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에서 만난 김충렬 박사.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운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본지 칼럼니스트인 김충렬 박사(전 한일장신대 교수, 전 한국실천신학회 회장)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의학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과 상담치료에 대한 66차례의 기고를 마무리했다.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한국인 최초 '칼 융의 정신구조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 박사의 기고는 매회 A4 10여장으로, 두툼한 책 한 권은 너끈히 나올 상당한 분량이었다. 전북 전주 한일장신대 상담심리학 교수를 은퇴하고 한국상담치료연구소 소장으로 서울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다시 시작한 김 교수를 최근 만났다.

-칼 융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학문적인 연재를 그만하겠다'고 하신 뜻이 무엇인지요.

"칼 융의 치료 이론은 정신치료의 최고봉입니다. 그래서 이번 연재를 통해 제 할 일을 조금이나마 감당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독일에서 한국인 최초로 칼 융의 정신구조론으로 박사학위를 했기에, 융에 대해 알려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었지요. 이제는 마음의 짐을 어느 정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동안 말씀 묵상에 소홀했던 저를 반성하면서, 남은 기간 말씀 묵상에 매진하려 합니다."

-목회경험도 많으신데, 교수와 치료사를 겸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크게는 아니지만, 목회를 17년을 했지요. 경기 부천에서 8년 개척교회를 했고, 독일 유학 10년 중 9년간을 목회와 병행했지요.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는 치료 사역에 집중하려는 마음으로 서울 석촌호수에 상담치료소를 차렸고, 교수와 상담치료를 병행하게 된지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융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칼 융의 이론은 너무 방대해서, 전문가들이나 관심을 가질 만 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프로이트나 아들러가 대체로 많이 알려진 편입니다. 칼 융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 이론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죽 하면 분석가들조차 '융의 이론은 도(道)를 닦는데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이론이 깊지 않으면서 메뉴가 다양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입니다(웃음)."

-그러면 프로이트와 아들러, 그리고 융을 한 번 비교 평가해 주시면 이해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네, 좋습니다. 실제로 칼 융을 이해하려면, 프로이트와 아들러를 거칠 때 훨씬 쉬울 수 있습니다. 이를 개인적으로는 변증법적 원리로 이해합니다. 프로이트를 정(正), 아들러를 반(反), 그리고 융을 합(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치료의 선구자인 프로이트는 생물학적 결정론을 정신의학으로 바꾸었고, 아들러는 그것에 반대해 사회학적 특성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융은 그것을 모두 통합시킬 수 있는 폭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 분은 정신치료 초창기의 중요한 학자인 동시에, 세 분을 잘 모르고 정신치료에 대해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이런 시각에 착안해 프로이트와 아들러, 그리고 융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1856년 5월 6일 프라이베르그(Freiberg)에서 야콥 프로이트와 아말리에 나타우젠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프라이베르그는 모라비아의 작은 매렌(Maeren)의 도시로서 지금은 체코 땅이지만, 당시는 오스트리아에 속해 있었습니다.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Jakob Freud)는 양털판매업에 종사하는 유대인이었고, 어머니 아말리에 나타우젠(Amalie Nathausen)역시 유대인으로서 상업하는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프로이트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데 고투(苦鬪)해 무의식의 존재를 발견했고, 정신치료의 길을 열었습니다. 그의 연구는 비단 정신치료에 머물지 않고, 실제성을 중시하는 여러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쳐 인류의 정신사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정신사의 공헌으로 인해, 그는 오늘날 현대에까지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가 주창한 학설과 이론은 여러 반대와 비판도 있지만, 또 다른 이론과 학문발생을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프로이트의 치료 이론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프로이트의 치료 이론에 대해서는 그의 전집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에 소개된 프로이트의 전집은 원서인 독일어를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프로이트 전집은 15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전집은 ①정신분석강의 ②새로운 정신분석 강의 ③히스테리 연구 ④꿈의 해석 ⑤일상생활의 정신 병리학 ⑥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⑦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⑧꼬마 한스와 도라 ⑨늑대 인간 ⑩정신 병리학의 문제들 ⑪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⑫문명 속의 불만 ⑬종교의 기원 ⑭예술, 문학, 정신분석 ⑮정신분석학 개요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여기서 이 전집에 대해 일일이 소개하기보다는, 전체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인간 프로이트에 대하여 종합적으로 기술하고자 합니다."

김충렬
▲한일장신대학교에서 정신분석에 대해 특강하고 있는 김충렬 박사.
-일반인들이 전집을 모두 읽긴 어려우니, 박사님께서 이해하신 프로이트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인간 프로이트는 자신의 업적으로 인해 새롭게 조명되는 사람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여러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내과 치료자, 정신과 치료자, 심리학자, 정신분석자, 철학자, 그리고 사회 비평가 등입니다. 이 외에도 프로이트는 문학자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은 문학, 프로이트는 그 작가라는 의미입니다.

이 별명들은 프로이트가 이룬 인간적인 업적이자 그의 역할을 나타냅니다. 다른 면으로는 이 별명들에서 그가 추구하려던 바를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치료자로서의 프로이트는 가장 우선되는 그의 인간상입니다.

실제로 프로이트의 공식적 직업은 치료자였는데, 그것도 자신이 창안한 독특한 방법에 따라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한 정신치료자였습니다. 정신의학이란 정신질병과 정신이상(異相)을 다루는 의학의 한 분야입니다. 프로이트는 여기에 자신의 이론인 정신분석학을 창안, 새로운 정신의학을 설립한 치료자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치료자로서 프로이트의 모습이 좀 더 궁금합니다.

"프로이트는 과학에 대한 성실한 태도와 정열로 환자들의 내면을 깊이 탐색해 나갔습니다. 그의 연구는 인간의 마음 속에 어떤 정신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그 힘이 바로 치료를 필요로 하는 비정상적 증세를 유발하고 있는 병인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점차 이러한 힘의 대부분이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았기에, 그 방향으로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잠시 생리학과 신경학을 뒤로 하고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환자를 치료하는 방이 그의 실험실이었고, 안락의자가 유일한 실험기재였으며, 두서없이 지껄이는 환자의 말이 과학적 자료로 전환됐습니다."

-방금 박사님께서 프로이트는 심리학을 기초로 하고 현장인 임상을 중요시한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요.

"프로이트는 자신을 심리학자로 여겼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은 1890년대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일단이 나타납니다.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의 범주 안에 속합니다. 그것은 케케묵은 의학적 심리학이나 병적 증세를 다루는 심리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심리학 그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정신분석학이 심리학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것은 분명 심리학의 하부 구조이며, 어쩌면 심리학의 전체적인 토대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이 인간의 정신을 중요시하는 더 심오한 이론임을 역설했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에는 또 다른 일면이 있는데, 그것은 정신질환과 관계하고 있는 방법적 이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정신분석학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기술이 중심이 됐음을 의미합니다."

프로이트 칼 융
▲프로이트(왼쪽)와 칼 융.
-박사님께서 연구하신 프로이트의 다른 측면은 없나요.

"프로이트는 철학도 연구합니다. 1896년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었을 때 나는 철학적 지식 외에는 아무것도 갈망한 적이 없었소. 그리고 이제 의학에서 심리학으로 전향한 나는 이 욕구를 채우고 있는 중이라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시대적 조류의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과학자들은 철학에 매료돼 있었고 과학은 곧 철학이었습니다. 철학이 '지식을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라고 볼 때, 과학자가 되는 것은 지식을 사랑하는 방법이 분명했습니다. 이는 독일의 문호 괴테가 모든 지성인들에게 강조하는 과학의 본질에 대한 요점이었습니다.

프로이트는 사회학적 관심도 드러냈고, 문학가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읽은 작가들은 그를 문학가 이상으로 평가했습니다. 1930년 괴테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문학가들이 그의 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지요. 헤롤드 블름은 '프로이트의 위대함은 그의 글 속에 드러나 있다'면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가 산문을 쓴 정신분석학 창안자라면 프로이트는 그 해독자'라고 격찬했습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도 1918년 2월 17일 편지에서 '시인들은 당신의 편이며, 그리고 점차 더 많은 시인들이 당신의 글에서 시를 읽게 될 것'이라고 프로이트의 문학성을 칭찬했습니다.

-프로이트에 대해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프로이트에 대해 대화를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비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의 방대한 이론을 간단하게 평가하기란 쉽지 않기에, 프로이트의 인간적 모습만을 묘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여러 프로이트의 인간적 모습은 일면 정당하지만, 정통한 것은 아닐지 모릅니다. 모두 개인적인 입장에서 그를 바라본 결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 중 인간 프로이트는 평생 정신분석학을 연구해 나간 사람으로 기억돼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연구자적인 모습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채찍질합니다. 특히 그는 만년에 '상악암'으로 고생하면서도 연구를 계속한 집념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삶이 마감되는 순간까지 정신분석학을 위한 집필에 전념하다 생애를 마친 정신분석학자였습니다. 실로 그가 땀 흘린 결과인 저작들은 우리의 잠든 이성을 깨우게 될 것이요, 감겨 있는 영혼의 눈을 열어줄 것입니다. 때문에 그의 이론을 대하는 사람은 각자의 시각에 따라 그에게 또 다른 이름을 계속 붙여 나가게 될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