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몰텐슨의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의 2항에 대한 비판적 검토

테리 몰텐슨
▲테리 몰텐슨의 「수백만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
2항. 출애굽기 20:11절은 창세기 1장을 수십억 년의 연대와 조화시키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하고 있다.

[번역문] *이 번역문은 KACR의 웹사이트에서 인용했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11)

이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안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욤은 계명의 양쪽 부분에서 같이 사용되었다. 만약 하나님이 오랜 여섯 시대(기간) 동안 창조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6일 동안 일하는 것을 의미했다면, 불명확한 시간을 나타내는 3개의 히브리 단어 중 하나를 사용하셔서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문자적으로 하루를 나타내는 유일한 단어를 선택하셨고, 유대인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했다. (그 단어가 수천만 년의 시간을 나타낸다는 생각은 19세기 초까지 생겨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날-시대 이론이나, 골격가설거부되어야만 한다. 또한 6일 이전에 수십억 년이 있었다는 간격이론이나 다른 시도들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in six days)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문자 그대로의 엿새 동안에 모든 것을 만드셨고, 첫째 날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비판적 검토]

번역자는 원문에 없는 성경 구절까지 친절하게 인용해놓고 있다. 어쨌든 몰텐슨은 이 항에서 출 20:11의 구절이 6일 창조설과 6천년설을 지지한다고 그의 문자적 성경해석법에 따라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창조기사를 몰텐슨의 방식에 따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첫째 날에 하신 일은 흑암에서 빛을 창조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첫째 날 욤에는 낮만 있고, 밤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이 흑암을 창조했다는 기록이 없고, 흑암이 언제부터 존재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렇다면 태초에 천지 창조는 흑암에서 시작되었거나, 아니면 흑암이 태초의 어느 순간에 창조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실 성경에는 기록된 것보다 기록되지 않은 일들이 훨씬 많다. 젊은 우주론자들이 욤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문자적 해석을 주장하면서도 흑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넘어가버린다. 젊은 우주론자들이 어떤 것들은 문자적으로 기록되었음에도 언급조차 하지 않고, 또 어떤 것들은 기록되지도 않았음에도 문맥의 흐름을 왜곡하면서까지 무리하게 해석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그런 해석법이라면, 의문에 의문이 증폭될 수 있다. 하나님이 그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은 과연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나 닮았다는 말인가?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분(요5:17)이신데, 하나님께서 6천 년 전에는 날마다 무얼 하셨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은 양들이고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했는데, 인간이 양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문자 그대로의 방법에 따라 대답해야 하는가? 성경을 획일적으로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와 같이 부자연스러운 질문을 초래하거나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성경은 일반적인 교과서나 백과사전이 아니다. 자연과학을 가르치는 책은 더욱 아니다. 젊은 우주론은 성경에 분명한 문자적 근거도 없이 6일 창조설과 우주연대 6천년설을 주장하여 하나님의 창조 사건에 오히려 의문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성경에서 문자로 기록되지 아니한 것에 대해서는 결코 추정해서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성경 전체를 문자 그대로의 해석 방법에 의존한다면, 성경은 그야말로 동화집보다 우스꽝스러운 책으로 전락하게 된다. 성경에 대한 유비적 해석법은 이런 난점들을 해소하기 위하여 초기 기독교에서부터 사용된 것이다.

몰텐슨은 "불명확한 시간을 나타내는 3개의 히브리 단어"가 따로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시대의 히브리어는 어휘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몰텐슨은 히브리어 성경에서 욤이라는 단어 하나가 낮의 시간, 낮의 특정한 시간, 24시간, 그리고 24시간보다 긴 특정한 시간이라는 4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에서 4가지 의미로 쓰인 욤은 문맥에 따라서 의미를 잘 해석해야 하는 말이다. 창조연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은 욤이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몰텐슨은 욤이라는 "단어가 수천만 년의 시간을 나타낸다는 생각은 19세기 초까지 생겨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 이후에 등장한 오랜 우주론적 성경 해석법은 거부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19세기 초부터 등장한 과학계의 오랜 우주론을 비판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인간의 지적 활동과 시대의 발전을 부정하고 문자적 성경 해석에만 매달려 살자는 것과 같은 주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몰텐슨의 주장이 그런 식으로 정당화된다면, 인간은 19세기 이전의 수준에서 지적 활동을 멈추어야 하고, 과학의 발전이 이룩한 현대적 문명사회를 거부해야 한다는 말인가?. 로마 가톨릭교회가 그런 방법으로 지동설의 진리와 과학의 발전을 막을 수 있었던가?    

허정윤
▲허정윤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과학적 오랜 지구론은 뉴턴(Isaac Newton, 1643-1726)이 처음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구가 불덩어리에서 시작되어서 식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뉴턴은 지구 크기의 쇳덩어리가 냉각되는 시간을 추정해서 지구의 나이가 약 5만년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과학이 발전하면서 지구의 나이는 여러 차례 수정되었다. 현재 지구의 나이가 약 46억년이라는 주장은 우라늄-납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을 사용하여 운석과 월석, 그리고 지구의 암석 등을 측정한 결과이다. 그동안에 성경 해석법도 발전하면서 지구의 나이에 대한 견해도 여러 가지가 등장했다. 새로운 사실과 방법들이 발견되면 이론과 해석은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검토한 미국의 보수적 교단인 APC와 OPC에서는 현재 창조연대에 대한 해석법으로 4가지 또는 5가지를 각각 공인하고 있r, 우리나라에서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두에서 이미 밝혀 두었다. 여기서는 그것들과 몰텐슨이 거부한다고 선언한 것들을 비교해서 검토해보기로 한다.

몰텐슨은 24시간 달력일(calendar day) 해석을 근거로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는 설이 유일한 성경적 진리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우리나라 보수적 교단과 신학계에서는 6일 창조의 하루가 24시간보다 긴 시간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6,000년보다 오랜 나이의 우주론을 인정하는 유비적 해석, 날-시대 해석, 골격가설(이것은 틀이론, 구조가설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등을 모두 가능한 성경 해석법으로 공인하고 있다. 다만 간격이론 등에 대해서는 공인하지 않고 있다. 간격이론 등은 창세기 1장 2절과 3절 이하의 사이에 긴 시간적 간격이 있었고, 1장의 창조와 2장 에덴동산에서의 창조를 별개로 보는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론적 방법의 창조를 인정하는 유신진화론 등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언급되지 아니한 점진적 창조론도 비슷한 이유로 공인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보수적 교단과 신학계에서는 공인하는 것들과 거부하는 것들을 구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텐슨과 같은 젊은 우주론자들은 달력일 해석을 제외한 나머지 공인된 견해들마저 모두 거부하고 있다.

창조기사에 대한 가장 보수적인 성경 해석은 유비적 해석법을 적용하여 창조 6일을 안식일까지 묶어서 7일 한 주간 제도의 모형으로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은 유대인을 위한 기록이다. 하나님의 십계명 제정과 유대인을 선민으로 만드는 과정,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면서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유대인이 율법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처벌하거나 속죄하는 방법 등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출애굽기 20장 8-11절에서는 제7일 안식일을 포함하는 주간(週間) 제도의 율법은 하나님의 창조 주간을 모형으로 제정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에 대한 유비적 해석 방법은 하나님의 시간이 인간의 시간과 같지 않다는 겸손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유비적 해석 방법은 하나님의 창조 주간에 대해 각 욤의 길이를 따지지 않지만, 욤이 24시간의 하루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 유비적 해석법은 6일 동안 창조의 일을 하신 하나님이 제7일에 안식하셨고, 이를 모형으로 인간들도 6일 동안 일을 하고 제7일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으니, 문자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천지 창조의 일을 처음 시작한 때는 성경에 쓰인 문자 그대로 '태초'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 '태초'가 6,000년 전인지, 또는 그보다 수십억년 전인지에 대해 굳이 논쟁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 우주의 나이는 교리에 절대적인 요소가 아닌 아디아포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태초'는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천지 창조와 동시에 시작된 우주 시간의 출발점이다. 인간은 우주의 시간 안에 존재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초월적으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두 가지 시간을 그의 뜻대로 사용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러나 인간은 두 가지 시간의 질적 차이를 아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또는 정답을 알 수 없는 '태초'의 시간을 그 말에 그대로 묻어 두면 되는 것이지, 억지로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기독교는 우주의 나이에 대해 괜한 논쟁을 할 것이 아니라, 시간을 하나의 물리적 현상으로 연구하는 현대과학에 맡겨두고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우주론자들이 현대 과학계에 맞서 24시간 6일 창조론과 우주의 나이 6천년설을 기독교의 근본 교리처럼 완고하게 주장하는 것은 기독교 안에서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시대착오적이라는 경멸과 적대감만 초래하는 일일 뿐이다.

*필자가 중요하게 인용한 부분은 진하게 표시했다.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