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
▲김용규 작가의 이 책에 대해 이어령 박사는 “신이 죽었다고 외치는 시대를 거쳐 이제 인간이 신이 되리라 자처하는 시대에 도달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는 신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이 책에 담긴 철학자의 치밀하고 오랜 지적 탐색뿐 아니라 그의 지혜 어린 조언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이 오만과 과잉, 야만과 공포의 시대 곳곳에서 감지되는, 인간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뿌리 깊은 욕망을 넘어설 실마리를 발견할 것이고, 참된 인간의 모습, 곧 신을 닮은 인간의 생명과 아름다움을 다시 이야기로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추천사를 전했다. ⓒ이대웅 기자
<신: 인문학으로 읽는 하나님과 서양문명 이야기>를 쓴 김용규 작가는 이 책에서 신학과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을 오가는 광대하고 심오한 논의들을 가벼운 대화로 시작해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분량은 많지만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신(神) 이야기,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이는 '기분풀이' 내지 '환담'이라는 뜻의 '디아트리베(diatribe)'라는 수사법으로, 친근하고 생동하는 일상용어로 말하여 독자나 청중을 대화 상대로 끌어들이고 그들과 함께 담화른 나누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기법이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질문해 가면서 동의를 구한다. 독자들이 던질 법한 질문 또는 반박을 스스로 해 가면서 수긍하거나 논박하기도 한다. '딱딱한 글쓰기'가 대부분인 신학자 또는 목회자들이 귀감으로 삼을만한 방식이다.

김용규 작가는 지난 인터뷰 두 번째 편에서 <신>을 통해 독자들이 주목하길 바라는 바를 언급했다. 이는 인문학적 측면에서 기독교의 신 개념을 서양문명과 엮어서 파악하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것, 탈근대적 가치가 중시되는 시대에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적 가치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중적 논법'으로 대표되는 고유의 사유 방법을 익히는 것 등 3가지이다. 이번 마지막 편에서는 인문학·철학과 기독교의 상관관계, 그리고 오늘날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는 것이 무엇인가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5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신앙 없는 신학은 공허하고, 신학 없는 신앙은 맹목'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철학과 신학, 인문학과 신학의 관계도 그러한가요.

"제가 그런 말을 했었나요(웃음)? '철학 또는 인문학 없는 신학은 공허하고, 신학 없는 철학 또는 인문학은 맹목인가' 하는 질문 같은데요,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앙 없는 신학은 공허하고, 신학 없는 신앙은 맹목'이라는 말은,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에서 한 유명한 명제 '내용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를 본따서 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통해, 신학에는 신앙이 필요하고, 신앙에는 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한 강연에서 비슷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인문학자인 제게 '신학함'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때 중세 신학자 안셀무스의 '신앙을 전제하지 않는 것은 오만이고,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태만이다'라는 말을 빌어 답했습니다. 제게 신학함이란 '신앙을 전제하고 이성을 사용하는 것'이 라고요.

이번에는 칸트의 말이 아니라, 기하학에서 공리(公理)와 정리(定理)의 관계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싶은데요, '공리'는 모든 다른 명제들이 도출될 수 있는 근원이지만 그 자신은 어디서도 도출되지 않고 증명할 수 없는 것, 단순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다른 명제들의 전제가 되는 명제지요.

유클리드의 평면기하학에서 '평행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 공리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다'와 같은 그 밖의 정리들이 증명되고 도출됩니다. 물론 구면기하학에선 공리가 달라지고, 공리가 달라지면 정리도 달라집니다.

신앙은 '공리'와 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거기에는 일체의 다른 이성적 사유가 들어가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신학이란 그것을 전제로, 이성을 사용해 정리들을 증명하고 도출해내는 거지요. 신학은 부지런히 이성을 사용하는 작업이지만, 그러나 항상 신앙이 전제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2세기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는 이 말을 '믿으면 안다'고 했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알기 위해 믿는다'고 표현했지요.

기하학에서 공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리를 증명할 수 없듯, 믿지 않으면 알 수도 없다는 뜻입니다. 저도 공감합니다. 신학에서도 신앙을 공리로 받아들여야, 그때부터 이성적인 작업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이 신학과 철학이 서로 다른 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이와 관련해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 <나와 너>를 쓴 마르틴 부버(Martin Buber)의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이단'이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의견이 틀릴 때만 이단인 게 아니라 설사 맞더라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견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사람은 자신의 이성을 믿었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도 겟세마네의 기도에서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신학에도 이런 태도가 올바른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가 아무리 옳다 해도 '나는 여기까지만!' 하는 것입니다. 이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게 아니라, 맨 마지막에는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이야기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 것 같아요. 자신의 이성을 신앙 앞에 무릎 꿇리는 자세이지요."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한 이후의 현대 철학에서도, '신'에 대한 유의미한 논의가 전개되고 있는지요.

질문들이 모두 크다 보니 답이 길어질 수밖에 없는데요,(웃음) 거두절미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신은 철학의 주요 관심사에서 차츰 밀려났습니다. 신이 간혹 거론된다 해도, 라이프니츠(Leibniz)의 신정론이나 스피노자(Spinoza)의 윤리학처럼 인본주의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근대 이후로는 인본주의적 세계관으로 옮겨왔기 때문에, 더 이상 신에 대한 담론은 불필요해졌고, 뒷전으로 밀렸습니다. 이 말을 니체(F. W. Nietzsche)가 '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했지요.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니체가 1882년 <즐거운 학문>에서 처음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신을 죽였다. 당신들과 내가! 우리 모두가 신을 죽인 살해범이다!"라고 아주 당당하게 외쳤는데, 이때 니체가 이야기한 '신'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안티 크리스트>라는 작품도 남겼기 때문에, 대부분 이 말을 '여호와 하나님이 죽었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소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해입니다.

니체는 신본주의 가치가 몰락하고 인본주의가 올라서던 시절 태어났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16-17세기 과학혁명, 18세기 프랑스 혁명, 19세기 산업혁명과 다윈의 진화론으로 이어지던 때, 그가 이야기한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신의 이름으로 서양문명을 이끌어 온 신본주의 가치들이 몰락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연과학, 사회진보, 산업발달을 이끌어낸 인본주의 가치들이 떠오르는 것을 목도하고 한 말이지요. 그래서 '신은 죽었다'고 한 것입니다. 이 같은 당시 사회 현상을 증명하는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있습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에 이신교(理神敎)라고, 인간의 이성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가 실제 존재했습니다. 예컨대 당시 급진파 지도자였던 공포정치가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de Robespierre)와 그가 이끄는 자코뱅(Jacobin) 당원들은 이성을 뜻하는 'reason'의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해 'Reason'이라 쓰고, 이성을 새로운 신으로 숭배하는 이신교를 제도화했지요.

그리고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에서 십자가를 떼고 자코뱅당의 금속 모자를 만들어 씌우고, 성당과 주변에 설치되어 있던 기적을 묘사한 석조물 120여개도 떼어내는 해프닝도 벌였지요. 또 미국 3대 대통령을 지낸 이신론자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성서에서 '기적'에 대한 이야기들을 다 뽑아버린 <제퍼슨 성경>을 따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19세기에는 인류교(人類敎)라는 것도 생겨났습니다. 사회주의자 생시몽(Saint Simon)이 창시한 종교인데요, 인류교에서는 '집단적 인류'가 신이고, 인류를 위해 목숨을 바친 통치자들, 과학자들, 예술가들이 성인(聖人)들입니다.

콩트(Auguste Comte) 같은 실증주의자, 슈트라우스 같은 자유주의 신학자들, 오언과 프리에 같은 초기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조지 엘리엇 같은 뛰어난 예술가들까지 이 종교를 숭배했습니다. 지금 회자되는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는 이미 그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김용규
▲김용규 작가가 ‘신의 부재’에 대한 책 속 헤르만 헤세의 시를 낭독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그런데 이런 일들이 벌어진 뒤 어떻게 됐습니까. 니체는 어쨌든 예지가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의 죽음'을 선포한 바로 그 <즐거운 학문>에서 뒤이어, '신이 죽은, 다시 말해 신본주의 가치가 몰락한 다음 인류가 얼마나 어둠에 쌓일 것인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이런 일들을 저질렀을까? 어떻게 우리가 거대한 바다를 마셔 말라버리게 할 수 있었을까? ... 허공이 우리에게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밤과 밤이 연이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낮에도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입니다.

니체의 예측이 맞았지요. 1900년 그가 죽은 지 불과 10년 남짓 만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이 이어졌습니다. 그의 말대로 밤과 밤이 연이어 다가온 거지요. 허공이 한숨을 내쉬고, 한파가 몰아닥치고, 대낮에도 등불을 켜야 할 상태가 된 거예요.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미 다이아몬드(Jared M. Diamond) 에 따르면, 20세기에만 100만 명 이상 사망하는 집단학살(genocide)이 10건 넘게 발생했다고 합니다. 인간이 신을 죽이고 스스로를 신으로 모시기 시작하면서, 다시 말해 신본주의적 가치들을 폐기하고 인본주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일어난 일들입니다.

인본주의적 가치들이 저지른 가장 비인본주의적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비판적 이성을 본연의 임무로 삼는 철학은 마침내 '바른 길'을 찾아갈 기회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지요.

20세기 전반에 사르트르, 하이데거와 같은 사람들이 이끈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이 그것입니다. 신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탐구했던 철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틸리히가 <존재에의 용기>에서 실존주의를 '절망하여 자기 자신으로 살려는 용기'라고 규정한 것도 그래서이지요.

실존주의는 본디 19세기 가장 탁월한 신학자이기도 했던 키르케고르(Kierkegaard)로부터 시작했고, 20세기에도 야스퍼스와 마르셀과 같은 '유신론적 실존주의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조금 전 철학이 바른 길을 찾아갈 기회를 만났다고 한 게 그래서인데요, 하지만 철학은 다른 길을 갔던 거지요. 그리고 20세기 후반부터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이 등장했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온갖 유토피아를 약속했던 근대적 이성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불안, 그리고 그것이 동반한 끔찍한 폭력성에 대한 혐오와 저항에서 시작됐습니다. 처음에는 건축, 회화와 같은 예술 분야에서 시작됐지만, 이성, 진리, 역사, 진보와 같은 '큰 이야기(grands rcit)에 대한 거부',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의 해체', '타자와 차이에 대한 관심' 등으로 나타났지요.

역시 앞에서 언급했듯, 라캉, 푸코, 데리다 같은 포스트구조주의(Poststructutralism) 철학자들을 시작으로 리오타르, 하버마스, 들뢰즈, 로티 같은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이 근대적 이성이라는 무참한 야수를 포획해 제거하려는 실로 영웅적 전투를 감행했습니다. 그리고 나름 성공했지요. 그러나 세상이란 언제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전체성을 인정하면 전체주의에 빠진다고 인식함으로써 인류 문명의 기반이었던 거대 담론들을 철저하게 제거했고, 주체는 오직 사회에 의해 구성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회를 구성하는 동력인 주체를 면밀하게 해체했습니다. 나아가 타자와 차이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인간성의 공통적 요소들을 부정함으로써, 공동체의 결합과 연대를 현저하게 약화시켰지요.

그 결과 이제 우리는 그 어떤 시위나 혁명을 실행하기 위한 기반인 이념도, 주체도, 공통성도 상실해버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시위가 하나같이 집단이기주의로 전락한 것이 그래서이고, 자본주의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손뼉 치며 반기는 것 또한 그래서입니다. 2016년 정권을 바꾸었던 촛불시위는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실로 기적과 같은 사건이에요!

탈근대, 다시 말해 포스트모던 시대가 오면서는 더더구나 인본주의적 혁명 같은 담론들은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엔 슬라보예 지젝 같은 몇몇 급진적인 좌파 철학자들만 이야기할 뿐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인본주의로 다시 돌아가자, 혁명을 일으키자고 외치는 지젝이 든 예입니다. 신본주의 없는 인본주의가 맹목적이었듯, 탈근대적 담론 역시 얼마나 맹목적인가 하는 것을 보여준 이야기인데요.

맥도날드가 인도에서 벌인 해프닝입니다. 소를 숭상하는 인도에서 맥도날드가 소고기 패티로 만든 햄버거를 팔았는데, 인도인들이 항의하니 인도에서는 소고기 패티를 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웃기느냐는 것이지요.

지젝이 보기에는 맥도널드가 취한 포스트모던적 조치는 자신들의 이익에 무해한 종교적 전통을 '존중'해 주는 척하는 단순한 '생색내기'이며, 인도에서만 그리 한다는 점에서 엄연한 인종차별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맥도날드가 인도에서 문화의 다양성은 존중했을지 몰라도,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생매장시키는 풍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이처럼 인권과 같은 인본주의적 가치에는 신경도 안 쓰면서 소고기 패티를 문화적 다양성이라며 포스트모던적 가치에만 신경을 쓰니, 얼마나 웃기는가 하는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고 있는 수많은 이 같은 일들이 모두 철학의 빈곤에서 나온 겁니다."

-맞는 말씀이네요.

"그래서 지젝은 인본주의적 가치를 되살리자고 합니다. 저도 동의하지요. 앞에서 역시 역설했습니다만, 저는 한 걸음 더 나가 맨 먼저 신본주의적 가치부터 다시 부활시켜, 신본주의적 가치, 인본주의적 가치, 탈근대적 가치를 다 아우를 때 오늘날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오늘날 철학이, 인문학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요. 가치들의 부활을 통한 '새로운 르네상스'를 일으켜야 한다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 우리는 신본주의 가치의 근간인 하나님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 곧 가치의 몰락, 삶의 의미 상실, 물질주의, 냉소주의, 허무주의, 문명의 충돌 등의 문제는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취하되,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지요.

신본주의적 가치, 인본주의적 가치, 탈근대적 가치를 다 아울러야 합니다. 그래서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들이 서로 보완하면서 견제하게 하자는 거지요. 그래야 큰 이야기가 동반하는 폭력성도 차단되고, 작은 이야기가 가진 맹목성도 제거되지요.

그리고 이 방법은 이미 1,600년 전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탐욕을 치료하기 위해 고안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탐욕, 곧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의 끈질긴 성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들을 모두 죄로 몰아 금하는 기존의 교리와 사뭇 다른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는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이 모두 네 가지가 있다고 했지요. 첫째는 위에 있는 신이고, 둘째는 우리 자신이며, 셋째는 우리 옆에 있는 이웃이고, 넷째는 아래에 있는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기독교 교회가 첫째 '신 사랑'과 셋째 '이웃 사랑'만을 교훈하는 이유는 우리가 둘째인 '자기 사랑'과 넷째인 '물질 사랑'은 가르치지 않아도 너무나 잘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느 쪽이든 두 가지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생각입니다. 이 네 가지 사랑이 모두 합해져야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가 말하는 '온전한 사랑' 안에서는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이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공허함을 해소하고, 신 사랑과 이웃 사랑이 자기 사랑과 물질 사랑의 맹목성을 바로잡아 줍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이 온전해지려면, 이 네 가지 모두를 사랑해야 한다고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의인과 죄인에게 동일하게 비를 내리시는 것과 같지요.

우리가 인류가 그동안 추구해 왔던 가치들을 시급히 살려내야 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에서 이름 붙인 '데이터교' 때문입니다. 데이터교는 실리콘밸리에서 이제 막 태어난 신흥종교이지요. 그럼에도 이미 전 세계에서 수억 또는 수십억 명의 신도들을 확보한 강력한 종교입니다.

얼마나 강한지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새로운 무신론자들의 공격은, 데이터교 비하면 우스갯소리와 같습니다. 데이터교는 기독교를 공격하기는커녕, 아예 상대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지요.

이 종교에서는 컴퓨터 알고리즘이 '신'이고 데이터가 '말씀'입니다.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가 2013년에 건강한 두 유방을 모두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굉장히 위험한 수술이었다는데요, 유전자 조사 결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컴퓨터 알고리즘의 조언을 받아들인 사례이지요. 그녀는 이미 열렬한 데이터교 신도가 된 겁니다.

호들갑이라고 생각되는가요? 아니요! 어쩌면 우리도 이미 서서히 데이터교에 발을 들여놓고 있을지 모릅니다. '주말에 무슨 영화 볼까?', '여름 휴가를 어디서 보낼까?' 등을 네이버나 구글이 제공하는 인공지능 데이터에 의존하고 있다면 말입니다.

요즘 개인정보 유출로 곤혹을 겪고 있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우리를 각자의 친구보다 더 잘 예측하는 데 우리가 클릭한 '좋아요' 70개면 족하고, 우리의 가족보다 더 잘 아는 데는 '좋아요' 300개밖에 필요하지 않다고 합니다.

하라리는 머지않아 사람들은 '나는 무엇을 전공해야 할까?', '나는 존과 폴 가운데 누구와 결혼해야 할까?'처럼, 자신의 진로나 결혼 상대까지도 신이나 자기 자신에게 묻지 않고 아마존이나 구글, 또는 페이스북에 물을 것이라 하지요. 그럼으로써 차츰 컴퓨터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며, 결국 인류의 역사가 끝날 것으로 봅니다.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대마다 새로운 얼굴로 등장하는 우상, 거짓 신과 싸운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나 자신이 이미 '데이터교' 교인이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을 믿는지, 컴퓨터 알고리즘을 믿는지 스스로 잘 생각해야 합니다. 나의 중요한 일들을 하나님에게 묻고 있는지, 아니면 컴퓨터가 제공하는 데이터에게 묻고 있는지 점검해보아야 하지요. 그저 하나님 믿는다 말하고 교회에 출석한다고 우기고 큰 소리 쳐봐야, 우리는 이미 기독교 성도가 아니라 데이터교 신도가 된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요?

어릴 적 기억입니다만, 저희 할머님은 주무시기 전 성경 읽고 기도하셨고, 눈뜨자마자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어떤가요? 눈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눈 감을 때까지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잖아요. 우리가 지금 과연 무슨 신을 믿고 있는 걸까요?"

신
▲다양한 명화들로 이해를 더하고 있는 책 <신> 속 페이지들.
-평소 대중 강연이나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본지와도 5년 만의 인터뷰인데요, 왜 그러신가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학문적 목표랄까, 인생의 비전이 있으신지요.

"제가 옛날 사람이다 보니, 저자에게는 책이 '최선'이라 생각해서 그 동안 대중 강연을 자제했습니다. 목사님들에게 설교가 최선이듯 말입니다(웃음). 목사님 설교를 목사님의 본질이라고 생각하시면, 굉장히 실망할 것입니다. 옳은 말씀만 하시지만, 행동은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은 제 책을 보신 분들이 저를 만나면 실망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대도 바뀌고 해서, 앞으로는 강연을 자주하여 독자들과 좀 더 가깝게 지내려고 합니다.

인터뷰는 아직도 여전히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웃음)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데요, 누군가 예를 들어 '왜 철학을 하세요?' 하고 물을 때 말입니다. 인생이란 굉장히 복잡하기에, 단순한 인과관계로 이야기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받으면, 과거를 뒤지고 또 뒤져서 인과관계를 만들기 시작하지요(웃음). 그러면 대부분 진실이 아니거나 미화되기 마련입니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정말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됩니다.

'왜 철학하세요?'라고 물으면,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대답할 순 없잖아요. 그러면 '젊어서부터 철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고민이 많았습니다'라고 한다든지, 또 '왜 이 책을 쓰셨어요?' 하는 질문을 받으면, '돈도 벌어야 하고...' 라고 할 수 없으니까(웃음),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에 대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한다든지 말입니다. 이렇게 그럴듯하게 지어내 인터뷰를 하고 난 뒤, 돌아올 때면 자괴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방금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이다. 나는 단연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재치 있는 말들이 쉴 새 없이 나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웃음을 터뜨리면서 나를 부러움 섞인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는 떠나왔다. 이 줄은 지구의 반경만큼이나 길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총으로 쏘고 싶었다.' 인터뷰를 하고 나면, 늘 이러한 자기혐오의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도 인터뷰가 들어오면, 지금처럼 열심히 합니다(웃음).

조금 전 여쭤보신 것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의 계획을 그리 거창하게 세울까요? 사람은 그냥 매일 매일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사는 것 같아요(웃음). 적어도 저는 그랬던 같습니다. 실질적으로도 제가 다음 책을 쓰고 싶지만 그렇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출판사에서 계약을 해줘야 하는 등, 쓸 여건들이 마련돼야 가능한 것이지요.

이 책은 거의 1,000쪽에 달하는 분량인데, 후속작으로 기획한 그리스도, 성령에 관한 책도 거의 같은 분량이 될 거예요. 큰 프로젝트이지요. 그런데 만일 제가 '저는 남은 여생을 이 신, 그리스도, 성령, 이 3부작 완성에 투여할 것입니다'고 하면 지킬 수 없을지 모를 약속이 되거든요(웃음). 저는 단지 그런 큰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사람은 너나할 것 없이, 크고 대단한 사명이나 목표를 정해놓고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날 그날 힘들게 살면서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그리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