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로가 너무 커서 또 선교합니다”

LA=강태광 편집위원 기자 입력 : 2018.05.07 11:23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3)] 예은교회 곽건섭 담임목사

곽건섭
▲곽건섭 목사
새벽기도를 막 마친 이른 아침에 곽건섭 목사를 만났다. 동이 트기 전 훨씬 전인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평생을 목회자로 살아온 삶의 이력이 짧은 만남에서도 드러났다. 가벼운 식사 후 곽건섭 목사의 삶과 사역 그리고 중국을 향한 열정을 들었다. 중국 선교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목소리에 힘이 생기고 얼굴이 빛났다. 중국 선교로 행복하다는 곽 목사의 평소 고백이 거짓이 아니었다. 곽건섭 목사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중국 선교 동력가다. 자신이 선교 현장을 누비기도 하지만 수많은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 젊은이들을 중국 선교 현장으로 인도하고 있다.

할아버지의 결단과 믿음의 유산

곽건섭 목사는 종교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원래 독실한 불자였다. 절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라는 선교사의 권면을 듣고 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다. 선교사의 인도를 따라 절을 개조하여 교회를 만들고 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앙인이 된다. 전통적 신앙과 자신의 삶의 기반인 불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고 새로운 신앙의 길을 걸었던 결단의 사람이었다.

곽 목사는 이러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인도와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신앙 생활을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나 영적 체험은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신실한 신앙인으로 자라게 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크게 앓으며 고생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치유를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헌신을 결심한다. 자연스럽게 신학교에 진학하여 사역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도미와 유학으로 시작된 훈련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 총신대학과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는 큰 소용돌이를 경험한다. 소위 합동측의 주류와 비주류의 분열 시기였다. 교단과 신학교의 분리와 갈등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수많은 젊은 신학도들에게 갈등과 고민을 남겼다. 같은 강의실에서 공부하던 친구들이 신대원으로 진학하면서 총신과 합신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고통의 현장이었다. 당시 의식 있는 많은 젊은 신학도들이 신학교를 떠나거나 유학길에 올랐다.

이 격동의 세월 속에 신학생 곽건섭도 고민이 많았다. 그 고민을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지금의 사모다. 가족들은 이미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좋은 결혼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해서 함께 미국으로 가려는 상황이었다. 이런 자매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그래서 유학생같은 이민자, 이민자같은 유학생 생활을 하게 된다. 호락호락 하지 않았지만 은혜의 세월이었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혜다. 찬양대 지휘자로, 부교역자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섬겼던 젊은 날의 모든 일들은 감사로 묶는다. 행복했다고 하기엔 너무 고단했고, 아팠다고 하기엔 받은 은혜 가득한 축복의 세월이었다. 사역의 훈련과 신학의 수련이 끝날 즈음에 곽 목사는 예은교회를 개척한다. 교회를 개척하며 세운 비전이 선교에 헌신하는 교회였다. 소위 선교에 올인하는 교회를 세운 것이다.

중국 선교에 헌신한 목회

곽건섭 목사는 1년에 두 번 중국을 방문한다. 선교 기금을 준비하기 위해 바자회도 하고, 거라지 세일도 하면서 선교 여행을 준비한다. 1년에 두 번의 중국 선교 여행은 결코 쉽지 않다. 준비기간, 정리기간 그리고 3~4주의 중국 체류기간을 고려하면 중국 선교에 올인하는 목회다. 많은 교회들이 교회 프로그램 중에 하나로 혹은 교회 선교기관의 사역으로 단기 선교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담임목회자와 전 교회가 매년 2회씩이나 중국을 오가는 선교 여행을 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곽건섭 목사가 이끄는 '올림픽 월드미션'이 세운 중국 '올림픽 성서 대학'은 14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200여 명 졸업생 중에 목사 안수를 받은 사역자가 12명이다. 졸업생 목회자들과 '올림픽 월드미션'의 선교 비전에 동의하는 목회자들 총 60여 명이 긴밀히 협력한다. 이들의 동역은 거의 교단에 가까운 연합체다. 개 교회 혹은 선교사 개인의 열정과 노력에 의존하는 선교는 지속성과 일관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반면 지속적인 관리와 후원으로 선교 현장을 누비는 올림필 월드미션은 시간이 흐를수록 결실이 있다.

20여 년의 중국 선교가 그리 만만치 않았다. 너무 힘들어 꾀가 나기도 하고 스스로 타협점을 찾은 적도 있었다. 사람도 물질도 부족해서 "하나님! 이만큼 했으면 다 했지 않습니까?" 하는 마음으로 중국 선교에 대한 열정에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기적적으로 채우시고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중국을 향하게 되었다.

간증거리가 많지만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1년에 수만 불을 지출하는 선교비가 늘 부담이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여서 포기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채워 주셨다. 2010년 어느 노숙자가 교회 건물에 방화를 해서 보험회사가 27만 불을 보상해 주었다. 간단한 불에 대한 예상 밖의 큰 보상이었다. 또 2012년에는 하수도의 역류로 교회 건물에 손상이 있었는데 시청의 실수로 인정되어 배상을 35만 불 받았다. 큰 도움이 되었다. 놀랍게도 두 번 다 7월의 선교를 준비하는 6월에 보상비를 받았다.

선교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

곽건섭 목사의 선교 현장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하다.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동역자들이다. 곽건섭 목사의 선교 열정에 맞장구를 치는 동역자가 중국에도 있다. 상세히 소개할 수는 없지만 중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복음의 열정도 아름다운 중국 동역자다. 그는 중국의 복음화는 물론 북한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가진 복음의 사람이다. 뜨거운 마음으로 중국을 섬기는 곽건섭 목사에게 그의 동역은 큰 위로요 큰 은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두 번째 위로는 선교 현장에서 젊은 사역자들을 세우는 것이다. 현재 한국 교회는 젊은이들이 없고 그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도 없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양육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선교 현장에서 젊은이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한다. 선교 현장에서 다듬어진 젊은이들이 차세대 사역자로 성장하고 있다. 차세대를 세우는 기쁨과 보람이 있다.

선교 사역에 주시는 세 번째 위로는 교회 성도들의 동역이다. 목회자가 선교에 올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은교회 성도들은 다르다. 곽건섭 목사의 선교 동역자들이다. 열정적으로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선교에 올인한 목회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증거다.

네 번째 위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선교 현장에는 지금도 기사와 이적이 풍성하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런 체험들을 모아 엮은 책이 '하나님의 서커스단'이라는 책이다. 선교 현장에서 생생하게 체험한 기사와 이적들을 담은 책이다. 중국 선교의 실제와 현장 경험을 나누는 중국 선교의 길잡이다. 이런 체험들을 주시니 만만치 않지만 선교의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아침을 가득채운 인터뷰 시간 내내 곽 목사는 흥분해 있었다. 중국 선교를 말하는 곽 목사는 힘이 넘쳤다. 부럽도록 행복한 모습이었다. 선교 현장의 기쁨이 기자에게도 전달되어 기자의 아침도 행복한 아침이었다. 행복한 사역자를 보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곽건섭 목사는 금년 7월의 선교 여행을 준비한단다. 준비하는 7월의 선교 여행을 설명하는 곽 목사의 눈은 또 빛나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진 기자의 입에는 사도행전 20장 2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말씀이 암송되고 있었다. 기자가 곽 목사의 선교적 간증과 열정을 들으며 마음으로 듣는 주님의 음성이리라. 선교적 열정으로 달구어진 이 아침은 참으로 찬란한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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