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하는 기독교강요
처음 시작하는 기독교강요

김태희 | 세움북스 | 304쪽 | 16,000원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칼빈의 저술 제목이다. 이것을 우리 번역자들이 <기독교 강요>라고 합의했다. 강요(綱要)는 강요(强要)가 아니라 대요(大要)이다.

필자는 'Institutio'를 '훈련'이라 표현하고 싶다. '기독교 강요 요약'을 만들고 싶은 학생으로 기독교강요 연구 도서를 보니 매우 기쁘고 더욱 도전이 된다. 1559년판 칼빈의 <기독교강요>는 수많은 요약집들이 국내와 국외에서 출판되고 있다. 필자는 기독교강요를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한 훈련교범'으로 생각하고 있다.   

<처음 시작하는 기독교강요>는 입문자를 위한 핵심 정리이다. 입문자를 위한 것이지만, 입문자를 교육할 사역자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교회에서 <기독교 강요>를 교육할 수 있다면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저자는 소요리문답을 교회 사역에서 교육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기독교 강요>가 쉽지 않고,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기독교강요>는 교회에서 <기독교 강요>를 교육할 수 있는 좋은 교재이다.   

<처음 시작하는 기독교강요>는 저자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배열만 빼고 모든 것을 정리했다. 특이한 것은, 장의 제목을 편집한 것이다. 절의 제목은 편집자들이 넣은 것이다. 그러나 장의 제목은 칼빈이 만든 것인데, 저자는 칼빈이 만든 제목까지 편집했다. 그래서 전체 구도를 매우 간략하게 구성시켰다.

한 예로 기독교강요 3권을 믿음, 성화, 칭의, 기도, 예정, 부활 등으로 간략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도화시켰다. 상당히 도전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정리하면서 자기 체계까지 병합시킨 교안으로 볼 수 있다. 칼빈의 사상에 자기의 사상을 세운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기독교 강요>을 익히면서 '기독교'를 익히고 자기화시킨 것으로,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의도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칼빈
▲제네바 빠스띠옹 공원에 세워진 종교개혁 400주년 기념비. 왼쪽부터 파렐, 칼빈, 베자, 낙스. ⓒ크리스천투데이 DB
<처음 시작하는 기독교강요>가 의도한 '입문자', '쉬운'은 이 저술의 의도를 충분하게 형성시켰다. 그런데 그 가치에 너무나 치중했다는 우려가 있다. 모두를 얻기가 불가능하다.

저자의 의도는 이 저술을 통해 <기독교 강요>와 친숙해지고, <기독교 강요>를 스스로 읽으며 연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기독교강요>을 읽는다면 저자의 목적은 충분하게 성취할 것 같다. '가벼움'이 주는 유익이다.

저자는 <기독교강요>를 무겁고 부담으로 인식한 것 같고, 그래서 가벼움을 주기 위해 엄청난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노고로 독자는 매우 쉽게 <기독교 강요>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더 다양한 <기독교 강요> 다이제스트(digest)가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김태희의 <처음 시작하는 기독교강요>는 세움북스에서 출판한 장수민의 <칼빈의 기독교강요 완전분석>, 라은성 박사의 <이것이 기독교강요다(PTL)>와 비교한다면 그 가벼움과 무거움을 쉽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시작과 마지막이 되는 <기독교 강요> 연구서가 있다는 것이 매우 좋다.

고경태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광주 주님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