석, 교부들의 성경전서 주석을 먼저 섭렵한 다음 현대의 학문적 주석을 보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주석을 구상해 봐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주석이라는 것은 아무도 정의를 내리지 않았기에, 지난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올 수 있었다"면서 전 세계 여러 주석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1000년대부터 시작된 유대교 성경 주석은 'Peshat(프샤트, 표면적·문법적 의미), Remez(레메즈, 마음껏 상상할 수 있게 하는 힌트), Deresh(드라쉬, 랍비들이 훈계하는 설교), Sod(비의, 신비적 해석)'라는 네 부류를 중심으로 탐구했다고 한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알렉산드리아(알레고리)'와 '안디옥(문법)'이라는 두 학파가 중심이었고, 중세에는 혼자 다 쓰지 않고 세대를 걸쳐 이어 쓰는 '연속 주석'이 있었다. 현대는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가 각각 특징 있는 주석을 내고 있다.

논의를 마무리하면서, 그는 "주석 집필자는 우리말 주석, 곧 우리나라 성경 독자들을 위한 주석에 유대교의 해석 전승과 기독교의 고전적 주석 전승을 반영시켜, 3천년 혹은 2천년 성경 이해의 역사를 우리말 독자가 공유하도록 안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방법론에 있어서는 유대교의 프샤트, 곧 문자적·문맥적 의미 발굴을 지속하기 위해 역사 비평적 접근과, 나날이 발전하는 학문적 방법(인문학적, 사회학적, 과학적 접근)을 꾸준히 시도할 수 있다"고 전했다.

민영진 박사는 "의미 추구에 있어서는, 성경 주석을 통해 현대 인류가 당면한 구원 문제에 성서적 접근이 구체적 해답을 제시할 수 있도록 성경 본문이 발언하게 해야 할 것"이라며 "주석이 '레메즈'와 '드라쉬'를 구체적으로 진술하기보다, 성경 독자들 스스로가 주석을 통해 본문의 확대되는 의미를 연상하고 본문을 깊고 넓게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의 모체(matrix)와 역사적·지리적·문화적 배경을 다각도로 밝혀줄 수도 있다"고 정리했다.

민 박사는 "영어권만 해도 주석은 이미 홍수를 이룰 만큼 많이 나와 있으나, 우리에게 그것들이 다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21세기 한국에서 나오는 주석은 한국어 독자가 묻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고, 한국교회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답을 시도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기독교를 향해 도전해 오는 질문도 다루고, 동양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의 만남에서도 구원의 경륜을 읽어내도록 안내하는 주석이 돼야 한다"며 "지구 행성이 당면한 피조 세계의 문제에도 응답하고, 종교 간 갈등에 창조적으로 대처하는 해석도 시도해 보는 세계사적 공헌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독자들을 위해선 "성경 본문을 읽을 때 전후 문맥을 놓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우리말 번역 성경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문제 중 하나가 성경 편집에서 본문을 문맥과 분리시켜 절별로 편집하는 점이고, 모바일 성경들도 예외가 아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또 "화자와 청자, 중간 개입자, 바뀌어 버린 화자와 청자 등을 구별하기 어려운 본문들이 많다. 대명사를 직역한 축자역에서는 먼 문맥의 실제 명사를 찾아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며 "이것 역시 번역 혹은 편집 과정에서 해결될 수 있지만, 축자역일수록 이런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했다.

이와 함께 "한 번역이 이해되지 않을 때 다른 번역과 비교해 보면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번역 비교를 위한 환경은 놀랍게 개선됐다"며 "휴대전화만 있으면 수백 개 언어, 천 여개 역본 검색이 가능하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주석을 본다. 이 역시 휴대전화로 가능하고, 역본에 따라 해설 노트까지 무료 제공한다. 유료 사이트는 성경 66권 각 권마다 10-20여개 주석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출판사를 향해서는 "특히 표절을 사전 예방하기 위해 출판하려는 주석의 집필원칙과 지침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기술하고, 그 원칙과 지침을 지키기로 하는 필자에게 주석 집필을 맡겨야 한다"며 "출판사는 집필자와 협조해 학술지의 논문 심사 규정에 준하는 '집필윤리규정'을 만들고, 편집위원회는 지켜지는지 줄곧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 박사는 "출판사는 집필자 선정에 앞서, 집필자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며 "주석 집필 능력, 그들이 속해 있는 직장(학교, 교회, 연구소 등)에서 맡고 있는 업무량, 집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자료실이나 도서관의 환경, 집필 기간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안식년이 들어있는지 살펴보는 것까지 고려할 수 있다면, 도중에 필자를 교체하는 위험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출판사는 독자를 위해 온라인 주석까지 만들어 주석에 대한 독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독자의 주석 활용을 격려할 수 있다"며 "성경 주석 출판사는 단순히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아니라 문서선교 단체인 만큼, 집필과 출판, 보급과 독자들의 활용을 위한 예산을 별도로 기증받는 하부구조를 마련하는 방법도 고안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민영진 박사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Th.M.)과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Ph.D.)에서 수학했으며, 감신대 등에서 가르쳤다. 특강은 오는 6월 1일 오후 4시 변종길 교수(고신대 신대원)를 강사로 '한국교회에 어떤 주석이 필요한가?'라는 주제 아래 한 차례 더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