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의 논문 <'Peopled Land'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신앙과 역사>를 매주 1회 연재합니다.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C. 땅의 신학적 의미

1. 땅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

땅의 신학적 이해를 한 가장 중요한 성서적 전제는 '땅이 하나님에게 속하였다'는 점이다. 그러한 성경 주장은 그 근거가 명백하다. 무엇보다도 창조신앙이 하나님의 토지소유권 주장의 근거이다. 멜기세덱의 축복에 화답하는 아브라함의 고백 속에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자'라고 표현되었다(창 14:19). 이스라엘의 선택과 언약을 강조하는 출애굽기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다"라고 하셨다(출 19:5). 여기에서의 '세계'는 히브리어 '에레츠'를 번역한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땅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땅의 실제적 주인이심을 보다 분명하게 밝혀주는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레 25:23)는 선언이다. 그것은 토지를 영영히 팔지 못한다는 희년규정의 근거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땅이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라는 주장은 하나님의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스라엘이 그 땅에 거주할 근거가 무엇인지를 제시하려는 것에 그 목적있다. 즉 하나님께서 땅의 실제적 주인이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 땅에 살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실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라는 주장 다음에 제시된 이스라엘은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라는 내용 속에서 잘 드러나 있다.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신대로 그의 후손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땅을 선물로 받았을 뿐이지 땅의 실제적 주인은 아니다. 오히려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라는 신분으로서 그 땅을 소유할 뿐이다. 여기에서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는 히브리어로  '게르'와 '토샤브'인데, 완전한 시민권을 갖지 못한 장기 체류자를 의미한다. 그런 신분으로는 합법적인 토지소유가 불가능하고 그에 따라 매매와 같은 재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비록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소유하여 살고 있지만, 그것은 참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분배받아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아브라함의 부름은 땅에 관한 약속(창 12:7; 13:14-16; 15:18-21; 17:8)으로 시작되었다. 그러한 약속은 그의 자손들에게 계속적으로 확인되었으며(창 26:3-4, 24; 28:13; 35:9-12), 그런 점은 출애굽을 주도한 모세에게도 확인되고 있다(출 6:8).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였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중요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약속과 성취의 실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이스라엘에게 나할라로 분배된 땅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실제적으로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해야한다. 그것이 '나할라'로서의 땅 개념이다. 그런 점은 지파별로 분배된 토지가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구약성경 어디에서도 자기 친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땅을 팔 수 없다. 고고학적으로 이스라엘에서 토지 매매에 관한 문서들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은 그것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인 증거로서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들 수 있다(왕상 21장). 나봇이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자신의 땅을 아합 왕에게 내어주지 않은 것은 토지의 양도 불가능성을 보여준 성경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신 27:17)라는 율법 조항 역시 토지의 부동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토지의 양도금지는 이스라엘이 땅을 상실하였을 때에도 여전히 적용되었다. 비록 이스라엘이 외적의 침입으로 멸망하여 땅을 상실하였지만, 포로기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의 땅이 남에게 양도될 수 없다는 근거로 포로귀환의 소망을 선포하였다(렘 12:14-16; 16:14-15; 겔 36:8-15). 가나안 땅과 이스라엘 백성은 서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하나의 공동운명체이다.

3.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로 유지되는 땅

이스라엘이 땅을 지속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성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지속적으로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특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요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제시되었다. 신명기에 제시된 규례와 법도는 모두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내용들이다(신 12:1). 그런 점에서 구약율법의 모든 내용은 가나안에 입국한 이스라엘이 그 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으로 지켜야할 사항이라 할 수 있다. 땅은 분명 약속에 의해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나 그 선물을 받은 이스라엘은 땅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는 설정해 놓으신 기준을 지켜야 한다. 그런 하나님의 요구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은 그 땅의 풍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으면서 동시에 그 땅을 지속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가 된다(신 8:1). 반면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은 그 땅으로부터 축출이라는 무서운 저주가 따른다.

토지와 관련하여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잘못된 행위들이 땅을 더럽힐 수 있다는 것이다(레 19:29; 민 35:29-34; 신 21:23). 이것은 여호와 자신이 더럽혀질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땅이 더럽힘을 당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땅은 여호와를 대신하는 유형적 상징이다. 땅의 더럽혀짐은 결과적으로 그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내는 것으로 발전하였다(레 18:25, 28; 20:22). 땅이 이스라엘을 토해내는 것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여 포로로 끌려가는 것으로 구체화되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그 땅에서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절대권리가 없다는 것이 8세기 예언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은 또한 이스라엘에게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은 그 땅에서 이스라엘을 쫓아낼 수도 있는 분이심을 강조하였다. 예언자들의 거듭된 경고는 주전 722년과 587년에 각각 북 왕조 이스라엘과 남 왕조 유다의 멸망으로 그 정당성이 입증되었다. 그러한 국가적 멸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거역하였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러나 그런 국가적 재앙으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돌아보시고 그들을 다시 옛 고토로 돌아오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땅은 한 국가로서의 존재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할 뿐만 아니라 각 가정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수단으로도 그 중요성이 크다. 이스라엘에서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곧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위치가 안정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에 땅을 소유하지 못하다는 것은 곧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과 함께 공동체 안에서 정당한 지위를 상실했음을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구약의 여러 법들은 땅의 유지와 상실된 땅의 회복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가까운 친족에 의한 땅의 구속법이나 희년법 등이 그에 대한 좋은 예들이다. 이 두 법은 모두가 곤경에 처한 당사자들에게 땅의 회복을 통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면서 동시에 상실된 사회적 지위를 회복시켜주는 방법이었다.

사회적으로나 신학적인 관점에서 땅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과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점에서 구약신학을 다룸에 있어서 땅에 대한 이해는 빼놓을 수 없다. 신학적인 차원에서 땅은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님백성 이스라엘을 하나로 묶어주는 필수적 요소이다. 사회적인 차원에서 땅은 사람들 사이에 마땅히 유지해야 하는 평등사상을 제시한다. 곧 땅은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과의 관계와 더불어 이웃과의 바른 관계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기본요소이다.(계속)

권혁승 박사(서울신학대학교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