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남강은 조국의 산이 메마르고 사람들의 혈색이 없는 것을 탄식했다. 한 번은 어느 아이가 소를 끌고 그의 앞을 지나간 일이 있었다. 소도 말랐고 끌고 가는 아이도 혈색이 없었다.

"아, 우리 조선은 소까지도 저렇게 말랐구나."

그의 말엔 이 땅과 백성과 이 땅의 짐승과 벌레까지도 불쌍히 생각하는 감정이 어리어 있었다. 그가 민족을 사랑한 것은 단순한 내 민족이기 때문이 아니고 민족의 고난 때문이었다.

그는 이 민족에게 고난이 오는 근본 원인은 힘이 약한 데 있음을 알았다. 힘을 기르는 일이 교육과 산업인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남의 힘을 빌리거나 총칼만 갖고는 한때의 승리는 거둘지언정 민족의 참된 힘을 기르는 일이 못 된다.

남강의 민족운동은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덕스럽고 밝고 힘차게 만드는 운동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민족운동은 민족의 광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그때부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런 어느 날 안창호가 망명 길에 오르면서 남강에게 당부를 했다.

"이제 우리 신민회의 국내활동은 선생님께서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어려움이 많겠지만 아무래도 선생님이 적임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흠, 부족하긴 하지만 이런 형편에서 내가 어찌 피할 수 있겠소. 몸조심이나 하시오."

남강은 대답하긴 했지만 도산이 없는 신민회 활동이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동안 신민회 활동은 도산이 주관해 왔는데 갑자기 다른 지도자가 나선다면 예전처럼 활발하지는 못할 것이라 남강은 염려가 앞섰다. 그러나 그는 곧 결심했다.

'아무리 여건이 어렵다 하더라도 나까지 실망하면 안 된다. 내가 원하든 않하지 않든 간에 신민회 활동은 이 시대에 꼭 있어야 하고 이미 나에게 큰 사명이 맡겨지지 않았는가.'

남강은 신민회 사업의 하나로 평양에 태극서관을 세웠다. 우리 백성들에게 필요한 서적을 공급하는 통로가 되는 동시에, 편집부와 인쇄시설까지 갖추고 각종 간행물과 책을 출판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학생들이 쓸 교재와 학용품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태극서관은 신민회 회원들의 연락처나 집회 장소 역할도 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와 <소년>지의 평양 판매지국도 태극서관 안에 있었다. 영리 추구보다는 신지식을 보급하기 위해 세워진 기관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일본은 결국 우리나라를 한입에 집어삼키고 말았다.

오늘의 참변은 예상된 일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조선 침탈 야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1905년 11월 9일 특명전권대사로서 한국으로 부임했었다. 그리고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를 뒤에서 조종하여 대한제국을 허수아비 꼴로 만들려는 흉계를 꾸몄다. 그런 다음 일본 군사를 이끌고 경운궁으로 들어갔다.

그는 고종 임금과 국무대신들을 총칼로 위협해 을사늑약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고종은 끝까지 거부했으나, 이토 히로부미는 일단 외부대신 박제순의 직인을 가져와 조약문서에 찍게끔 했다.

회의장에서 몇몇 대신은 그 불평등한 조약에 반대했지만,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등은 고종 임금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조약 체결에 찬성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8명의 대신 가운데 5명이 찬성하였으므로 조약이 가결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이제 대한제국은 명목상으로는 국가이지만 통치권을 모두 빼앗겨 사실상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늦가을의 차가운 비가 세찬 바람과 함께 을씨년스럽게 부슬부슬 내렸다. 나라 잃은 백성의 눈물과도 같았다. 그와 달리 을사오적들은 일본으로부터 백작의 작위와 많은 돈을 받고 희희낙락했다.

고종은 "짐을 협박하여 체결한 조약은 엉터리다!"라고 선언하고, 해외에 특사를 보내 알리도록 했다. 그러자 일본은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켰다.

엉터리 조약에 대한 반대운동과 항일투쟁이 전국 각지에서 격렬하게 벌어졌다. 의병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일본 경찰을 공격했다. 일본 군대와 경찰은 총칼을 앞세우곤 마구 쏘고 찔렀다.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 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 발굴과 연구 성과에 도움 받았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