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김영한 대담
▲왼쪽부터 김철영 목사, 김명혁 목사, 김영한 박사. ⓒ이대웅 기자
'가난과 고난과 죽음의 십자가 영성을 염원하며'라는 주제로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와 김영한 박사(기독교학술원 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가 4월 대담을 20일 오전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담임 이수환 목사)에서 개최했다.

인터넷방송 21tv 주최로 열린 대담에서는 김명혁 목사와 김영한 박사의 간략한 발표 후 김철영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사회로 대담이 진행됐다. 21tv는 김명혁 목사와 함께 지난 달부터 매달 한 차례씩 다양한 주제로 명사 초청 대담 행사를 열고 있다. 다음은 대담 내용.

-이 시대에는 가난과 고난이라는 것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되는 안일함과 안주, 편안과 편리 등을 따라가고 있어, 십자가 영성을 닮아가는 것이 어렵다.

김명혁 목사: 십자가 영성을 지닌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감옥에 가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감옥에 가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됐다. 평양을 떠나기 전,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를 경험했다. 이러한 순교 신앙을 지녀야 하는데, 요새 젊은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폴리캅 감독이나 토마스 선교사님처럼, 주기철 목사님의 일사각오나 죽음을 소원한 손양원 목사님처럼 순교 신앙과 십자가 영성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정신 나간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정신 나간 것이다. 이 길을 따라간다면 사회도 조금씩 바뀔 것이다.

이 세상의 유행과 가치관을 버리고, 예수님과 신앙의 선배님들의 가치관을 따라야 한다. 이런 영성이 여기저기서 일어난다면, 저도 자격 없지만 그렇게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

김영한 박사: 우리가 순교를 이야기하지만, 지식적으로 이야기해선 전달이 안 된다. 김명혁 목사님께서 부친의 삶 속에 순교 신앙을 배웠다고 하니 드릴 말씀이 없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비난받고 있는가? 신앙의 선구자들이 갔던 '고난과 자기 비움의 길'을 가지 않고, 기독교를 단순한 제도와 번영의 종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참으로 그리스도처럼 섬기고 모범적으로 그 길을 보여줘야 하는데, 하나의 자기 번영이나 성공의 도구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사회를 위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교회가 아무리 커도, 사회의 지성인과 양심들에 먹히지 않는, 겉만 커버린 껍데기가 돼 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교회가 가난과 고난과 죽음이라는 십자가의 근본 정신을 지도자들부터 다시 한 번 본받아야 한다. 교회의 제직이나 장로님들도 목사에게 '교인이 늘지 않는다'고 압력을 가해선 안 된다. 그러면 설교가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된다. 교인이 줄더라도 바른 십자가의 정신, 가난과 고난과 죽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자기 정체성을 찾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길이다.

-교회가 점점 사회와 담을 높게 쌓아가고 있다. 교회 내부에서도 가난과 고난과 죽음의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게 다가오질 않는다. 그러나 교회 담장만 넘어서도, 사회에서 절박하고 절실하고 순간 순간 가난과 고난과 죽음의 문제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김명혁 목사: 사회는 지도자들의 영향이 미쳐서 변화된다. 성 프란치스코를 보라. 손양원 목사의 순교 신앙도 프란치스코에게서 배운 것이다. 프란치스코를 이야기하면 자꾸 가톨릭이라고 말하는데, 손양원·한경직 목사님이 그를 따랐다. 대여섯 명만 있어도 된다. 평양대부흥 당시 길선주 목사님과 함께한 대여섯명이 당시 조선을 변화시켰다. 십자가 영성을 지닌 분들이 곳곳에 열 명만 있다면, 사회도 정치도 다 변할 수 있다.

김영한 박사: 이 말씀을 신학적으로 다시 풀어 보자면, 여태까지 복음주의권의 영성은 '개인 구원'에 있었다. 내가 중생해서 천국 가는 개인주의적 차원의 영성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성의 한 부분이지, 성경적 영성의 전체는 아니다. 사실 샤머니즘이야말로 개인적 차원의 영성이다.

성경적 영성은 개인적 중생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우주적 영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뿐 아니라 이 세상을 바라보셨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하면서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고 하셨다. 단순히 개인의 구원만을 이야기하지 않으신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 영성이란, 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뒤 사회로 나아가 그 사회를 변혁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잘 해낸 사람이 제네바의 칼빈과 영국을 부흥시킨 웨슬리이다. 사회적 성화 말이다. 한국교회도 단순히 교회 자체의 확장에서 그치지 말고, 교회가 어떻게 사회를 향해 빛을 발하고 소금이 되어 녹아들어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사회적 성화가 이뤄질 때 비로소 교회는 사회를 향해 발언할 수 있고, 진정한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명혁 김영한 대담
▲김명혁 목사(왼쪽)와 김영한 박사가 대화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예수님도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 소외된 이웃에게 다가가셨다. 십자가의 영성도 말씀처럼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체적 차원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김명혁 목사님의 그 시절 평양 이야기도 듣고 싶다.

김명혁 목사: 더 이상 하나의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십자가의 영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사회가 변한다. 스데반 집사 하나가 순교하면서 기뻐하고 감사했을 때 사도 바울을 통해 세계가 변했다. 스데반의 기도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도 없었을 것이다. 스데반을 통해 안디옥 교회가 생겼다. 가이사랴에서 고넬료 한 사람이 기도하고 구제했더니, 그 사회가 변했다.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들였더니, 빌립보 사회가 변했다.

사회참여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십자가 영성을 지니고 있으면, 사회 전체가 변화한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가서 죽음으로써 로마가 변하지 않았나. 일본은 한국도 한국교회도 싫어하지만, 손양원 목사님은 그렇게 존경한다.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 사회참여는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영성을 지니면 사회가 변화한다.

평양 교회는 주일 성수, 순교 신앙, 새벽 기도 3가지를 붙들었고, 철야 기도와 금식 기도도 있었다. 요새 주일 성수를 중요시하지 않는데, 타락한 것이다. 길선주 목사님이 새벽 기도를 하다 평양대부흥이 일어났다. 이게 기본이고, 이것에 붙잡힌 교회들이었다.

북한에 갔을 때 당시를 생각하면서 매일 거리로 나갔다. 공산당이 매일 쫓아다니면서 경고했지만, 닷새 동안 평양 시내를 매일 걸어다니며 그때를 회고했다. 지금도 지하교회에 교인들이 있다고 한다. 옥한흠 목사님이 '진짜 교회는 북한과 중국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일으킨 교회가 될 것'이라고 한 적이 있다.

김영한 박사: 그러한 공동체가 되려면, 먼저 우리가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와 장로 등 지도자들의 메시지와 사고방식이 '예수 믿고 복 받는다'는 기복적 신앙이 아니라, 섬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섬김 받는 것이 아니라 섬겨야 한다. 예수님께서 먼저 가난해지고 고난을 받지 않으셨나.

영성의 본질이라는 것이 바로 자기 비움과 섬김이다. 단순한 개인 구원이 아니라, 노예 해방을 꿈꾼 선조들이 있었다. 영광의 예수님 이전에, 그러한 자기 비움과 섬김과 십자가가 있었다. 십자가를 통한 부활,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한국교회를 섬기는 우리가 자기 비움과 섬김을 모범화하고 체질화해야 한다.

김명혁 목사: 섬김에 대해 한 말씀 더 드리고 싶다. 예수님께서 지니신 영성은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존 스토트 목사님이 예수님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구절로 꼽았다. 예수님은 모든 병자들을 만지시고, 낮아져서 따뜻하게 섬겼다. 그러다 마지막에 죽음을 맞으셨다. 섬김이 중요하다. 성령께서 이를 도우실 것이다.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회개하고 나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닮으려 하면, 몸이 자연스레 그렇게 움직일 것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너무 분주하다. 수도원적 영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김명혁 목사: 사도 바울도 지식과 가문을 너무 귀중히 여겼지만, 배설물 같이 버렸다. 성 프란치스코도 지식이 방해가 되면 버리겠다고 했다. 수도원보다는 한국교회의 무디이자 예레미야였던 이성봉·김치선 목사님처럼 '산기도'를 할 수 있다. 김치선 목사님은 자주 산에서 기도하셨다. 오늘 우리도 하루 일을 쉬고 산에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저는 10대 시절 공부도 팽개치고 김치선 목사님 부흥회에 따라다녔지만, 잘 믿으면 공부도 따라오더라. 귀하게 여기던 걸 내려놓을 수도 있어야 한다.

일부러라도 예수님을 닮기 위해 금식기도도 하고 해야 하는데... 저도 요새 잘 못 하고 있다. 제 죄가 8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게으름이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 너무 게을러졌다. 수도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비슷한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부흥회를 했다. 한주 내내 참석하면서 귀하게 들었다. 선배님들이 지녔던 영성이 필요하다. 예수님처럼 산에 가서 기도해야 한다.

김영한 박사: 장소 이동도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자기 목사관에서, 서재에서 휴대전화만 꺼놓아도 된다. 그렇게 하나님과 자주 만나야 한다.

김명혁 김영한 대담
▲대담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예수님을 고백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이 시대에 가난과 고난과 섬김과 죽음의 십자가 영성을 잘 따라가면서 예수님 닮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어떻게 권면해야 할까.

김명혁 목사: 원칙적으로 하면 철저한 주일 성수가 먼저다. 영원히 계속될 것은 예배밖에 없다. 주일 저녁예배에 안 오면 집사 그만두라고 야단을 치곤 했다. 그리고 회개 기도를 하고, 새벽 기도를 해야 한다. 조금 나아가면 교제와 섬김이 있다. 강변교회 목회 당시 '교제와 섬김'을 표어로 삼았다. 혼자 기도하지 말고 옆 사람들,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과 교제해야 한다.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겨야 한다. 주일 성수, 회개 기도, 새벽 기도를 철저히 해야 하고, 교제와 섬김이 뒤따라야 한다.

김영한 박사: NGO 성격의 샬롬나비를 8년째 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운동이 복음을 통해 나왔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중요함을 느낀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사회운동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요새 YMCA와 YWCA에 복음이 있는가? 초창기에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만날 수 있도록 성경을 읽거나 영적으로 공급을 받아야 이웃을 사랑할 마음이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한다.

1974년 로잔 언약에서도 하나님 사랑과 사회적 섬김이 처음으로 같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이웃을 위해 섬기고 자기 자신을 비울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자기 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으므로 그 은혜에 감동하여 끊임없이 그 힘을 공급받는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일정 시간이 지나 메말라 없어지거나, 인간적 운동으로 끝나버리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