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이 기독교적 진리인가?(2)

입력 : 2018.05.02 14:48

테리 몰텐슨의 「수백만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의 1항에 대한 비판적 검토

테리 몰텐슨
▲테리 몰텐슨의 「수백만 년의 연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7 가지 이유」
1항. 성경은 하나님이 수천 년 전에 문자 그대로 하루가 24시간인 6일 동안에 창조하셨음을 가르치고 있다. *이 번역문은 KACR의 웹사이트에서 인용했다.

[번역문]

창세기 1장에서 '날(day)'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욤(yom)'이다. 구약성경에서 욤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의 하루(a literal day)를 의미하는 것으로 거의 대부분 사용되었다. 그리고 하루를 의미하지 않을 때는 문맥 속에서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의 문맥은 창세기의 날들이 문자 그대로의 날이었음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첫째, 성경에서 최초로 시간으로서 사용된 단어 욤은(창세기 1:4-5) 두 가지 문자적 의미로서, 즉 빛/어두움 주기에서 빛 부분(낮)과 전체 빛/어두움의 주기(첫째 날)로 정의되어 있다. 둘째, 욤은 저녁(evening)과 아침(morning)이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이 두 단어는 구약성경 모든 곳에서 함께 또는 각각, 그리고 욤이라는 단어와 함께 또는 없이 문맥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항상 문자 그대로의 하루 중에서 문자 그대로의 저녁과 아침을 의미하고 있다. 셋째, 욤은 숫자로 수식되어 있다. 즉,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등. 이러한 사용은 구약성경의 모든 곳에서 문자적인 날들을 가리킨다. 넷째, 욤은 창세기 1:14절에서 하늘의 천체들과 관련하여 문자 그대로 정의되고 있다.

이들 창조의 날들은 단지 대략 6,000년 전에 일어났었다는 것은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여기에는 마태복음 1장의 간략하게 쓰여진 족보와는 분명히 다른, 매우 상세한 연대기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와 성경의 다른 연대기적 정보들로부터 분명해진다.

[비판적 검토]

몰텐슨은 지구의 나이 6천년설과 창조 6일의 하루가 24시간이라는 주장이 창세기의 '욤(yom)'의 해석과 아담의 족보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창조를 하셨다고 말하고 있을 뿐, 창조의 시기가 6,000년 전이고, '욤'이 24시간이라고 명확하게 기록된 부분이 없다. 그럼에도 일부 기독교인들은 몰텐슨과 같이 성경 인물들의 족보와 기타 연대기적 정보에 근거하여 지구의 나이, 곧 우주의 창조연대를 6,000년으로 해석하는 젊은 우주론을 주장하고 있다. 젊은 우주론은 정상적인 기독교인들이 그냥 덮어둘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있다. 그 이유는 젊은 우주론이 하나의 성경 해석이라는 차원을 넘어 기독교의 근본 진리처럼 주장되면서, 기독교와 사회에 갈등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욤은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태음력에서 하루를 계산하는 단위이다. 창세기의 욤은 기본적으로 유대인의 하루를 의미한다. 그것은 해가 지는 때부터 시작해서 아침에 다시 뜬 해가 낮을 보내고 다시 지는 때까지를 기준으로 하여 12시간으로 등분한다. 이에 비해 현대의 태양력은 하늘의 태양이 지구의 수평선에 직각으로 떠 있는 때를 정오로 하고, 지구가 한 바퀴 자전하는 시간을 24 등분하여 하루로 계산한다. 하루의 시작점인 0시는 정오로부터 12시간 전, 즉 태양이 지구의 정반대편에 떠있을 때이다. 이에 따라 곳곳마다 시간이 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므로 경도(經度) 0도인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세계표준시간(GMT: Greenwich mean time)을 정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영국 국교회의 유명한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1581-1656) 주교는 율리우스 태양력(Julian Calendar)에 따라 하나님의 창조는 주전 4004년 10월 23일 일요일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다. 어셔 주교의 우주론적 관점은 창조의 첫째 날에 지구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지구 위에 빛이 비췄다고 보고 있다. 그 빛은 태양의 빛이다.

젊은 우주론은 어셔 주교의 우주론을 따르는 것으로 현대인들의 과학적 우주론 지식과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다. 그래서 몰텐슨을 비롯한 젊은 우주론자들은 과학계의 오랜 우주론을 전면 부정하면서도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것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을 주장하는 젊은 우주론의 실상이다. 그러나 창세기 1:14에 의하면 하늘의 광명체들은 제4일에 창조되었다. 이어진 15절에서는 광명체들이 땅을 비추는 것이며, 16절에서는 큰 광명체가 낮을 주관하고 작은 광명체가 밤을 주관하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이 해와 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가? 별들은 그 다음에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젊은 우주론이 기독교의 성경적 진리처럼 주장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우주론의 근거가 되는 '욤'의 해석과 성경 인물들의 족보에 대해 검토해보기로 한다.

첫째, 몰텐슨과 같이 '욤'을 오늘날의 24시간 '하루'라는 문자적 의미로 해석하는 문제에 내포된 오류를 살펴보자. 하루는 기본적으로 24시간이 소요되는 지구의 자전과 햇빛이 비추는 시간에 따라서 나타나는 낮과 밤의 주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창세기의 '욤'이라는 말을 문자적으로만 본다면, 그 말 안에 담긴 실질적인 내용이 날짜별로 너무 다르다. 첫째 날은 빛이 창조되면서 시작되었다. 오랜 우주론에서는 이 빛이 하나님이 우주 창조의 방법으로 사용하신 빅뱅의 과정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젊은 우주론은 창 1: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는 구절이 빛의 창조가 있기 전에 이미 존재하는 지구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자 그대로'의 해석법에 따르면 이 구절들은 빛이 창조된 첫째 날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첫째 욤은 저녁이 없이 낮만으로 하루가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빛의 근원인 해와 달과 별과 같은 광명체들은 제4일에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같은 '욤'이라는 말로 표현되었지만, 셋째 욤까지는 태양과 달이 지고 뜨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일이 실질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던 욤이다. 그렇다면 제3일까지의 '욤'과 제4일 이후의 '욤'이 문자적으로 동일한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결국 '욤'이라는 말이 24시간이라는 하나의 의미만 가졌다고 보는 문자적 해석에 따르면 앞의 3일 동안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는 수식어는 사실과 틀린 말이 된다.

그리고 성경에는 '욤'을 24시간 하루보다 긴 시간의 의미를 가졌다고 기록한 곳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고 경고하는 구절이다.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는 '욤'의 성경적 의미를 무시하고 창조 6일을 무조건 24시간 '욤'으로 보는 해석은 젊은 우주론자들의 일방적인 견해일 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올바른 성경해석은 창조 6일간의 '욤'에 대해서 똑 같은 24시간 하루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서 굳이 의미를 왜곡하면서까지 억지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성경의 애매한 부분을 읽을 때 분명히 알게 될 때까지 더욱 깊이 연구하거나, 아니면 성령의 조명을 기다리는 겸손의 자세이다.

허정윤
▲허정윤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둘째, 아담의 족보 등을 연대기적 자료로 사용하여 창조연대를 계산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구약성경에 기록된 아담의 족보와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족보들은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성경의 기록에 대해 "문자 그대로"(literal)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는다는 무오성을 주장한다면,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서로 충돌하는 구절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성경의 어떤 부분은 맞고, 어떤 부분은 틀리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되지 않는가? 성경은 기록된 시기의 언어적 의미에 따라 쓰인 것이다. 현대신학은 성경의 무오성의 교리에 대해 창조와 타락과 구원의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지, 유대인들이 율법서를 해석하는 식의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았다는 문자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경의 원본이 남아 있지 않은 오늘날 서로 간에 차이가 나는 사본들과 번역본들을 가지고서는 어느 누구도 당시의 언어적 의미와 성경 저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격한 율법 해석법을 따르는 정통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과는 달리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만인제사장권을 교리로 하는 종교개혁의 출발점은 로마가톨릭 교황의 독단적 성경 해석권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의 종교개혁 정신은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지, 해석의 독점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진리를 찾는 올바른 방법은 추상적인 말 하나의 꼬리를 잡고 헤맬 것이 아니라, 거시적 문맥을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서 해석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진리는 있을 수 없다.

만약 몰텐슨과 같이 "문자 그대로"의 성경해석 방법을 따른다면, 6,000년설 주장의 근거가 되는 족보 자료의 문제에 대해서도 창세기의 것은 옳은 것이고 신약성경의 것은 틀린 것이라는 판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문자 그대로" 식으로만 해석하면, 서로 모순되는 구절들이 적지 않다. 몰텐슨이 주장하는 것처럼 젊은 우주론에서 주장하는 24시간 6일 창조설과 우주연대 6천년설은 기독교에서 인정되는 하나의 성경 해석 방법이고. 창조론의 하나로도 인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의 나이에 대해 6,000년 설을 주장하는 문자주의적 젊은 우주론은 성경 해석을 모순에 빠지게 만들고, 또한 기독교와 과학계를 비롯한 일반인들과의 사이에 불필요한 분쟁을 초래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우주의 나이 문제는 기독교에서 교리로 다룰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선교에도 아무런 유익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기독교인들이 지구의 나이 6,000년 설로 사회적 분쟁까지 야기하는 행동을 스스로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중요하게 인용한 부분은 진하게 표시했다.

허정윤(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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