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리랑
독일 아리랑: 파독 광부 간호사 삶의 기록

채길순 | 국제문학사 | 284쪽 | 15,000원

<독일 아리랑>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을 직접 인터뷰한 삶의 기록이다. 파독 이주노동자의 역사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연계해 살펴보아야 한다.

당시 대한민국이 열악한 경제사정을 살리는 유일한 희망은 서독으로부터 차관을 얻는 것이었다. 경제 부흥을 막 이룬 서독 정부는 1961년 8월 상업차관으로 1억 5천만 마르크(약 3천만 달러)를 제공해줄 것을 약속했다.

서독 상업차관을 얻는 데는 제3국 은행의 지급보증이 있어야 했지만, 우리나라는 당시 세계 어느 은행에서도 지급보증을 받아올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여기서 발상된 구상이 서독에 파견하는 간호사 2천명과 광부 5천명이었다.

한국 광부와 간호사가 서독으로 파견된 시점은 공식적으로 광부는 1963년, 간호사는 1966년이었다. 1963년 12월 22일 123명의 광부들이 김포공항에서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시기 한국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계획이 수립되고 있었다.

그리고 서독은 세계대전 이후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이로써 인력부족 문제가 뒤따랐고, 서독 정부는 부족한 노동력을 외국 이주노동자로 부터 채우려 했다. 박정희 정권에 있어 파독 인력송출은 귀중한 외화 수입원으로 한국의 산업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독한문화원 김성수 원장에 의하면, 한국 광부의 독일 진출은 1963년 12월에서 1977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총 7,936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들은 석탄 광산에서만 근무할 수 있었으며, 취업 지역은 석탄 광산이 소재한 독일 중부 루르지방과 벨기에 국경 도시인 아헨 시에 한정되었다.

한국 광부의 체류 기간은 3년으로 한정되었다. 이 원칙에 따라 일부 취업자는 귀국했으며, 다른 일부는 미국, 캐나다 등 제3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약 40%는 개인적으로 독일에 계속 체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으로는 독일 장기 체류 허가를 가진 한국 간호사 또는 독일 여성과 결혼, 직업 재교육을 통한 새로운 일자리 구하기, 유학생으로의 신분 전환 등이었다.

한국 간호사와 광부 인력의 독일 이주는 한국 문화와 독일 문화의 만남을 의미하는데, 이는 한국의 국제화 및 세계화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다. 더불어 이 문제는 문화 간 소통 이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파독 간호사들의 삶은 '삶에 도전하기', '새로운 삶을 껴안기', '삶에 의미 부여하기'로 도출됐다. '삶에 도전하기'는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의 전문직 진출이 어렵던 1960년대에 간호사로서 만족하지 않고 해외 진출의 기회를 과감히 선택한 파독 간호사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희망'과 함께 '두려움'이 그들의 감정을 대표하였다.

'새로운 삶을 껴안기'는 독일에 도착한 간호사들이 겪게 된 새로운 문화와 세계에 대한 '놀라움과 부러움'과 함께, 고향을 그리워하는 '외로움과 설움'으로 나타났다. 또 '삶에 의미 부여하기'는 국가에 큰 기여를 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자신들의 삶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아쉬움'이 그 속성으로 나타났다.

책의 저자는 모두 26명을 직접 인터뷰했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다양한 삶의 정황 가운데 독일에 정착했다. 각각의 스토리는 고난과 아픔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도전과 승리의 노래이다. 파독 광부 윤영탁은 남자 간호사가 되어 의료가문을 이루었고, 전성준은 광부와 사업가의 삶을 살고 만년에 소설가가 되었으며, 강무의는  광부로 들어와 현재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신종철은 광부 출신으로 독일 배구감독이 되어 체육인의 삶을 살고 있고, 이부혜는 연약한 몸으로 백의의 천사의 삶을 살아내었으며, 김진향은 간호사로 출발해 여성학을 전공하고 사회 활동으로 나선 맹렬 여성이 되었다.

예수병원
▲전주 예수병원을 방문한 파독 간호사들(이 사진은 해당 리뷰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저자에 따르면, "1960년대, 70년대에 걸쳐 진행된 파독 광부 간호사의 삶에도 갖은 아픈 사연들이 담겨 있다. 돈벌이 문제를 넘어 각 일터에서 벌어지는 열악한 노동 조건에 대한 저항, 뿐만 아니라 사상과 이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갖은 아픔과 맞닥뜨려야 했다." 그런 '어둠의 시간'에도 교민들은 낯선 독일 땅에 정착하여 각자 나름대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

김성수 원장에 따르면, 한국의 광부와 간호사들은 1970년대 후반기부터 독일 생활이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독일에서 직장생활을 거의 맨주먹으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독일 생활의 기본 수난인 독일 언어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직장 근무에 대한 소양도 갖추지 못했다.

그저 독일을 선망했던 정도의 개인적 문화적 소양을 지닌 정도였다. 예를 들면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철학자 칸트, 헤겔, 하이데거, 작곡가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문학자 괴테, 하이네, 헤르만 헤세 등을 기억하는 정도였다."

김성수 원장은 "<독일 아리랑>이 지니는 사회사적 의미"(서문 참고)에서 이렇게 언급하였다. "파독 근로자라는 이름의 광부 간호사의 독일 생활 역사가 어언 50여 년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독일 생활사는 개인사적 의미를 넘어 사회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한국 내는 물론 교포 사회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여러 신문, TV 등 다양한 언론 매체를 비롯하여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역사적인 문제나 의미가 담론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채길순 교수의 '독일 교포와의 인터뷰'처럼 직업, 사회 활동, 거주 지역, 인생관 등 교포들의 다양한 삶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경우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채 교수는 그동안 독일에 수차례 왕래하면서 독일의 교포들의 사연을 두루 파악한 사실을 기초하여 인터뷰 대상자의 다양한 삶을 잘 그려냈다(14-15쪽)".

저자는 1차로 2016년 9월부터 12월까지 인터뷰 기사를 독일에서 발행되는 <교포신문>에 연재했고, 2차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2017년 8월 독일을 방문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저자는 주로 현장 답사를 통해 얻은 소재로 소설을 쓰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어, 이런 집필 경험이 책으로 발행되는 <독일 아리랑>에 잘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조국의 가난을 등지고 떠났던 광부 간호사. 이들의 삶은 개인적일 수 있겠지만, 이는 곧 교민사이자 한국의 역사이다. 저자는 이들의 고단한 삶의 여정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이들의 고난괴 역경, 도전과 승리의 삶을 하나의 역사로 승화시켰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접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저자의 글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부심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널리 읽혀지기를 바라며 강력히 추천한다.

송광택 목사(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