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드높은 파~아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따사로운 아침 햇살을 받으며, 사뿐사뿐 교회를 향해 대문을 나섭니다. 대문 소리가 요란하게 열리면서 "교회 갔다올께" 하는 소리가 온 집안을 점령합니다.

봄 아지랑이 사이로 치마가 날리며, 흘러 나오는 교회당 종소리에 복음은 더 멀리 퍼져가고, 옆구리 사이에 낀 빨간 성경책은 찬양의 콧노래와 함께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지나는 길마다 이웃들이 즐겁게 웃으며 배웅합니다. "잘 다녀오라"고 저마다 손을 저으며 미소 가득한 아름다운 주일은, 이웃들과 함께 행복에 겹습니다. 논두렁 밭두렁에서 저마다 생업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더욱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다짐도 함께 하곤 합니다.

주일 전날인 토요일에는 주일을 위한 준비로 사뭇 바쁩니다. 미리 이발을 하거나 목욕탕에도 갔다 오고, 빨래는 미루지 않고 다 해버립니다. 교회에 입고 갈 옷들을 정리하고 다리미질을 하며, 연보로 낼 돈은 깨끗하게 다리미로 펴서 성경책에 꽂아둡니다.

어린 시절 '빨간 성경책'을 들고 다정하게 교회로 향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사랑으로 충만했습니다. 당시 크리스천들은 이웃들이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하며 이웃을 위해 베푸는 모습에서, 이웃들이 교인들을 신뢰하며 듬직한 믿음으로 서로 소통하며 정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특히 '빨간 성경책'을 세상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도록 오른손에 들거나 때로는 옆구리에 끼고 다녔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빨간 성경책'이 눈에 확 들어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빨간 성경책은 사라지고, 은빛과 금빛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지퍼가 달린 성경책이 나오면서부터 성경책은 거리에서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가방이 흔한 시대가 아니라 주로 손에 들고 다녔고, 시대가 점점 변하여 가방 문화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빨간 성경책' 구경하기가 힘들어진 것입니다. 성경책은 가방 한 구석 어둠에 갇혀, 외로운 신세로 전략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아예 성경책을 가방에 넣고 다닙니다. 교회에 가서야 남의 이목 때문에 잠시 내놓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방 한 구석에 성경을 팽개치기 일쑤입니다. 때로는 성경책을 어디 두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아, 교회 갈 때 성경을 찾는 해프닝도 간혹 일어납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잠을 잘 때 머리맡에 성경책을 두고 잠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머리맡에 놓으면 깊은 잠을 잘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성경책을 늘 품고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화장대 앞에 성경책을 보관했습니다. 화장대가 아니라도 집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늘 성경책을 놔두곤 했으며, 먼지를 털어 깨끗하게 늘 청결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에서도 성경책을 찾기가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세상에서 필요한 것들은 중요한 위치에 보관하거나 문 앞에 놓기도 하는데, 유독 성경책만은 어두운 곳에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뤄진 66권의 이 책에는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외치신 주님의 거룩한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세상의 만화책 보다 못한 대접을 한다는 것은 아마 성도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성경책은 내 삶의 방향과 지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고, 복음은 어떻게 전해야 하며, 특히 선한 사마리아인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나라와 이웃들을 위해 어떤 정신으로 임해야 하는지를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경책을 푸대접하는 일부 성도들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안타까운 시대로 접어들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많은 유혹들에 휘말리면서 성경책을 외면하는 안타까운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애석합니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과 사랑,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꼭 해야 할 것들을 우리에게 잘 알려주고 있는 말씀을 읽다 보면, 빨간 성경책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어린 시절 대문을 열고 주일학교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서면서, 옆집 아이들과 앞뒷집 아이들까지 불러 무리를 지어 교회로 가기도 했습니다. 타 종교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교회 나가는 것을 좋아하셨고, "빨리 교회가라"며 아침식사도 속히 챙겨 주시면서까지 교회를 싫어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당시는 배고픈 시절이라, 교회에 가면 과자도 주고 떡이나 먹을 것을 주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당시 교회에서 가르치는 훈계에는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그 훈계는 진실한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요즘처럼 성도들이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교회 다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을 아예 표준어처럼 쓰고 거짓말도 너무 자연스럽게 하다 보니,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든 세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빨간 성경책'을 들고 교회를 가고 오는,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고 좋아했으며, 서로 부담 없이 소통하며, 협력하여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빨간 성경책'은 사라지고 세상 사람들이 넣기 좋아하는 가방 안으로 성경책이 들어가면서, 크리스천들은 당당히 세상과 맞서 더불어 함께 해야 할 것들을 뒤로 한 채, 오히려 부적절한 행동으로 세상에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시대가 더욱 편리해지고 세상 유혹이 커져감에 따라, 기독인들은 본연의 자세를 망각한 채, 더 큰 죄를 넘나들면서 주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저녁이 되면 가족과 함께 시간을 할애하여, 자녀들과 이웃들과 함께 찬송하며 성경책을 읽고, 하나님께서 주신 당부의 말씀을 묵상하며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의 성경책은 과거와 달리 질도 좋고 단단하며 예쁩니다. 하지만 장롱 속이나 서랍에 처박아 두는 성경책은 아무 유익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매일 같이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믿음의 기초가 성경 읽기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빨간 성경책'을 거리에 들고 다닐 수 있는 믿음과 행복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 부단히 퍼올린 사랑이 비록 미비하고 보잘 것 없어도,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웃에게 예수님처럼 서슴없이 빛을 손을 내밀어주고 주님처럼 구원의 디딤돌이 되어줄 때, 우리는 행복의 얼굴을 조우할 것이고 마침내 우리가 꿈꾸는 영원한 몸을 믿음의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믿음의 선배들이 늘 가슴에 품고 들고 다녔던 '빨간 성경책'을 다시 품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