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몰텐슨
▲테리 몰텐슨의 「수백만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
3항. 노아의 홍수는 수십억 년의 시간을 쓸어버린다.

[번역문] *이 번역문은 KACR의 홈페이지에서 인용했다.

창세기 6~9장에서 노아의 홍수가 전 세계적인 격변적 대홍수라는 증거는 압도적이다. 예를 들면, 홍수는 모든 범죄한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육상동물과 새들, 그리고 지구의 표면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의도되었다. 이것은 단지 전 세계적인 홍수만이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방주의 목적은 모든 종류의 육상동물들과 새들을 2마리씩 구원하여 홍수 이후에 지구상에서 재번성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만약 홍수가 지역적(국소적) 홍수였다면, 방주는 전혀 불필요했다. 홍수가 발생하기 전에 사람, 동물, 새들은 홍수 지역을 벗어나 이주할 수 있었을 것이며, 홍수 이후에 바깥 지역에서 살고 있던 동물들이 이주해 와서 번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노아 홍수의 특징은 비가 40일 동안 멈추지 않고 계속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대적인 침식, 진흙 사태, 허리케인 등을 일으켰을 것이다.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 burst open)"(창 7:11)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들은 분명히 150 일 동안 많은 장소에서 지표면이 갈라지는 지각 변동적인 구조적 파괴(tectonic rupturing)가 있었으며, 그 결과 수많은 화산폭발, 지진, 쓰나미(tsunamis) 등이 동반되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노아의 홍수는 오늘날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보고 있는 지질학적 지층 모습들과 정확히 같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다. 즉, 수천 피트의 퇴적물들이 물에 의해서 퇴적되었고, 후에 이들은 수십억 개의 화석들을 포함하는 암석으로 굳어졌다. 만약 1년여의 홍수가 대부분의 암석지층과 화석들을 만들었다면, 그러면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들 암석 지층들과 화석들은 수십억 년의 지구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비판적 검토]

노아의 홍수는 사실 지구의 나이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24시간 6일 창조론에 관련된 것도 아니므로 젊은 우주론에 굳이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몰텐슨이 노아의 홍수를 젊은 우주론에서 논의하는 것은 노아의 홍수가 그들이 주장하는 창조연대 1656년(BC. 2349)에 일어난 것이라는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노아의 홍수 연대가 정당화되면 몰텐슨은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모든 지층이 노아의 홍수 때에 한꺼번에 형성되었고, 모든 화석 역시 그때에 매몰된 것으로 추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46억년 지구 연대를 바탕으로 지질학 또는 지구과학에서 사용하는 지질연대표(또는 지질주상도)를 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지구 연대를 부정하는 주장은 AMS(가속기질량분석기) 등을 이용하는 암석과 화석의 연대측정 기술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현재 병원에서 인체 내부를 영상으로 정밀하게 살펴보면서 질병을 진단하는 최신 MRI나, 우리가 쓰는 휴대폰이 과거의 TV방송국과 전화국의 기능 전체를 통째로 탑재하고 있는 사실을 보면서,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쉽게 부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MRI로 진단을 받거나 매일 휴대폰을 사용하면서도 그런 장비들을 만들어낸 과학기술과 데이터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모순된 행동일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성인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젊은 우주론을 수용할 수 있다 치더라도, 아이들에게 젊은 우주론을 가르치면 그들은 상식 불구자나 과학 저능아가 되기 십상이다.  

몰텐슨이 "(모든)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all the fountains of the great deep burst open)"(창 7:11)를 설명하는 부분도 왜곡되었다. 지표면이 갈라지는 지각 변동적인 구조적 파괴가 있었다는 것은 과장된 것이다. 성경에서 '깊음'은 커다란 호수 등을 채우고 있는 많은 양의 깊은 물을 가리키며, 곳곳에 있는 '깊음'에 물을 공급하는 '샘'은 그 '깊음'의 지각판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창 7:11절은 '깊음의 샘'에 물을 공급하고 있는 지각판이 파열(tectonic rupturing)되어 '깊음'의 물이 빠른 속도로 불어 오르는 상황을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깊음의 샘이 터진 곳에서는 국지적으로 물이 솟구친다고 해도 전 지구적으로 보면, 이 물은 수면을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샘에서 솟아 나온 물의 양(量)만큼 다른 물질이 그 샘을 채워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아의 홍수에서 수면을 상승시킨 원인은 다음 구절(창 7:12)에서 "하늘에 창문들이 열려 사십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라는 말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곧 바로 심각한 문제가 생겨난다.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쏟아진 물들이 전 지구를 뒤덮었다가 홍수가 끝난 후에 어디로 빠져 나갔는지를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어났던 물이 깊음의 샘으로 다시 들어갔다고는 볼 수 없고, 하늘의 열린 창문으로 '궁창' 위로 다시 올라갔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물은 지구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수증기로 증발하는 물은 대기권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구름에 갇혀 있다. 노아의 홍수 기사를 토대로 하는 홍수 지질학은 이런 문제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노아의 홍수 기사를 유비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설명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 방법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것이지만, 창세기는 결국 고대 유대인의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 기독교에서 사실적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성경 구절들을 유비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공인된 해석법의 하나이다.

둘째는 젊은 우주론에서 주장하는 노아의 홍수가 지구 역사에서 유일한 격변적 사건으로 정당화되면, 오랜 연대에 의존하는 진화론을 부정할 수 있다. 창세기에는 지질학적 격변에 관한 기사로 노아 홍수에 관한 기사가 유일하게 기록되어 있음이 사실이다. 몰텐슨과 젊은 우주론은 노아의 홍수를 바탕으로 홍수 지질학을 주장한다. 그러나 지질학 또는 지구과학에 지식을 가진 현대인들이 홍수 지질학적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홍수 지질학은 안식교 창립자 엘렌 화이트(Ellen G. White, 1827-1925) 여사의 노아의 홍수에 대한 설교를 바탕으로 조지 맥크리디 프라이스(George McCready Price,1870-1963)가 저술한 『신지질학』에서 처음 주장된 것이다. 이것을 존 위트콤(John C. Whitcomb, 1924- )과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1918-2006)가 『창세기 홍수』에서 거의 그대로 답습하면서 부분적으로 내용을 확장한 것이다. 몰텐슨의 젊은 우주론은 이 계보에서 주장하는 홍수 지질학을 답습하는 것이다.

홍수 지질학은 수천 피트의 퇴적물들을 덮은 거대한 양의 토사(土砂)가 홍수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전제한다. 노아의 홍수는 지질학적으로는 매우 짧은 시간인 창조 연대 1656년에 있었다. 홍수 지질학의 가장 큰 문제는 초기 지구에 이 거대한 양의 토사가 형성된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대 지질학에 의하면 긴 시간에 걸친 풍화(風化) 작용으로 초기 기반암이 부서져서 흙 입자(粒子)가 되었다. 초기 지구에 충돌했던 것으로 얄려진 달과 소행성들도 기반암을 부수어서 흙 입자를 만들었다고 본다. 이것들이 퇴적하여 퇴적암을 형성하였다. 화성암을 형성한 것은 화산 활동에 의한 지구 내부 마그마(magma의 분출물이다. 퇴적암과 화성암의 일부는 변성암이 되었다. 이것들이 묻혀서 지층을 이루거나, 현재 지표면에 남아 있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위에서부터, 자갈, 모래, 그리고 밀가루처럼 부서져 있는 진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토사들이 존재하고 있음이 이런 사실들을 증명한다. 이런 과정은 짧지 않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제까지 발견된 화석들은 생물들이 이런 암석들과 토사가 겹겹이 쌓인 지층들과 지표면이 형성된 뒤에 생활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허정윤
▲저자 허정윤 박사가 자신이 쓴 책 「과학과 신의 전쟁」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메노라
홍수 지질학에 의하면, 어찌 되었든 지구의 기반암 위에는 오늘날 전 지구적 지질을 형성하는 엄청난 양의 토사가 퇴적되어 있었고, 그것이 노아의 홍수 기간에 전부 물에 떠서 부유하다가, 다시 현재 보이는 지층의 순서대로 퇴적되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노아의 홍수를 이렇게 이해하는 홍수 지질학을 현대인들의 과학적 상식으로는 그대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홍수 지질학의 내용은 과학적으로 오히려 많은 의문들을 야기하기 때문이다(더 상세한 논의는 지면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지 못한다면, 노아의 홍수가 오늘날 우리가 전 세계적으로 보고 있는 지질학적 지층 모습들과 정확히 같은 것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무리이다. 노아의 홍수에 근거를 두는 홍수 지질학이 학문적으로 무리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에 의존하는 젊은 우주론은 과학적으로 설 땅이 없어지는 것이다.  

몰텐슨이 지적한 것처럼 대대적인 침식, 진흙 사태, 허리케인, 그리고 화산폭발, 지진, 쓰나미(tsunamis) 등도 지질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다. 그 외에도 지층의 침강 및 융기, 빙하, 운석 충돌, 지각판의 이동, 조산 운동, 인간의 토지개발 등이 있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이에 대해서 달리 기록된 것이 없다. 홍수 지질학은 이런 격변들이 전 지구적으로 노아의 홍수 기간인 1년 동안에만 일어난 것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지구과학은 지각을 변형시키는 이런 격변들이 지구 곳곳에서 국지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었다는 증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문헌에 기록된 것도 사실과 다르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사실을 기록했어도 해석이 사실과 다르다면, 해석이 왜곡된 것이다. 성경에서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는 경우에 해결하는 방법은, 그런 구잘들을 유비적으로 해석하는 길 뿐이다. 그럼에도 몰텐슨은 모든 것들을 노아의 홍수에 쓸어 보내고, 성경에 유일하게 몇 장 기록된 노아의 홍수 기사만이 문자 그대로 역사적 증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없으면 사실 자체가 없었다거나, 일부 기록을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주장은 진실성에 관련된 문제가 제기된다. 홍수 지질학을 바탕으로 하는 젊은 지구론은 증거의 제시와 설명에 있어서 진실하지 않다. 진실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정통적인 기독교의 방법이 아니다.

오랜 우주론은 진화론보다 앞서 나온 것이다. 진화론은 오랜 우주 연대에 의존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생물과 물질의 최초 발생과 그것들이-특히 생물은 자연선택에 의한 변이의 과정을 거쳐-계속 진화한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생물 진화론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으로, 물질 진화에 대해서는 물리학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노아 홍수에 수십억 년의 시간을 쓸어 넣는다고 진화론이 반박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연대를 반대하는 방법으로 진화론을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녁을 잘못 겨냥한 주장이다. 비유하자면 집을 파괴한다고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론의 비판에는 그 이론이 사용하고 있는 이론과 사실, 그리고 논리적 오류를 발견하고, 정확하게 그것을 반박해야 한다.

현대 진화론이 무신론의 근거 이론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면,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유신론의 근거 이론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현대과학의 토대인 열역학 제1법칙은 우리의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영원히 존재하고 있는 우주 에너지의 세계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의 표준 우주론에 의하면 빅뱅은 우주 에너지의 일부가 처음으로 우리 우주의 물질로 전환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 우주에서 빛은 에너지가 물질로, 또는 물질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 우주 에너지가 우리 우주의 물질로 전환된 빅뱅 사건은 첫째 날 창조된 빛의 역사적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빅뱅은 아주 작은 특이점에서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물질적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서 우주 에너지를 우주 물질로 전환하는 창조의 방법으로 사용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과학과 신학의 통섭적 관점에서 성경을 읽어보면, 무신론을 주장하는 현대 진화론을 우리 우주의 창조자가 우주 에너지 세계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이론으로 역이용할 수 있게 된다. 진화론을 빅뱅 이전에서부터 영원히 존재하는 우주 에너지의 세계에까지 확장하면, 그곳에 살아계신 지적 생명체의 존재를 진화론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지적 생명체가 우주 에너지의 세계에서 영원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에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되셨고, 우리 우주를 창조하셨다. 이렇게 진화론의 논리를 확장해버리면 진화론자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논리적 근거가 없어진다. 과학은 결국 하나님의 존재와 그가 창조하신 우주의 법칙을 해명하는 도구이다(필자는 얼마 전에 출판한 『과학과 신의 전쟁』을 통해 진화론 비판과 신의 존재론을 설명했다).

기독교가 진화론 등의 무신론적 주장에 대해서는 그것에 상응하는 과학적 또는 논리적 방법으로 반박해야지, 홍수 지질학을 내세워서 반박해서는 오히려 비웃음만 사는 일이 된다. 현실적으로 젊은 우주론과 홍수 지질학이 기독교에서는 하나의 신학적 견해로 존재할 수는 있어도, 일반 사회에서는 시효가 지난 과거의 이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과학적으로는 이미 폐기된 이론을 자꾸 들먹이면서 사회적 분쟁을 초래한다면, 그것이 기독교에 과연 무슨 이익이 될 것인가?  

*필자가 중요하게 인용한 부분은 진하게 표시했다.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