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아들러, 개인 책임과 삶의 의미, 낮은 자들에게 관심”

이대웅 기자 입력 : 2018.05.07 10:07

‘칼 융의 분석심리학과 상담치료’ 66회 기고 마무리한 김충렬 박사(中)

김충렬
▲김충렬 박사가 강의하고 있다.
"현대 심리학의 개척자로 알려지는 아들러는 상담치료뿐 아니라, 의식분석 학문에서 인격연구의 특성을 발전시킨 인물입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의 성적 충동보다는 사회적 충동을 중요시해 목표지향적인 삶을 강조합니다. 그는 프로이트와 달리 무의식보다는 의식을 강조해 개인의 책임과 삶의 의미 등에 관심을 가져 개인심리학을 주창하여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아들러의 심리학은 정신의 수동적 특성에 머무르지 않고 능동성을 일깨워, 심리학의 주관적 접근의 선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본지 칼럼니스트인 김충렬 박사(전 한일장신대 교수, 전 한국실천신학회 회장)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의학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의 분석심리학과 상담치료에 대한 66차례의 기고를 마무리했다.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 '칼 융의 정신구조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박사의 기고는 매회 A4 10여장으로, 두툼한 책 한 권은 너끈히 나올 상당한 분량이었다. 전북 전주 한일장신대 상담심리학 교수를 은퇴하고 한국상담치료연구소 소장으로 서울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다시 시작한 김 교수가 프로이트에 이어 들려주는 아들러 이야기.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잘 들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 이후 국내에도 최근 많이 알려진 아들러는 어떤 인물인가요.

"아들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생애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들러의 생애는 개인심리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아들러의 생애는 개인심리학이 탄생해 성장을 거듭해 온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기 때문에, 그의 생애는 곧 개인심리학의 역사가 됩니다.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B. Adler)는 1870년 2월 7일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에서 태어나 53세로 사망했습니다. 아들러는 프로이트(S. Freud)와 같이 유태인으로서 줄곧 빈에서 정신과 의사의 삶을 살았으며, 1937년 5월 28일 스코틀랜드 에버딘에서 강연를 앞두고 산책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비교적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의 이론은 여러 학파, 특히 사회학적 관점에서 정신분석을 하는 학파들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들러의 치료이론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아들러의 치료이론은 그의 심리학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와는 달리 개인의 성격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고, 개인 성격과 사회문화적 요인들과의 관계성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특이성이 있습니다.

개인의 열등감 요인은 성격 형성에 중요한 관점으로서 그의 이론의 대표적 특징으로 꼽힙니다. 이는 사회학적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개인의 성격과 행동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아들러의 이론이 자신의 성장 과정과 관련이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아들러의 이론이 자신의 성장 과정과 관련이 있다니 흥미롭습니다.

"아들러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아들러는 5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형제와의 갈등, 병약함, 자신의 열등감 등이 경험되는 비교적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신체적으로 병약했기 때문에, 건강한 형에게 많은 열등감을 느끼며 성장합니다. 그가 4살이었을 때는 심한 폐렴으로 거의 죽을 뻔한 고비도 넘겼습니다. 이때 그는 벌써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는 형제들 중 1명이 어려서 죽는 것을 일찍이 경험하였습니다. 이로써 아들러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는 등 질병과 관련을 갖는 생애로 서서히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병약했다는 것이 아들러의 이론 탄생과 어떤 관련이 있나요.

"그렇습니다. 아들러의 아동기는 투쟁기로서 특징됩니다. 병약한 신체적 조건에다 심리적인 갈등이 그를 짓누른 시절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맏이에게 열등감과 질투를 느끼면서 어려서부터 심리적 갈등을 경험하며 성장합니다. 여러 면에서 아들러에게 있어 맏이보다 뒤떨어지는 점은, 맏이가 부러움의 대상으로 자리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약한 아들러에게 유달리 관심을 보이는 등의 사랑을 주었으나,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는 어머니의 관심이 동생에게로 향하는 외로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초기 몇 년은 아동기의 유약함과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으로 일관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이처럼 형제들 간에 경험되는 여러 심리적 성격이 후에 아들러의 이론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김충렬
▲한일장신대 교수 시절 박사과정 학생들과 수업을 하고 있는 김충렬 박사.
-구체적으로 어떤 특이점이 그의 이론에 작용했을까요.

"아들러의 어린 시절에는 부모와의 관계가 특이했습니다. 아버지와는 신뢰 관계가 있었으나 어머니와 별로 친하지 않는 등, 부모와 좋은 관계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아들러는 초기 너무나 많이 병고를 치루는 등 병약했기에, 어머니의 응석받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동생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되면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부정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아들러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청소년기 학교성적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는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우수한 학생이 아니어서 구두수선공 밖에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당시 선생님의 아들러의 평가는 아들러의 성적과 성격, 그리고 생활정도를 종합하여 내린 평가였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평가에 대해, 아들러는 어린 마음이지만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후 아들러는 마음을 굳게 하고 노력해 마침내 학급 수석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아들러의 치료기법은 어떤가요.

"아들러의 치료법은 내담자의 사회적 본성을 중요시합니다. 프로이트와 달리 신경증 집단의 정신적 측면, 즉 개인의 정신역동에 초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특히 아들러의 내담자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에 있는 일반인에게 관심을 가진 것으로, 프로이트의 부유한 내담자들과 비교됩니다. 그는 노동자에게 정신분석을 실시했고, 삶의 위기에 있는 다양한 사람을 돕기 위해 자신의 심리학 개념을 실제적인 방법으로 구체화시켜 나갔습니다.

아들러가 사회에서 비교적 낮은 일반인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인간을 보는 그의 시각과 관련성이 있습니다. 아들러는 인간 행동이 지닌 사회적 본성을 중요시, 집단 속에 있는 개인적인 내담자를 상담하는 것에 중점을 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집단적 측면을 모두 경시하거나 도외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에 앞서 부모와 선생, 성인, 아동들과 면접함으로써 개인의 생생한 설명으로 연결시키거나 이해시키는데 노력했습니다. 이런 아들러의 치료방법은 결국 사회 속에서의 개인성을 지향하는 것으로, 자신의 사회적 관심과 교육자적 자질을 결합하는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아들러의 치료 이론을 개인심리학이라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이론은 어떤 동기에서 탄생했을까요.

"개인심리학의 탄생은 초기 정신분석학과 관련이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 체계를 발전시키고 있을 무렵, 정신분석적 접근에 관심을 가진 여러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프로이트의 방법에 원칙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각자의 방법으로 인간의 정신을 연구해 나갔습니다. 아들러와 칼 융(C. G. Jung)이 그 위치를 차지합니다.

아들러와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가 아니라, 프로이트의 협력자이자 정신분석의 동료요 공동연구자였습니다. 후일 이들은 각자의 견해 차이로 서로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성적 억압이 신경증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데 비해, 아들러와 융은 이런 프로이트의 성욕과 생물학적 결정론에 기초한 개념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아들러는 신경을 이해하는데도 프로이트와 다른 견해를 갖게 됩니다. 그는 신경증의 원인을 개인이 성취하고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노력과 관련돼 있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아들러는 비정상적 성격에 대한 것보다,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두고 신경증의 이론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프로이트, 아들러, 융 3인의 9년간 공동연구가 있었습니다. 이후 아들러는 자신의 학설을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ie)'이라 이름짓게 되었습니다."

-아들러에 대해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오늘날 아들러의 이론은 학교 등 교육현장에서 각광을 받으며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확산은 상담을 담당할 전문가의 교육에 초점을 맞춘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부모와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원리를 적용할 것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아동을 상담하는데 자신의 이론을 적용할 것을 강의하고, 시범을 보이는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임했던 결과입니다.

항상 분주한 계획으로 일하는 그를 보고 친구들은 휴식하기를 충고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음악을 좋아하여 노래하고 음악을 감상하면서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 하는 것이 휴식 방법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버딘에서 강연을 앞두고 산책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사망한 아들러는, 부지런히 일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더 좋은 치료이론이 발표됐으리라는 아쉬움을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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