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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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는 엄청난 거구에 탐욕스럽고 색(色)을 밝히는 노인 캐벗과 그의 첫째 아들 에번(Even), 둘째 시미언(Simeon), 셋째 피터(Peter)가 살고 있다. 시미언과 피터는 금광에서 노다지를 찾겠다며 캘리포니아로 갈 꿈에 부풀어 있고, 에번은 아버지의 재산을 홀로 독차지하려는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
그런 와중에 이미 나이가 일흔 다섯이나 된 아버지 캐벗은 '젊고 싱싱한 여자' 에비(Abbey)를 집에 데려다 놓았다. 아내로 데려온 것이다. 가난에 찌들어 방황하는 삶을 살던 에비는 안락한 생활에 정착하고자 이 고령의 노인 품에 들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요조숙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장남 에번을 보자마자 추파를 보내기 시작한다.
▲영화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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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달 뒤에 에비는 에번의 아이까지 낳는다. 아버지 캐봇이 진실을 모른 채 자기 뒤를 이을 자식이 태어났다며 좋아하고 있는 동안, 계모 에비와 아들 에번은 불륜을 지속한다. 부자 간에 벌이는 이 같은 탐욕과 색욕의 뒤섞임이 짐승 같은 시간을 흘려보낸다.
에번은 에비가 자신을 이용해 낳은 아들로 아버지의 유산을 독차지하려 든다는 생각에 질투와 분노에 휩싸인다. 그런 애증의 시간이 뒤엉키는 가운데, 에비는 자신이 에번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자기가 낳은 갓난아기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불륜의 씨앗만 없애면 에번이 변심해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영화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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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들끼리 정말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너희 같은 년놈은 한 나뭇가지에 달아놓고, 나처럼 늙은 사람 구경거리나 돼 줘야 해!"
이 막장 드라마는 결코 외설이 아니다. 노벨상과 네 번의 플리처상을 수상한 현대 희곡의 거장 유진 오닐 (Eugene O'Neill)의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이라는 작품의 줄거리이다.
▲영화 ‘느릅나무 밑의 욕망(Desire Under the Elms, 1958)’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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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는 별 기호가 없다. 다만 아래 보다시피 날씨는 화창한데 무성한 잎 아래로는 언제나 음습하다.
▲느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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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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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의 주인은 그런 욕망의 주인공일 것이다.
▲페이스북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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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죽어 나지막하게) 알았어, 이제야 알았어. 날 농락했어. 바보 취급을 한 거야! 처음부터 도둑질을 할 생각이었지. 나를 끌어넣어 아들을 낳아서는 아버지의 아들로 꾸미고, 이 농장을 차지하고. (괴롭고 저주스러운 눈길로 에비를 응시한다.)
당신 몸엔 악마가 깃들어 있어! 인간이면 그 따위 악한 짓을 할 순 없어. (아픈 마음으로) 차라리 당신이 죽었으면 좋았을 걸.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 걸. (분노하며) 나도 복수를 하겠어. (사납게) 그 늙은이한테 복수하고야 말거야, 당신한테도. 떠들썩하게 자랑하는 아들이 누구라는 이야기를 해줄테야. 그리고 당신하고 늙은이가 서로 잡아먹도록 할거야.
(결심한듯) 난 가! 돈을 벌어 가지고 돌아와서 당신들 두 인간을 길거리로 차내 버려야지. 당신은 아들하고 같이 굶어죽게 만들테야! (괴로워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지금 당장 죽여버리는 게 좋아. 다시는 보지 않겠어. 그것 때문에, 그게 생겼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변하고 만 거야. 계획적으로 도둑질을 하게 된 거지.
난 당신을 믿었어, 벙어리 황소처럼. 그래, 그런데 당신은 날 속였어."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이다.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해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자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